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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

태국, 정치가 사라지면 민주주의도 사라진다

by 자작나무숲 2010. 3. 16.


태국 방콕의 주말을 뜨겁게 달궜던 대규모 반정부시위 이후에도 태국 정세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박은홍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태국 정치 전공)한테서 탁신 지지(붉은 셔츠)와 반대(노란 셔츠)로 나뉜 갈등의 근원과 교훈을 물었다. 그는 “불만스럽더라도 결과에 승복하는 문화가 사라져버리면서 정치적 ‘게임의 규칙’이 실종돼 버린 것이 오늘의 사태를 불렀다.”고 꼬집었다. 


Q: 이번 시위의 근원은 무엇인가.
A: 노란 셔츠의 원죄

2006년 9월 쿠데타로 탁신 전 총리가 실각했다. 군정이 새 헌법을 발효하고 나서 치른 총선에서 탁신 세력인 ‘국민의 힘’(PPP)이 승리했지만 ‘노란 셔츠’가 정부청사와 공항을 점거하는 저항을 벌였다. 내각이 붕괴했고 ‘국민의 힘’은 대법원 판결로 무너졌다.

‘노란 셔츠’가 반탁신 세력이 반정부시위를 통해 선거라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무너뜨려 버린 것이다.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건 민주주의를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해에는 ‘붉은 셔츠’가 아세안+3 회의장에 난입해서 회의를 무산시켰다. 결국 ‘게임의 규칙’이 없어지면서 힘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됐다.


Q: 탁신을 지지하는 주요 세력은 누구인가.
A: 농민과 도시빈민

탁신은 후기로 갈수록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쏠렸지만 집권 초기엔 케인즈주의 정책을 상당히 폈다. 특히 무슬림이 다수인 남부를 제외한 농촌에 대해서는 농가채무 탕감, 저소득층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등 일관되게 재정확장정책을 유지했다.  그 전엔 누구도 농촌과 빈민에 신경쓰지 않았다. 주요 수혜자인 농민들과 도시빈민들은 지금도 강력한 탁신 지지세력으로 남아있다. 그들이 조기 총선을 주장하는 것은 그만큼 승리를 자신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시골에선 여당 후보 당선되고 도시에선 야당후보 당선되는 여촌야도與村野都 현상은 불과 20여년 전만해도 한국에서도 상식이었다. 물론 정권 차원에서 왕따시킨 호남은 예외겠지만. 태국에서 여촌야도 현상이 심하다고 해서 그래서 문제라고 하기엔 좀 뭣하다. 오히려 취재 과정에서 느낀 건 탁신에게서 박정희 냄새가 난다는 것. 케인즈주의 정책, 서민층을 대상으로 한 포퓰리즘, 독선...) 


Q: 탁신을 반대하는 주요 세력은 누구인가.
A: 도시중산층

 탁신 정권이 언론통제를 강화하는 등 독선적이었던 건 분명하다. 도시 중산층 사이에선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농촌 좋은 일만 시킨다는 불만도 커졌다. 부패문제에 대한 거부감도 강했다. 지금도 농민들을 폄하하는 경향이 있다. 2006년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일부에선 ‘좋은 쿠데타’라는 식으로 필요악인 양 본질을 호도해버리기도 했다.


Q: 쿠데타가 재발할 가능성도 있을까.
A: 예측 불허

현 집권당인 민주당은 온건보수성향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정통야당이다. 쿠데타가 그들에게도 플러스는 아니다. 하지만 태국 전문가 가운데 어느 누구도 2006년 쿠데타를 예상하지 못했다. 총선을 통해 친탁신세력이 다시 권력을 잡을 경우 ‘노란 셔츠’가 결코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변수다.


Q: 태국 정치불안이 한국에 주는 교훈은 뭘까.
A: 민주주의가 없으면 안정도 없다

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상대적으로 제도적 민주화가 발전한 곳이었다. 하지만 2006년 쿠데타를 계기로 불만이 있더라도 결과에 승복하는 정치문화가 깨져버렸다. 쿠데타는 물리적 힘에 기대서라도 정치권력을 교체할 수 있다는 위험한 발상을 심어줬다. 대화와 토론이 사라지고 선거 결과로 들어선 합법정부조차 인정하지 않는다. 힘과 힘이 맞붙는 끊임없는 악순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텍스트에서 어떤 맥락을 짚어낼지는 독자들의 자유다. 혹자는 붉은셔츠한테서 현 정권이 아무리 밉더라도 시위로 하면 안된다며 촛불집회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어떤 분들은 전 정권이 아무리 싫어도 해도 해도 너무하게 전 정권 지우기를 하면 안되지 하며 가카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어찌됐건, 분명한건 정치가 사라지면 민주주의도 사라져버린다는 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정치를 꽤나 싫어하는 어떤 분들은 이 텍스트 자체가 불경스러울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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