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산생각

대한제국 국가예산 2%는 제사지내는 데 썼다

by betulo 2009. 8. 4.
728x90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왕조국가에서 가장 국가에 충성스런 사람이 누구일까? 바로 임금이다.이유는? 왕조국가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집주인과 세입자 중에서 누가더 집을 사랑할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노릇이다. 

고종을 둘러싼 이러저러한 논쟁이 있다. 서울대 국사학과 이태진 교수를 주축으로 한 학자들이 특히 고종과 대한제국을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겨레에서는 지난 4~5월 고종 재평가 논쟁을 지상중계하기도 했다.

학자들마다 팽팽한 입장을 보여 재미를 더한 것에 덧붙여 관전평을 말하자면 아직까지는 이태진 교수 등이 원하는 성과를 다 거둔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특히 박노자 교수가 지적한 부분(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285484.html)에 대한 설득력 있는 반론을 제기했는지 의문이다.

박노자는 고종에 대해 “차라리 조선 말기의 마지막 세도 정권의 수장에 더 가까웠다.”고 비판했다. “그의 치하에서 세도 통치의 전근대적 모순들이 해결되지 못한 채 외세 의존과 같은 근대적 모순들과 중첩됐다. 그가 조선을 단독적으로 몰락시켰다고는 볼 수 없지만, 조선의 몰락에 대한 무거운 책임을 역사의 법정에서 그에게 당연히 물어야 한다.”

국가 예산 10%는 고종 황제와 일족을 위해서만

어줍잖게 고종 재평가 등을 운운한 생각은 없다. 다만 최근 읽은 <고종 시대의 국가재정연구>라는 책에서 언급한 1896~1910년 대한제국 예산개요에서 같이 생각해볼 만한 부분이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해서만 얘길 해보고 싶다.

<고종 시대의 국가재정연구>는 연세대 교수였던 김대준이 1974년에 쓴 박사논문 『이조말엽의 국가재정에 관한 연구(1895~1910) - 예산회계제도와 예산분석을 중심으로』를 이태진 교수가 나서서 『고종시대의 국가재정 연구 - 근대적 예산제도 수립과 변천』이란 이름으로 2004년 재출간한 책이다.

책에 대한 얘기는 뒤에 하기로 하고, 먼저 아래 표를 주목해주기 바란다. 책에 나온 각년도 예산현황을 재구성한 표이다.

 연도

 황실비(A)

 享祀費

 세출총액(B)

 비중(A/B*100)

 1896년도

      570,000

 

     6,316,831

         9.0

 1897년도

      560,000

     60,000

     4,280,427

       15.5

 1898년도

      560,000

     60,000

     4,525,530

       12.4

 1899년도

      650,000

   150,000

     6,471,132

       10.1

 1900년도

      655,000

   150,000

     6,161,871

       10.6

 1901년도

      900,000

   162,639

     9,078,681

 9.9

 1902년도

      900,000

   162,639

     7,585,877

       11.9

 1903년도

   1,004,000

   186,639

    10,765,491

         9.3

 1904년도

   1,200,000

   186,641

    14,214,298

         8.4

 1905년도

   1,454,000

   279,641

    19,113,665

         7.6

 1906년도

   1,300,000

 

     7,967,386

       16.3

 1907년도

   1,488,415

 

    15,043,382

         9.9

 1908년도

   1,500,000

 

    19,133,243

         7.8

 1909년도

   1,676,153

 

    28,163,228

         6.0

 1910년도

   1,865,000

 

    27,145,869

         6.6

위 표에서 주의할 점은 1906년부터는 화폐단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1905년까지는 원(元)을 사용했는데 "1906년도 예산 단위는 1905년 1월 18일자 칙령 2호로 공포된 ‘화폐조례실시에 관한 건’에 의거해 화폐단위가 종래의 원(元)에서 환(圜)으로 바뀌었"다. 다시 말해 "동년 1월 18일자 칙령 제4호로 공포된 ‘구화폐 정기교환에 관한 건’에 의하여 종래의 은(銀) 2원이 신화(新貨) 금(金) 1환에 상당한 것이므로 예산규모는 전년도의 절반과 비교하여야 정확한 것을 알 수 있다(김대준, 2004: 172).”

내가 주목한 것은 전체 국가예산에서 황실비가 차지하는 비중이다. 그리고 황실비에서 향사비(享祀費) 다시 말해 제사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평균 10.1%다. 국가재정의 10%를 황실일족을 위한 예산으로 사용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대략 17%를 제사지내는데 썼다. 

1897년 고종은 대한제국을 선포한다. 김대준에 따르면 1894년 갑오개혁에 포함된 예산개혁은 그 후 기본 줄기가 이어졌는데 특히 1896년부터 1904년 예산까지는 나름대로 자주성을 지켰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 황실비와 제사비용은 꾸준히 증가추세를 보였다.

연도별로 보면 이렇다. 향사비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건 1897년도 예산부터 1905년도 예산까지인데 황실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각각 11%, 11%, 23%, 23%, 18%, 18%, 19%, 16%, 19%이다.

향사비가 전체 세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97년도 예산 당시 1.4%였다. 그러던게 1900년도 예산에선 2.4%까지 치솟았다. 가장 적었을 때인 1898년도와 1904년도에도 전체 세출에서 제사비용이 1.3%를 차지했다. 1897~1905년도 평균 향사비가 1.8%에 이른다. 

요즘 얘기로 바꿔보면 이렇다. 국가예산이 대략 300조 가량이니 해마다 30조원 가량을 황실을 위해서 쓰는 셈이다. 그리고 또 해마다 6조원 가량을 제사지내는데 쓴다. 4대강을 해마다 삽으로 들었다 놨다 하고도 남는 돈이다.

일본이 침략의 손길을 뻗쳐 온다고 해서 황실비가 줄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1906년도 예산에서 황실비는 전년도에 비해 78.9%나 늘었다. “우선 재정적 면에서 황실을 안정시켜 놓고 침략의 마수를 손쉽게 뻗치려고 취한 수단에서라고 볼 수 있다(김대준, 2004: 174).”

아까 언급한 지상논쟁에서 박노자가 지적한 대한제국 재정운용도 비슷한 맥락이다. 박노자는 먼저 조세제도를 언급하는데 “갑오경장 때 고질적인 지방관 세금 관련 비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한때 징세 업무를 일반 행정과 분리시켜 독립적 기관으로서의 징세서(세무서)를 전국에 설립하여 탁지부로 하여금 총괄케 했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를 폐지하여 지방관이 징세 업무를 보는 옛날 제도로 돌아가고 말았다.”라고 한다. 

박노자에 따르면 광업·홍삼 등 알짜 사업의 징세를 황실이 장악한데다 역둔토라는 이름의 26만 두락 이상의 광활한 관유지까지 소득원으로 관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서도 소작 농민들에 대한 착취가 갈수록 심해졌다고 한다. “종전 2~3할 정도의 도조율(소작료)이 1900년대 초기에 3~4할로 오른데다 1904년 이후로는 5할로 고착화돼 수많은 작인들의 저항 운동을 불러일으켰다.”

박노자는 이어 재정운용에 대해서도 강하게 질책한다. “고종 시대의 국가가 유일하게 진정한 관심을 보였던 분야는, 민란 진압용으로 군대와 경찰 기구를 키우는 것이었다. 1900년대 초반의 국가예산에서 군사·경찰 비용은 보통 40% 정도 또는 그 이상을 차지했다.”

(박노자는 “1905년 정부 예산에서는 교육과 위생 관련 예산은 1.05%에 불과했던 반면 황실비는 7.6%나 됐다.”고 언급했는데 재정 관련 내용은 김대준의 책을 참고하지 않았나 싶다.)

다시 한번, 왕조국가에서 가장 충성스러운 사람은 왕이다. 왕이 그 국가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왕은 왕조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왕조에 예산 우선순위를 둔다. 고종에게 그것은 국방비였고 황실비였고 제사비용이었다.

사실 왕조국가만 그렇지는 않을거다. 진정 인민이 주인인 나라는 예산 최우선순위를 인민에 둘 것이고, 귀족이 주인인 나라는 귀족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예산을 우선 배정할 것이다.

경기도의회는 초등학생 무료급식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무료급식을 필요로 하는 학생들과 그들의 식구들은 경기도의 주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