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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

수입 농산물 안전성, '오해!'와 '오해?'

by betulo 2008.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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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취재, 기사쓰기, 교정, 교열, 편집, 조판 등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꽤나 복잡하고 정교한 과정이다. 결국 신문 만들기는 종합 작업이고 협업체계이다. 과정마다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교환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기사의 특정부분이 줄기도 하고 늘기도 하고, 기사 비중을 키우기도 하고 줄이기도 한다. 

식품안전을 주제로 기사를 쓰는건 어렵다. 안전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구체적인 자료와 법령을 갖고 있다. 그리고 "위험하다는 근거가 뭐냐."고 묻는다. 하지만 위험성을 주목하는 사람들은 "안전성을 확인하기 전까진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 혹은 위험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신중한 접근을 하는데 이게 어떤 이들에겐 쓸데없이 불안을 조장하는 걸로 비치게 된다.

단순히 식품에 위험한 어떤 물질이 들었느니 아니니 해서 시끄러운 것보다 더 본질적인 문제에 천착하려고 할 때 다행인지 불행인지 잘 찾아보면 안전성을 의심하게 만드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런 사례들을 통해 안전성을 더 확신하게 만드는 조치가 필요함을 인식시키게 된다.

10월21일자 서울신문 12면에 난 기사를 싣는다. 아래 색깔을 입힌 박스로 된 부분은 지면에선 빠졌다. 방금 말했듯이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내 생각을 밝힌다면, 나는 박스로 된 부분이 빠지고 그 자리에 "포도주 아황산 기준 강화가 필요하다."는 작년 5월 소비자시민모임 실험결과가 들어가야 하는 이유를 납득하기 힘들다. 하지만 그것도 신문만들기의 과정 가운데 하나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담배를 끊는다는 건 평생 담배 생각을 참는 것"이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칠레산 포도, 필리핀산 바나나, 뉴질랜드산 키위… 중국산 먹거리 안전성 논란이 커지는 와중에 중국산이 아닌 여타 수입 먹거리도 논란의 여파가 미치고 있다. 논란은 배에 싣기 전에 농약이 가득 담긴 통에 농산물을 푹 담궈서 한국으로 보낸다는 주장부터 “수입 먹거리도 모든 검사를 거치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주장까지 뒤섞여 있다.

“잔류농약·방사선 등 과장 많다”

정부와 전문가들은 수입 농산물에 대한 광범위한 오해가 오히려 소비자들을 더 불안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청(이하 식약청)은 “최초로 수입되는 농산물은 의무적으로 검사를 실시하고 지속적으로 수입하는 농산물에 대해서는 무작위 검사를 한다.”면서 “230여 항목의 농약성분을 검사해 농약잔류허용기준 이하 농산물만 통관시킨다.”고 설명했다.

식품잔류약품과 관계자는 “수입농산물은 대부분 유통되는 기간이 비교적 긴 건조 곡류, 건조 두류, 과일 등이어서 농약이 잔류할 가능성이 비교적 낮을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는 “잔류농약허용기준은 다양한 과학적 실험을 거쳐 인체에 유해하지 않은 수준으로 결정한다.”면서 “그 기준을 통과한 수입농산물만 국내로 반입된다.”고 강조했다.

 2~3주나 걸리는 운송기간 동안 농산물이 상하거나 싹이 트는 걸 막기 위해 과다한 ‘수확 후 농약 살포’에 대해서도 식약청 수입식품과 관계자는 “배에 싣기 전에 뿌리는 가스농약은 휘발성이고 물로 씻어주기만 해도 85%를 제거할 수 있다.”면서 “이런 경우도 잔류농약검사를 통과해야 우리 식탁에 오를 수 있다.”고 밝혔다.

 운송과정에서 살균소독을 위해 방사선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하상도 중앙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방사선을 농산물에 투과하면 식품에는 아무런 물질도 남지 않는다.”면서 “현존하는 방법 가운데 방사선만큼 인체에 해도 적으면서 품질에 악영향도 미치지 않는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방사선을 쐰 수입먹거리에 대해서는 과학적 실험을 거쳐 식품위생법상 규정으로 정하고 있고 그에 맞춰 수입과정에서 검사를 한다.”고 덧붙였다.

“안전성 확신할 수 없다”

 ‘명쾌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수입농산물 안전성 논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윤석원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수확 후 농약 살포’에 대해 “수입 농산물은 운송기간이 길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화학물질을 써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안전성은 거리에 비례해서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방사선 처리에 대한 위험성 주장이 과장됐다고 말한 하 교수도 “방사선이나 농약사용이 100% 안전하다는 뜻은 아니다.”고 선을 긋는다. 그는 “농약이나 방사선은 모두 사용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손해가 크기 때문에 비용과 편익을 고려해 안전성을 일부 희생하는 것”이라면서 “적은 양이지만 당연히 몸에 좋을 수는 없다.”고 밝혔다.

 최근 급속히 판매량이 늘고 있는 칠레산 포도의 경우에서 보듯 현지에서 과다한 농약을 사용하는 문제는 수입농산물에 대한 불안감을 높인다.

서동진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사무국장은 칠레산 포도를 예로 들며 “국제적으로 사용을 금지한 농약을 대량살포하고 이로 인한 피해가 급증하면서 농장 노동자와 인근 주민들이 농약사용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일 정도”라면서 “각종 농약 사용과 그로 인한 토양오염 등에 노출된 수입 농산물을 꾸준히 먹었을 때 인체에 유해물질이 쌓이는 ‘체내축적’문제가 장기적으로 심각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식약청이 불신 자초한다”

 류재천 대한독성유전단백체학회 회장은 “수입식품을 분석하는 항목 종류나 분석실력 등 인프라 자체는 선진국과 견줘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고 평가한다. 이제 식약청의 설명이 신뢰를 받으려면 규정이 지켜진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과연 식약청은 규정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을까.

최영희 민주당 의원은 식약청 국정감사에서 “경인지방 식약청 일부 직원들이 2004년 부적합 판정을 받은 수입식품에 대해 민간 식품검사기관에 재검사를 지시해 적합 제품으로 둔갑시키고 금품향응을 제공받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최 의원은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음에도 불구하고 식약청 감사 자료를 보면 직무와 관련된 업체들과 유착관계가 매년 발생하는 등 청렴도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식약청이 식품수입국에 대한 현지실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도 불신을 사는 원인이 된다. 진보신당은 지난 13일 “수입식품 부적합 건수 2위인 미국과 3위 일본에 대한 현지실사는 3년간 한 차례도 없었고 태국, 베트남, 필리핀 등은 2006년 현지실사 이후 오히려 부적합 건수가 늘었다”면서 “현지실사가 실효성이 없고 실사대상국 선정도 자의적이다.”고 비판한다.

 류 회장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대응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면서 “식약청 공무원들이 자기 아들딸을 먹인다는 생각으로 수입식품을 검사하는 자세가 아쉽다.”고 지적했다. 하 교수는 “예산과 인력 등에서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의 인구차이가 4배인데 비해 미국의 식품의약국(FDA)은 한국의 식약청보다 10배나 규모가 크다.”면서 “식품안전문제를 다루는 조직을 일원화하고 예산과 인력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2008.10.21. 서울신문에 실린 기사.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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