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준, 2004, 『고종 시대의 국가재정연구』, 태학사.
조선시대 말기 제위에 있었던 고종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쟁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였던 이태진을 주축으로 한 일군의 학자들이 고종과 대한제국을 ‘재평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 것이 논쟁을 풍부하게 하는데 이바지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럼 예산을 놓고 고종을 재평가해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한국에서 ‘예산’은 여전히 대중화된 주제는 아니다. 더구나 역사 속 예산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대한제국 시기에 대한 책은 많지만 당시 정부 예산이 어떻게 구성됐는지 설명한 내용을 찾기는 썩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그런 가운데 우연히 서점에서 발견한 책이 바로『고종 시대의 국가재정연구 - 근대적 예산제도 수립과 변천』이다.
『고종 시대의 국가재정연구』는 연세대 교수였던 김대준이 1974년에 쓴 박사논문 『이조말엽의 국가재정에 관한 연구(1895~1910) - 예산회계제도와 예산분석을 중심으로』를 이태진 교수가 이름을 바꿔 2004년 재출간했다. 이 책은 1896~1910년 대한제국 시기 중앙정부 예산 실태를 개괄해주는데 요렇게 저렇게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적지 않다.
조선 시대엔 이러저러한 제사가 많았다. 국가차원에서 임금이 주관하는 제사는 그 자체로 대단히 중요한 정치행위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제사에 들어가는 각종 비용은 ‘민생예산’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예산이다. 제사 지내고 남은 음식을 서민들에게 나눠줬다는 얘기는 들어본적도 없고 설령 나눠줬다고 하더라도 그런 일회성 시혜가 ‘서민복지’에 어떤 도움이 됐는지도 모르겠다. (기껏 영양상태 안좋은 서민들이 기름기 많은 음식 급히 먹다 배탈이나 나지 않을까 하는 한가한 걱정도 든다.)
또 한가지는 국가예산에서 황실 일족을 위한 예산이 얼마나 될까 하는 것이다. 황실 일족은 철저한 특권층이었고 그들의 품위유지를 위해서는 지금 기준으로 보더라도 만만치 않은 비용을 들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각종 총천연색 비단옷에 귀금속으로 된 치장물, 그걸 유지하기 위한 각종 인력들...) 책을 찾아보니 평균 10.1%다. 국가재정의 10%를 황실일족을 위한 예산으로 사용했다. 황실비에서 향사비(享祀費) 다시 말해 제사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을 찾아보니 대략 17%다.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한다. 김대준에 따르면 1894년 갑오개혁에 포함된 예산개혁은 그 후 기본 줄기가 이어졌는데 특히 1896년부터 1904년 예산까지는 나름대로 자주성을 지켰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황실비와 제사비용은 꾸준히 증가추세를 보였다. 연도별로 보면 이렇다. 향사비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건 1897년도 예산부터 1905년도 예산까지인데 황실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11%, 11%, 23%, 23%, 18%, 18%, 19%, 16%, 19%이다.
향사비가 전체 세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97년도 예산 당시 1.4%였다. 그러던 게 1900년도 예산에선 2.4%까지 치솟았다. 가장 적었을 때인 1898년도와 1904년도에도 전체 세출에서 제사비용이 1.3%를 차지했다. 1897~1905년도 평균 향사비가 1.8%에 이른다. 요즘 얘기로 바꿔보면 이렇다. 국가예산이 대략 300조 가량이니 해마다 30조원 가량을 황실을 위해서 쓰는 셈이다. 그리고 또 해마다 6조원 가량을 제사지내는데 쓴다.
일본이 침략의 손길을 뻗쳐 온다고 해서 황실비가 줄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1906년도 예산에서 황실비는 전년도에 비해 78.9%나 늘었다. 저자는 “우선 재정적 면에서 황실을 안정시켜 놓고 침략의 마수를 손쉽게 뻗치려고 취한 수단에서라고 볼 수 있다(174쪽).”는 해석을 내놨는데 납득하기 힘들다.
내가 내놓는 해석은 이렇다. 조선시대보다 못한 왕조국가로 퇴행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가장 공화국을 사랑할 사람은 누구일까? 단언컨대, 김정일, 김경희, 김정은 등 김정일 국방위원장 일족들일게다. 이들이 그 국가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왕조국가에서 가장 국가에 충성할 사람은 왕이다. 그러므로 왕은 왕조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왕조에 예산 우선순위를 둔다. 고종에게 그것은 국방비였고 황실비였고 제사비용이었다.
<한겨레>에서 마련한 고종 평가 지상논쟁 당시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가 지적한 대한제국 재정운용 얘기를 들어보면 그런 실상이 더 잘 드러난다.
박노자는 먼저 조세제도를 언급하는데 “갑오경장 때 고질적인 지방관 세금 관련 비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때 징세 업무를 일반 행정과 분리시켜 독립적 기관으로서의 징세서(세무서)를 전국에 설립하여 탁지부로 하여금 총괄케 했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를 폐지하여 지방관이 징세 업무를 보는 옛날 제도로 돌아가고 말았다.”라고 한다.
박노자에 따르면 광업·홍삼 등 알짜 사업의 징세를 황실이 장악한데다 역둔토라는 이름의 26만 두락 이상의 광활한 관유지까지 소득원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도 소작 농민들에 대한 착취가 갈수록 심해졌다고 한다. “종전 2~3할 정도의 도조율(소작료)이 1900년대 초기에 3~4할로 오른데다 1904년 이후로는 5할로 고착화돼 수많은 작인들의 저항 운동을 불러일으켰다.”
박노자는 이어 재정운용에 대해서도 강하게 질책한다. “고종 시대의 국가가 유일하게 진정한 관심을 보였던 분야는, 민란 진압용으로 군대와 경찰 기구를 키우는 것이었다. 1900년대 초반의 국가예산에서 군사·경찰 비용은 보통 40% 정도 또는 그 이상을 차지했다.”
이태진 교수는 ‘근대적 예산제도 수립과 변천’이라는 부제목을 새로 붙인 것에서 알 수 있듯 고종 시대 국가재정을 ‘근대’의 범주 안에서 해석하고 싶어하는 듯 하다. 그는 간행사에서 “김대준의 결론은 대한제국 정부가 … 그렇게 확립된 근대적 국가예산제도는 1904년 러일전쟁 발발 후 일본의 재정고문 투입으로 그때가지의 발전적 균형성을 잃고 말았다는 것이다.”라고 역설한다.
하지만 솔직히 “대한제국은 무능해서 망한 것이 아니라 많은 가능성 때문에 일본의 노골적인 침략주의에 부딪쳐 좌초하고 말았다”는 이태진 교수의 결론(6쪽)보다는 “차라리 조선 말기의 마지막 세도 정권의 수장에 더 가까웠다.”는 박노자 교수의 해석이 더욱 공감이 간다는게 책을 읽고 난 느낌이다.
연도 |
황실비(A) |
享祀費 |
세출총액(B) |
비중(A/B*100) |
1896년도 |
570,000 |
|
6,316,831 |
9.0 |
1897년도 |
560,000 |
60,000 |
4,280,427 |
15.5 |
1898년도 |
560,000 |
60,000 |
4,525,530 |
12.4 |
1899년도 |
650,000 |
150,000 |
6,471,132 |
10.1 |
1900년도 |
655,000 |
150,000 |
6,161,871 |
10.6 |
1901년도 |
900,000 |
162,639 |
9,078,681 |
9.9 |
1902년도 |
900,000 |
162,639 |
7,585,877 |
11.9 |
1903년도 |
1,004,000 |
186,639 |
10,765,491 |
9.3 |
1904년도 |
1,200,000 |
186,641 |
14,214,298 |
8.4 |
1905년도 |
1,454,000 |
279,641 |
19,113,665 |
7.6 |
1906년도 |
1,300,000 |
|
7,967,386 |
16.3 |
1907년도 |
1,488,415 |
|
15,043,382 |
9.9 |
1908년도 |
1,500,000 |
|
19,133,243 |
7.8 |
1909년도 |
1,676,153 |
|
28,163,228 |
6.0 |
1910년도 |
1,865,000 |
|
27,145,869 |
6.6 |
주: 1905년까지는 원(元)을 사용하다가 1906년부터 환(圜)으로 화폐단위 달라짐. 김대준(172쪽)에 따르면 “종래의 은(銀) 2원이 신화(新貨) 금(金) 1환에 상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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