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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

촛불 100일에 '진화하는 촛불'을 생각한다

by betulo 2008. 8.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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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을 장식할 최대 화두가 '촛불'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얼마 없을 듯 합니다. 한국사회의 변화를 응축해서 보여준 촛불의 의미를 반추해보는 기사를 올립니다. 바로 아래 기사는 촛불 100일을 맞아 서울신문에서 준비한 기획기사였고 아래 기사 두 개는 7월18일 창간기념호에 썼던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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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6월10일 거리를 가득 메운 촛불행렬. 사진출처=서울신문 시진DB


2002년 11월 26일 여중생 사망 관련 촛불집회가 열렸을 때 20세기에 학생운동을 경험했던 이들은 유모차를 끌고 온 아줌마들과 교복을 입은 학생들,그리고 그들이 뿜어내는 자유스러움과 경쾌함에 문화충격을 경험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지도부’가 집회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깃발이 시위대 중앙을 차지하는 익숙한 풍경도 있었다. 2008년에 이르러시작된 촛불집회는 ‘과거 경험’이 더 이상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경지에 도달했다.


촛불은 진화한다. 이명박 정부가 ‘잃어버린 10년’을 보내는 동안 대중들은 끊임없이 민주주의를 업그레이드하고 있었다. 블로그와 카페,다음 아고라 등 인터넷을 통한 수평적 의사소통과 인터넷생방송과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이용한 실시간 정보공유는 ‘유희와 생활의 정치’를 구현하며 직접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각인시켰다.

 

촛불은 쇠파이프와 화염병,‘지랄탄’으로 뒤덮였던 80년대 ‘거리’를 대체했다.대학생이 주도하고 정당과 민중단체가 참여하던 집회는 ‘배운 녀자’와 ‘개념남’ ‘유모차부대’ 등이 ‘접수’했다. ‘당위’와 비장함이 지배하던 엄숙한 분위기는 “강달프(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의 애칭)도 연설 늘어지면 분위기 썰렁”해지고 선무방송차에 “노래해!”를 외치는 재기발랄로 변모했다.

 

촛불집회라고 다같은 촛불집회도 아니다. 2002년 여중생 사망사건 촛불집회와 2004년 탄핵반대촛불집회, 2008년 쇠고기협상 반대 촛불집회는 온라인 발전과 연동하면서 진화를 거듭한다. 2002년 촛불집회는 당시로서는 과연 얼마나 모일지도 의문스러울 정도로 파격적인 실험이었지만 결국 부시 미국 대통령의 사과까지 이끌어냈다.

 

2004년 촛불집회는 전형적인 정치운동에서 출발했다. 인터넷 게시판 토론과 퍼나르기 등 네트워크 확산형 운동이 등장했다.인터넷 패러디가 인기를 끌면서 유희적인 정치참여문화도 나타났다.


2008년 촛불집회는 한층 복합적이다. 초기에 쇠고기 수입반대와 재협상이라는 정책반대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정권반대운동 성격도 갖게 됐다. 2008년 촛불집회는 지도부가 존재하지 않는 수평적인 네트워크 운동이다. 인터넷 토론으로 방향을 정하고 집회현장은 유희와 즐거움이 넘치는 민주주의 축제가 벌어졌다.

 

경희대 인류사회재건연구원 교수 송경재는 “촛불 참가자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능동적인 존재”라면서 “집회를 축제와 소통의 공간,민주주의 과정으로 인식하고 새로운 과장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그는 “바로 이 대목이 촛불의 진화가 어떻게 계속될지,그리고 그것이 한국 민주주의에 어떤 의미가 될 것인지 주목해야 할 이유”라고 덧붙였다.


<서울신문 2008년 7월31일자 12면에 실렸습니다. 기사 초고를 근거했고 블로그에 올리면서 일부 수정을 했기 때문에 지면에 실린 기사와 똑같지는 않습니다.>


진보에 할 말 있다


“그들의 활동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애초 큰 기대는 없었다.촛불집회의 주체는 그들이 아니라 평범한 국민들이다.진보개혁진영도 조직의 이름이 아니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거대한 흐름에 동참하는게 좋지 않을까.” (82쿡 회원 김경란)


“진보진영은 일반 시민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정도 얹은 것 뿐이다.그만큼 시민의 눈높이에서 변화하는 흐름을 보지 못하고 매너리즘과 관성에 젖어 기존의 방식을 되풀이하고 있다.” (블로거 ‘생명은 힘이 세다’)

 

60일 넘게 촛불이 밤을 밝힌다.몇 차례 위기와 반전을 거듭하며 이어지는 ‘촛불’은 한국 을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사회로 바꿔놓고 있다. 위기 속에서 촛불을 이어오는 원동력은 조직된 시민사회단체나 노동단체보다는 오히려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이다. 새로운 진보의 핵심으로 부상한 ‘집단지성’은 ‘기존’ 진보개혁진영에게 ‘국민을 지도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국민들 속에서 함께 주도한다.’는 발상전환을 주문한다.‘촛불’들이 진보개혁진영에 던지는 쓴소리를 들어봤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진짜로!”

 

촛불집회 현장에서 만난 한 시민은 진보개혁진영 운동가들과 시민의 차이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는 외침에서 찾았다.


“진보개혁진영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외칠 때 그것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민주공화국’이 먼 얘기라는 점에서는 정부나 정치권이나 진보개혁진영이나 모두 마찬가지다. 하지만 촛불을 든 시민들은 말 그대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믿는다. 당연한 것이 훼손당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거다.물대포 앞에서 ‘온수’를 외치는 자신감은 자기가 바로 ‘민주공화국의 주인’이라고 믿으니까 가능한거다.”


  그는 “진보개혁진영 대부분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다.’는 분노에서 운동을 시작했던 사람들”이라면서 “운동가들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젊은 세대들이 생활로 누리는 ‘민주공화국’을 배워야 한다.”고 충고했다.


대통령만 불신 받는게 아니다


새정부 출범과 쇠고기협상 발표 이후 진보개혁진영이 패배주의에 빠져 있을 때 상황을 반전시킨 네티즌들은 진보개혁진영에게 ‘신뢰회복’과 ‘눈높이’를 주문했다.


  블로거 ‘한강’은 “막말로 이명박 대통령이 하야하고 진보개혁진영이 집권한들 과연 얼마나 달라질지 의문”이라면서 “대통령과 정부가 불신받는게 촛불집회라는 직접행동이 표출된 배경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론 진보개혁진영도 국민들의 신뢰를 못받았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진보개혁진영에 대해 “열정은 존경하지만 공부가 부족하다.”면서 한 예로 “정부보고서를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기동성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블로거 ‘산해정’은 “촛불집회에서 진보개혁진영은 일반 시민들이 주도하는 집회에 단순 참가한 의미밖에 없다.”고 단언하면서 “지금까지 진보개혁진영이 내놓은 의제들이 가치있다는 건 분명하지만 국민들은 자신의 삶과 연결된 것으로 생각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그는 “진보개혁진영과 서민들의 지지로 집권했지만 오락가락하다 양극화만 심화시킨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거울로 삼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존의 조직 중심 운동에 대한 비판도 눈에 띈다. 조선일보 광고거부운동으로 유명해진 ‘82쿡’ 회원으로 활동하는 김경란은 “수퍼맨이나 배트맨같은 수퍼영웅들이 세상을 구할 때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몰랐던 일반인들이 이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다.”면서 “진보개혁진영이 자기들의 틀을 깨고 국민의 한 사람들로서 거대한 흐름을 같이 만들어내는게 좋다고 본다.”고 밝혔다.


재미있게 진보합시다


60일 넘게 이어지는 촛불집회는 진보개혁진영에게 ‘진보의 재구성’을 요구한다.문제는 방법이다. 한때 시민운동에 몸담았던 전직 시민운동가 세 명한테서 그들이 생각하는 “재미있게 진보하기”를 들어봤다.요청에 따라 실명은 밝히지 않는다.


“시민운동가도 ‘스타 논객’이 될 수 있다”


10년 넘게 시민단체에서 일하다 지금은 공무원으로 일하는 J씨는 “집회에 참여하는 시민운동가는 많아도 토론에 참여하는 시민운동가가 얼마나 되는지 의문”이라면서 “시민운동가도 다음 아고라 등 인터넷 공간에서 적극적으로 ‘논객’ 활동을 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스스로 진보를 추구하는 시민운동가라면 촛불집회 국면에 시민들과 동등한 한 주체로 참여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J씨는 “많은 이들이 시민운동가들의 ‘실력’문제를 지적하는데 너무나 많은 쟁점을 해결하려 하는 백화점식 운동에선 시민운동가의 전문성을 살릴 수가 없다.”면서 “개인 차원에서 참여하는 논객 활동이 시민운동가 뿐 아니라 시민단체에도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진보가 엽기발랄한들 어떠하리”


H씨는 현재 대학 부설 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는 전직 인권운동가다. 그는 “진보도 엽기발랄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서태지와 ‘진보’를 연결시킨 광고 카피에서 거부감을 느끼는 엄숙주의에서 벗어나자.”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진보의 이미지가 활개를 칠 때 진보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지고, ‘빨갱이, 체제전복 세력, 친북 또는 종북세력’으로만 곧바로 연결되는 어이없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와 함께 “시민단체들이 각자의 주제를 갖고 인터넷 생중계를 시도해보자.”고 제안한다. “여성단체는 여성의 눈으로, 청소년단체는 청소년의 눈으로 광장에 모인 시민들, 광장에 모이지 않은 시민들을 만나서 얘기를 듣자.”는 것.


“삼팔선은 그만 지키자”


7년 가까이 시민운동을 하다 정부 위원회에서 일하는 S씨는 “시대는 생동감 넘치는데 진보개혁진영은 구태의연하다.”면서 “무겁고 엄숙해야만 권위가 선다는 생각을 버리고 정책적 반대를 위한 퍼포먼스만 할 것이 아니라 일상에 찌들고 지친 시민들을 웃고 행복하게 해줄 ‘쌩쇼’라도 해 보자.”고 말했다. 그는 “내가 아니면 문제 해결이 안된다는 자가당착적인 의식을 버리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서울신문 2008년 7월18일자에 실렸습니다. 기사 초고를 근거했고 블로그에 올리면서 일부 수정을 했기 때문에 지면에 실린 기사와 똑같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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