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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

공익제보자 현준희씨 "파면무효 재심청구할 것"

by betulo 2008. 1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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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준희씨는 12년 만에 명예를 회복했지만 의외로 덤덤한 눈치였다.오히려 쑥쓰럽다는 말도 했다.“슬픔도 오래되면 눈물이 마른다고 하던데 제가 딱 그렇네요.주위에선 제가 오래전에 무죄판결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 분들도 있거든요.”

 현준희씨는 감사원 주사로 일하던 1996년에 권력형비리에 대한 감사가 외압으로 중단됐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다. 그가 돌려 받은 것은 파면 소식과 명예훼손소송 통지였다. 명예훼손소송은 1심과 2심에서 승소했지만 2002년에 대법원(주심 이규홍 대법관)에서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됐다. 4년 후 파기환송심에서도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검찰은 재상고했다. 지난 13일 드디어 대법원(재판장 전수안 대법관)에서 승소했다. 사건은 종결됐다. 흔치않은 우여곡절 끝에 겨우 얻어낸 작은 명예회복이었다.

 “답답합니다.”현씨는 자신을 파면한 감사원 결정을 인정한 법원판결에 대해 재심을 신청할 계획이다. 변호사도 선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또 몇 년이나 걸릴 것인가.

 감사원에서 일하던 현씨는 1995년 효산그룹이 경기도 남양주시에 콘도를 건립하기 위해 김영삼 정권 실세들과 결탁해 주무기관에 압력을 행사했다는 제보를 받았다. 감사과정에서 콘도 사업허가가 법규를 위반한 것이고 건설교통부와 경기도·남양주시 공무원들이 금품을 수수한 혐의가 있다는 것을 상부에 보고했다.

감사원에선 갑자기 감사를 중단시켰다. 현씨는 이에 항의했지만 묵살당했다. 상급자한테서 “보관하는 서류를 없애버려라.”라는 지시까지 받자 구석에 몰린 현씨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사무실에서 1996년 4월 위 사실을 폭로했다. 감사원은 곧바로 현씨를 파면했다. 파면 무효 청구소송을 냈지만 2002년 패소했다.

 현씨는 화가 나 있었다. “12년 동안 누명을 뒤집어쓰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누명을 조금 벗어났지만 사과하는 놈 하나 없고 책임지는 놈도 하나 없습니다. 솔직히 허망합니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결코 공익제보는 안 할 겁니다. 주변에서 공익제보한다고 하면 말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현씨에게 감사중단을 지시했다는 당시 감사원 남 모 국장은 퇴임 후 건축사로 일하고 있다고 한다. 현씨는 “남씨에게 ‘이제 당신이 양심선언을 할 차례’라고 여러번 얘기했지만 묵묵부답이었다.”고 밝혔다.

 현씨는 1978년 감사원 7급으로 시작해 1996년엔 5급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파면된 후 2개월간 감옥생활을 겪기도 한 현씨는 학습지판매, 휴대전화 영업 등으로 입에 풀칠을 해야 했다.

다행히 2000년에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 국내 첫 한옥 게스트하우스를 열었는데 입소문을 타면서 손님이 이어진다. 인터뷰를 하는 중간에도 일본인 관광객들과 캐나다 여행자가 문을 두드렸을 정도다. 현씨는 인터뷰 말미에 “참여연대와 민변에서 12년 동안 돈 한 푼 받지 않고 내 사건을 맡아서 처리해줬기 때문에 승소할 수 있었다.”면서 “미안하고 고맙다.”고 밝혔다.

 현씨는 감사원에 애증이 많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감사원은 내 사랑”이라고 하면서도 “자기만 살겠다고 국회에서 위증을 하고 사건을 날조하고 은폐하는 걸 보면서 감사원 윗선에 환멸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현씨는 “감사원이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본래 취지만 잘 살려도 직불금 국정조사 같은 망신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면서 “감사원을 이끄는 분들이 먼저 사명감과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서울신문 2008년 11월 17일자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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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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