이집트 민주화 시위를 통해 미국을 생각한다 (下)
일반적으로 미국이 이집트 상황에 대처하는 것에 대해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대표적으로 나오는게 하루 하루 달라지는 발언과 이랫다 저랫다 대응을 꼽는다.
가령 오바마 대통령이 무바라크 대통령에 대해 즉각적인 권력이양을 촉구한 다음날 클린턴 장관은 무바라크 대통령이 임명한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의 시위 진정 노력을 평가하며 “(권력이양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한 사실이 꼽힌다. 거기다 미국 정부의 이집트 특사인 프랭크 와이즈너는 2월 5일 이집트의 권력이양 과정에서 무바라크 대통령이 계속 현직에 있어야 한다고 밝혔고 그 직후 미 정부는 ‘개인적 견해’라며 진화에 나섰다.
미국이 30년 동안 이집트에 제공해온 군사원조에 대해서도 기브스 백악관 대변인이 1월 28일 원조정책 재검토 계획을 밝혔지만 이틀 뒤 클린턴 장관은 “이집트에 대한 지원을 감축할 의향이 없다.”고 번복했다.
과연 그러할까? 내가 보기에 이집트에 대한 미국의 정책은 일관돼 보인다. 바로 무바라크 정권 붕괴가 이슬람형제단 등이 주도하는 “반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지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목표를 위해서는 무바라크 대통령이 퇴진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출처: http://www.flickr.com/photos/takver/5415825802/
이집트에서 헤게모니만 쥔다면 민주정부가 들어서건 무바라크가 10년 더 대통령을 하건 무슨 대수겠는가. 물론 구체적인 정책에선 혼선이 있을 수 있다. 무바라크가 즉각 물러나는게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가, 아니면 그가 일단은 자리를 지키는게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가. 중요한 건 그것이다. 혼선이 있다면 ‘합의된 국익’에 대한 해석과 우선순위 설정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대외정책을 위해서라면 이율배반도 중요하지 않다. 가령 1월 29일 일리애나 로스레티넌 하원 외교위원장은 “책임 있는 국가의 지도자들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기준을 충족하는 후보들이 참여하는 선거만 지지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이 말은 곧 무슬림형제단을 겨냥한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평가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법이 규정한 절차에 따라 최근 총리를 선출한 레바논에 대해서는 지원 중단을 언급하며 대놓고 위협한다. 레바논 신임 총리는 미국이 테러단체로 규정하는 헤즈볼라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헤즈볼라는 1982년 이스라엘 침략에 저항하는 시아파 민병대에서 출발한 무장조직이자 의회에 소속 의원이 57명이나 되는 유력 정당이다. 미국과 이스라엘 등 서방 6개국은 헤즈볼라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2006년부터 친서방 레바논 정부에 7억 달러가 넘는 군사지원을 쏟아부으며 공을 들였던 미국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고 있다.
클린턴 국무장관은 1월 25일 “우리는 레바논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레바논 정부에 대한) 외세 개입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필립 크롤리 국무부 대변인도 헤즈볼라의 영향력이 확대되면 레바논에 대한 지원이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익 추구하다 국익 훼손하는 미국
“미국의 하수인인 무바라크는 물러나라.”
이집트의 반정부 민주화 시위대에서 이와 같은 구호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고 3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일간 예루살렘포스트가 보도했다. 이집트 시위가 반독재에서 반미로 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http://www.jpost.com/MiddleEast/Article.aspx?id=205931&R=R3
신문에 따르면,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배후에 미국 정부가 있다는 주장이 거침없이 거리에서 분출되고 있다. 카이로에 사는 아메드(26)는 “미국은 민주주의 국가를 지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식이나 다름없는 이스라엘을 도울 뿐이다.”라면서 “미국은 단지 이집트가 미국에 보조를 맞춰주기 때문에 이집트를 유용하게 생각할 뿐”이라고 했다.
외국계 은행에서 일하는 오삼이라는 시민은 “오바마는 우리 편에 서야만 한다. 당신들(미국)의 민주주의는 어디에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우리가 음식과 석유가격 때문에 거리에 나섰다고 말하는 건 사실이 아니다. 우리는 자유를 위해 여기에 있다.”고 했다.
시위대의 반미여론을 더욱 부추기는 요인은 시민들과 대치하는 탱크 뿐 아니라 시위대 머리 위에서 초계비행을 하는 전투기조차 모두 미국산이라는 점이다. 무바라크가 집권한 지난 30년 동안 미국이 이집트에 제공한 군사·경제 원조액은 280억달러나 된다. 지난해에만 13억 달러의 군사원조를 제공했다.
시위대의 한 축으로 떠오른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도 이날 미국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무바라크에 달아준 생명유지장치를 떼어내지 않으면 이집트는 피범벅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와 관련, 서정민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정권의 성격에 따른 차이만 있을 뿐 중동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반미의식이 매우 강하다.”면서 “중동을 대하는 미국의 이중잣대와 불공정성에 대한 불만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미국이 30년 넘게 무바라크 독재정권을 지지하고 지원해 왔다는 것 때문에 이집트에서 반독재 투쟁과 반미 투쟁이 상호작용하며 발전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망했다.
이스라엘도 좌불안석
중동지역에서 반미 문제는 곧 반 이스라엘 문제와 직결된다. 이집트는 1979년 이후 이스라엘에게 사실상 유일한 대화채널이었고 대표적인 친미정권이었다. 1979년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은 1979년 미국에 있는 캠프 데이비드에서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미국은 그 대가로 매년 15~20억 달러에 이르는 군사·경제원조를 이집트에 제공해 왔다. 이스라엘도 아랍권의 유일한 대화 채널인 이집트와 공조를 통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장악한 하마스를 압박할 뿐 아니라, 남쪽 국경을 걱정할 필요 없이 시리아·레바논·이란과 인접한 북부에 병력을 집중할 수 있었다.
베냐민 네타냐휴 이스라엘 총리가 30일 “우리는 30년 넘게 지속된 양국 관계가 보존되길 바란다.”고 언급한 것도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될 경우 발생할 외교적 고립과 군사적 부담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무슬림형제단을 주목하라
위에서 로스레티넌 위원장의 발언을 소개했지만 이집트에서 당장 총선과 대선이 치러질 경우 집권이 가장 유리한 세력은 무슬림형제단이라는 것은 또다른 아이러니다.
1928년 결성된 무슬림형제단은 이집트 최대 재야단체로, 하마스 등 중동 과격단체의 뿌리에 해당한다. 역대 이집트 정부의 탄압을 받았지만 세력을 유지해 왔다. 2000년 총선에서는 조직원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17석을 차지했다. ‘이슬람법(샤리아)에 근거한 사회’를 이데올로기로 삼고 있지만 최근 들어 다원주의를 수용하는 등 전에 비해 온건한 성향을 보인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국가안보네트워크(NSN) 헤더 헐버트 소장은 “무슬림형제단은 과거 이슬람 근본주의를 주창하고 폭력을 사용했지만 이제 폭력을 공식적으로 폐기했으며, 알카에다와는 수십년 간 앙숙관계”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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