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국회의원을 해보니 법률과 회계를 잘 안다는 것이 아주 큰 도움이 되더라. 어떤 공무원도 이 두 잣대로 따지고 들어가면 막히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대중적인 예산비평서를 쓴 사람이 정광모 전 국회 보좌관이라는 것은 한 눈에도 꽤 적절한 조합으로 보인다.
저자는 12년 동안 법률사무소와 법무법인에서 사무장으로 일해 법률 실무 지식에 밝다. 거기다 17대 국회 4년 동안 국회 보좌관을 지내면서 예산문제에 관심을 갖고 천착한 덕분에 예산문제에도 상당한 식견을 갖게 됐다. 거기도 지난 6월에 소설가로 등단했을 정도의 문필력과 감수성까지.
그는 “국회에서 일하면서 보니 가장 중요한 분야 가운데 하나이면서도, 가장 소홀한 취급을 받는 분야가 바로 예산 문제라는 걸 알았다.”는 걸 예산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로 꼽았다. 일반인 뿐 아니라 국회의원 등 정책결정자조차도 예산문제를 제대로 모르는 경우를 적지 않게 봤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예산을 다룬 대중서조차 하나도 없었다.
2008년에 나온 『또 파?』를 집필하는데 걸린 기간은 1년 가량이다. 소관 상임위 활동 과정에서 눈여겨 본 예산 현안과 대중적으로 알려진 예산낭비사례, 다른 국회보좌관 등을 통해 얻은 정보 등을 바탕으로 14가지 주제를 정했다.
▲지방공항 ▲국제경기대회 ▲영어마을 ▲재난관리 ▲특별교부세 ▲방과후학교 ▲자전거 ▲국민연금 ▲지역축제 ▲민간투자사업 ▲경유차 배기가스 저감사업 ▲공공디자인 ▲세금 ▲예산낭비 등이다. 하나같이 중요하지 않은 사업이 없고 기회있을 때마다 공론화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러면서도 어느 것 하나 예산 관점에서 치밀한 검토가 이뤄진 경험은 부족했다. 가령 특별교부세같은 경우는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발표된 학술논문이 두 편에 불과할 정도다.
책이 나오고 나서 반향은 기대 이상이었다. “예산문제는 재미없다”는 선입견을 비웃기라도 하듯 출판사는 2쇄 이상을 찍었고 국회관계자들이 국회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한 책 5위 안에 선정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저자에 따르면 지방공무원 중에 지금도 가끔 문의전화와 격려전화가 온다고 한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책이 더 잘 나간다는 후문이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예산문제도 충분히 대중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 책이 갖는 의미는 적지 않다.
미국에 있는 유명 예산감시운동 시민단체로 CBPP라는 곳이 있다. 직역하면 ‘예산․정책우선순위 센터’인데 개인적으로는 예산과 정책우선순위를 병렬시킨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따지고 보면 예산이야말로 ‘돈’으로 표현한 정책우선순위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정부가 무상급식예산과 4대강사업예산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말 그대로 어린이보다 로봇물고기에 정책우선순위를 둔다는 뜻이 아니고 달리 뭐겠는가.)
『또 파?』의 미덕은 바로 예산이 정책우선순위의 문제이며, 더 근본적으로는 ‘철학’의 문제라는 것을 끊임없이 우리에게 각인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방과후학교를 다루면서 “사교육비 절감을 목표로 추진하는 방과후학교는 예산낭비일 뿐이다(134쪽)”라고 일갈하는 대목이 대표적이다. “사교육은 인원이 제한된 그룹에 들어가고자 하는 경쟁의 결과로 번성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교육경감을 위해 방과후학교를 한다는 것은 애초에 목표를 잘못 잡았다는 게 저자의 관점이다.
“사교육은 대학입시에 목매는 ‘단판 승부’ 사회가 만든 유령이다. 그러나 ‘방과 후 학교’라는 ‘단판 승부’ 정책으로는 절대 사교육이라는 유령을 이길 수 없다(139쪽).” 이런 ‘철학’에서는 차라리 “걸식아동 문제와 지역간 공교육 격차 해소”에 더 주목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당신이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 중에 개인적으로 딱 한가지는 기억해 줬으면 좋겠다. 바로 우리가 세금과 예산배분을 바라볼 때 ‘가렴주구’와 ‘망극한 성은(聖恩)’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국민들은 예산을 ‘중앙의 힘 있는 사람이 가져다 주는 이권’ 정도로 생각”하기 때문에 “‘투명한 정부’보다 내가 속한 지역과 집단의 이익을 앞세운다.”고 꼬집는다. 그래서 “연줄이 더 빠르고 효과가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조세정책과 예산배분 문제가 정치 이슈로 잘 떠오르지 않는다.” 세금을 낼 때는 ‘가렴주구’를 외치면서 예산배분을 기대할 때는 ‘망극한 성은’을 생각하는 건 아닌지, 우리 스스로 돌아볼 일이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세계행복지수’가 가장 높은 나라가 되려면 두가지를 갖춰야 한다. 먼저 “국민들이 세금을 많이 내야 한다(296쪽).” 그리고 “투명한 정부가 되어야 한다. 나라에 ‘세금을 뜯긴다’는 생각 대신 ‘내가 내는 세금만큼 돌려받는다’는 믿음이 뿌리내려야 한다(296쪽).” 그래서 저자는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예산과 세금, 뜯기는가, 돌려받는가.” 당신이 이 질문에 공감한다면 이제 우리는 ‘우리가 낸 세금, 어떻게 우리 모두의 행복을 위해 돌려받을 것인가’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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