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예산생각

기획재정부의 신기한 산수계산법

by betulo 2009. 2. 17.
728x90

매달 10만원씩 용돈을 받는 우리 아들이 유리를 깨뜨려서 벌칙으로 용돈을 깎기로 했다고 가정해보자. 2월 용돈은 8만원이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접시를 왕창 깨먹었다. 3월 용돈은 1만원을 더 깎아서 7만원만 줬다. 자숙하는 거 같아서 4월 용돈은 조금 올려서 9만원이 됐다.


사고만 안쳤어도 우리 아들은 10만원씩 꼬박꼬박 용돈을 받을 수 있었다. 장난치다 벌로 2월부터 4월까지 삭감된 용돈은 얼마나 될까? 1번, 6만원. 2번, 1만원. 1번을 택했다? 사실 나도 1번을 찍었다. 하지만 기획재정부에선 2번이 정답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기획재정부는 우리 아들이 3개월 동안 단지 1만원만 용돈이 깎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16일 한겨레와 국민일보에 블랙코미디를 꽤 딱딱하게 다룬 기사가 실렸다. 국회 예산정책처 이영환 세입세제분석팀장과 신영임 예산정책처 경제분석관은 2월 13일 성균관대에서 열린 2009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 ‘세법 개정에 따른 세수 효과 측정에 관한 연구’ 발표를 했다.




결과가 흥미롭다. 이들은 지난해 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에 따른 감세 규모가 5년간 96조원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정부가 밝힌 감세규모인 5년간 35조원보다 60조원 이상 많은 수치다. 어쩌다가 기획재정부와 국회예산정책처 연구원들의 계산이 이토록 차이가 많이 나는 걸까. 60조원이면 우리나라 1년 세출예산의 20%에 육박하는 액수다.


비밀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하다. 기획재정부는 <전년대비 방식>이란 걸 사용했고 이 팀장 등은 <기준연도 대비방식>을 적용했다. 어려워 보이지만 차이점은 위에서 든 우리 아들 용돈 삭감과 하나도 다를게 없다. 당신이 1번을 답이라 생각한다면 그건 기준연도 대비방식을 지지한 것이고 2번을 정답이라고 말한다면 전년대비 방식을 지지하는 거다.


이해하기 쉽게 하려고 우리 아들 용돈 얘기를 꺼냈지만 이 비유는 발표문에 그대로 등장한다. 국민일보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올해 감세 규모가 2조원, 내년 3조원, 내후년 1조원이라면 전년 대비로 계산하면 3년간 감세 규모는 1조원이다. 기준연도 방식을 적용하면 6조원. 5조원 차이가 발생한다.”


먼저 기준연도 대비방식은 지난해를 기준으로 올해 2조원, 내년 3조원, 내후년 1조원을 모두 더한다. 올해부터 생긴 변화로 인해 작년을 기준으로 이만큼 줄었다는거다.


전년대비 방식은 좀 독특하다. 먼저 올해 감세규모는 2조원이다. 내년은 올해에 비해 감세규모가 1조원 늘었으니까 1조원, 그런데 내후년에는 내년에 비해 감세규모가 2조원 줄어들었으니 2조원은 감세규모 계산에서 제외해야 한다. 결국 기획재정부 방식은 세수가 (-2-1+2=-1)만큼 줄어든거다.


기획재정부는 한국 경제정책과 조세정책, 재정정책을 총괄한다. 국가 차원에서 기획재정부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느냐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당연히 우수한 인재들도 몰려있는 곳이 기획재정부다. 그런 기획재정부가 여태 우리 아들 용돈이 얼마나 줄어드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안좋다.


이 팀장은 이렇게 지적했다. “세법개정에 따른 세수 감소는 개정된 세법의 발효 시점 이후로 계속 영향을 끼침. 하지만 전년대비 방식으로 세수 감소 규모를 계산하면 세법 개정에 따라 세수가 줄어드는 첫해의 세수 감소분만을 반영하게 돼 재정 건전성을 해치는 감세의 부작용을 실제보다 작아 보이게 함.”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