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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경제雜說

외환위기와 IMF 구조조정, 미국 보시기에 좋았더라

by betulo 2010.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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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행정부는) 아시아와 멕시코의 금융위기로부터 서구 자본시장을 옹호했으며…”

1997년 외환위기는 1987년 6월항쟁에 못지않은, 어쩌면 더 큰 충격과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학자들이 87년체제라는 규정을 하곤 하는데 개인적으로는 ‘97년체제’에 더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한다. 정권교체와 맞물리면서 한국사회의 사회경제적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꿔버렸다는 점, 거의 전국민에게 충격과 상처를 남겼다는 점만 봐도 그렇다.

일반적인 상식에 비춰보면, 주범은 (부채에 기대 문어발 경영을 일삼은) 재벌 혹은 (관치경제에 몰두했던) 정부 혹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국민들이었다. 결국 ‘내 탓이오’라는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김성해(2007: 156) 언론재단 객원연구위원은 이를 “경제관료들은 무능한 정치인과 부패한 기업인을, 재벌을 중심으로 한 기업인들은 정치지도력 부재와 전투적인 노조를, 지식인집단은 압축고속성장 모델의 주역인 정부와 재벌을 그리고 언론인은 관료, 경제인 그리고 지식인 모두를 비난했다.”로 표현했다. 

이런 프레임에서는 IMF는 구원투수다. 김성해(2007: 154)에서 사례로 든 언론보도를 예로 든 조선일보(2003.3.21) 보도를 예로 보면, “한국은 IMF의 도움으로 외환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IMF의 도움은 클린턴 행정부가 자국의 경제적 이익보다 한국의 안보 불안정을 먼저 고려했기 때문”이다.

진실은 자주 상식을 배신한다. 글 첫머리에 인용한 구절은 누가 쓴 것일까? 어떤 분들에겐 친북좌빨이 쓴 글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 1998년부터 2001년까지 미국 상무부 차관을 지냈던 로버트 J. 샤피로가 쓴 <2020 퓨처캐스트> 342쪽에 나오는 구절이다.

샤피로는 1992년 대선 당시 빌 클린턴 후보의 경제정책 보좌관도 지냈던 인사다. 그런 인연 때문인지 클린턴은 이 책에 대해 “미래 사회가 직면할 온갖 도전들을 면밀하게 탐색한 선견지명과 통찰력이 담긴 책”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미국 국익에 충실하고 클린턴 행정부 당시 정책에 대해서도 정통한 샤피로가 ‘글로벌 실세, 미국은 어떻게 세계패권을 주도할 것인가’라는 부분에서 클린턴 행정부와 후임 부시 행정부의 정책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지적하면서 언급하는 내용이 바로 클린턴 행정부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외환위기에서 서구 자본시장을 옹호했다고 말한다. 여기서 서구 자본시장은 당연히 월가(Wall Street)를 가리키는 것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2020 퓨처캐스트> 320쪽에는 아시아외환위기에 관한 다른 구절도 나오는데 이 또한 곰곰이 음미해볼 만하다.

“앨런 그린스펀과 로버트 루빈은 구제 금융에 엄격한 조건을 내걸었다. 다시 말해 한국이 대기업, 대형 은행, 정부간의 상호 봐주기와 산업계획을 버리고 미국의 개방무역 모델, 규제 없는 시장, 금융 투명성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

샤피로는 이어 “미국의 이와 같은 세계화 접근법과 재벌 비판은 갓 대통령에 당선된 반체제 인사 김대중의 방침과 공교롭게도 일치했다.”며 ‘정당성’을 강조한 뒤 “김-그린스펀/루빈 프로그램”의 결과를 이렇게 설명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홍수처럼 밀려와 원화 평가절하에 따른 재고 처분 가격으로 한국 기업 수백개를 사들였고, 2005년에는 외국 기업이 14개 지방 은행 중 8개와 서울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의 40퍼센트 이상을 소유하거나 관리하게 되었다.”

외환위기와 뒤이은 IMF식 구조조정은 과연 누구에게 좋은 결과일까. 샤피로 스스로 인정했듯이 미국에게 좋은 건 확실하다. 그럼 우리에게도 좋았을까?

<참고문헌>

김성해, 2007, ‘만들어진 선호도: 지적리더십 모델로 본 달러패권의 이해’, 『제도와 경제』1-1, 129~161쪽.

로버트 J. 샤피로, 김하락 옮김, 2010, 『2020 퓨처 캐스트』, 랜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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