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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사해/동아시아

동북아 화해? 차이 이해하려는 노력부터

by 자작나무숲 2008. 10. 8.

대학원 2학기 수업으로 수강하는 ‘글로벌동북아시대의 국가발전전략’은 관련 전문가들을 초청해 강연을 듣고 토론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지난 9월30일 강연한 스탠포드대 사회학과 교수 겸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 신기욱은 세 번째 연사였다. 전문가들의 강연은 솔직히 대학원생들끼리만 듣고 말기엔 너무 아깝다. 강연요지를 중심으로 간단한 평을 곁들이는 글을 블로그에 올린다. 많은 관심을 바란다.  <주인 白>


강연제목: 동북아 지역의 지역주의와 민족주의>

강사: 신기욱 스탠포드대 사회학과 교수 겸 아시아태평양연구소장

날짜: 2008.9.30


신기욱은 군사안보나 경제를 중심에 놓고 보는 동북아연구 경향과 다르게 “역사, 사회, 민족주의 등이 동북아 국제정세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가”를 강조한다.



  그는 역내교역, 문화교류, 정치교류 등 지역내 교류 활발과 동시에 존재하는 “여전히 강력한 민족주의 문제를 지목하면서 역사문제와 영토문제를 예로 들었다.


  그는 “한국만 해도 진보와 보수 이념대립이 존재하지만 한일관계에선 좌우 구분이 무의미하다.”고 밝혔다. 일견 상호모순된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게 동북아연구에서 중요한 이슈다.


  신기욱이 보기에 19세기 후반 이후 아시아주의가 중요한 담론이 됐다. 여기에는 중국이나 한국의 지식인들도 상당히 동조했다. 하지만 일본이 제국주의로 변모하고 1930년대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해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 블록을 설정하고자 노력하면서 아시아는 화마에 휩싸였다.


  결국 일본은 패퇴했다. 이런 경험은 1980년대 일본경제가 아시아지역에 ‘엔 블록’을 설정하려 할 때도 한국, 중국 등에서 강한 의구심을 보이는 것으로 영향을 미쳤다. 유럽과 달리 아시아의 단일정체성은 가능할 것인가. 신 소장은 “당장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럼 민족주의는 어떻게 볼 것인가. 신 소장은 “유럽은 지금도 국경지도가 계속 바뀌고 있지만 한중일은 천여년 가까이 국경선이 유지되고 있다.”면서 “근대적 의미는 아니지만 뚜렷하게 구분되는 정치공동체를 유지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Nation, Ethnicity, Race로 구분하기 힘든 것을 예로 들었다. 미국에선 Korean American이라고 할 때 어메리컨은 Nation, 코리안은 Ithnicity, 황인종은 Race로 구분이 명확하다. 하지만 한국이나 일본은 그런 구분이 대단히 모호하다. 단일민족 정체성을 유지하는 한국이나 일본의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경우다. 중국도 중화주의라는 민족주의는 강고하다. 타이완만 하더라도 타이완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지역주의와 민족주의 공존하는 동북아


지역주의와 민족주의가 공존하는 동아시아 현실을 어떻게 볼 것인가.


  2006년 중국에서 조사한 결과가 눈길을 끈다. 왜 일본에 호의적이지 않은가. 대답이 흥미롭다. 남경학살(42%), 과거사문제(20%), 전쟁범죄 부정(16%), 야스쿠니신사참배(10%)다. 모두 역사문제다. 역사문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것은 역사적 화해가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시사한다.


“일본의 왕이나 수상이 과거사문제에 대해 사과를 한 적이 있었나. 있었다면 몇 번이나 있었나. ‘통석의 념’ 같은 외교적 수사를 감안해 사과로 받아들인다면 8~9번이었다. 문제는 한국인들은 그걸 사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과가 있고 나면 항상 ‘망언’이 뒤따르는 것도 상황을 꼬이게 한다. 한일협정 당시 보상에 대해서도 한일간 인식차는 굉장히 크다.” 


  이 지점에서 신기욱은 “같은 사건이라도 각 나라마다 역사에 대한 기억이 다르다. 그리고 그 기억이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준다. 역사교육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말한다. 한국과 일본이 똑같이 공유하는 교과서를 만들려는 기존 노력은 거의 실패했다. 비공식적 차원의 공통교과서를 위한 노력도 과연 얼마나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미지수다.


  문제의 근원에는 ‘국사’ 체계가 있다. 일본이 만들어낸 국사라는 체계는 한국에도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역사서술을 통한 역사교육이 민족정체성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다. 한국과 중국은 국정교과서 체계고 일본도 검인정이지만 정부 영향력이 적지 않다. 역사교과서 문제는 민감한 외교적 사안이 돼 버린다.


서로 다르게 기억한다는 것부터 인정하자


  신기욱이 속한 연구소에서는 ‘분열된 기억과 역사적 화해’라는 3개년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동북아역사재단과 함께 하는 이 프로젝트는 집단 기억의 화해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한 뜻깊은 시도로 들린다.


  (한겨레는 9월30일자 관련 기사에서 이를 “3년 동안 진행될 프로젝트를 통해 이들이 지향하는 ‘화해’는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일치된 평가를 도출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인정하고 조절하는 방법을 탐색하는 것’이다.”라고 표현했다. 아울러 "화해는 도달해야 할 종점이 아니라 상호이해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성취되는 것"이라는 신기욱 발언도 인용한다.)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미국 등 5개국의 역사교과서가 1931년부터 1951년에 이르는 시기를 어떻게 서술하는지를 비교분석하는 것이다. 1931년은 일본이 만주를 침공했고 1951년은 샌프란시스코조약이 체결됐다. 첫해에는 각국 역사교과서를 대상으로 하고 내년엔 영화, 3년차인 2010년에는 각국 엘리트들의 역사인식 분석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신기욱은 현재까지 진척된 연구성과를 일부 소개하기도 했다.


  일본근 대사 교과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 가량 된다. 반면 한국 근대사 교과서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25% 정도다. 한국 근대사에서 일본 근대사가 중요한 만큼 일본 근대사에선 한국 근대사가 별반 중요하지 않다.

다시 말해 일본인은 한국인만큼 상대국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일본에서 원자폭탄 투하는 대단히 중요한 역사적 경험으로 교과서에 등장한다. 반면 한국 교과서를 비롯한 주변국 교과서에서 원자폭탄 언급은 거의 없다.

우리는 일본을 가해자로만 기억하지만 일본인에겐 피해의식이 적지 않다. 교과서 분석의 결과는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너무 일방적 관점 강조하다보니 인식차이는 커지고 상대방을 이해하기는 더 어려워진다.


  전직 대통령 노무현이 미국 방문 당시 “독일은 역사 화해를 이뤘는데 일본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신기욱은 이에 대해 “그렇게 단순한 논리로 다른 나라를 설득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는 “프랑스나 독일이 아프리카에서 저지른 엄청난 범죄에 대해 사과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느냐”면서 “세계적으로 보면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가 예외”라고 밝혔다.


동북아 화해 위한 미국 역할론


결국 동북아 역사 문제를 해결하려면 미국이 일정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게 신기욱의 생각이다. 미국은 공식적으론 중립을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신기욱이 보기에 동북아 질서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미국이다.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 가령 도쿄전범재판은 진주만 공격은 주목했지만 정신대문제나 남경학살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천황제를 유지한 것도 미국이었다. 이는 일본인들에게 ‘천황은 전쟁의 피해자이고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왜곡된 이미지를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조약조차도 한국이나 중국의 의견을 무시한 속에서 독도문제의 불씨를 남겼다.다시 말해 미국이 조그만 행동이라도 나선다면 그건 일본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의 전 하원의장이라도 히로시마평화공원을 방문해 헌화한다면 그것이 갖는 파장이 어떠할지 상상해 봐라.” (신기욱이 보기에 독도 문제는 정치문제가 아니라 역사문제다)


  자, 이제 신기욱은 결론을 향해 나아간다. 그는 말한다.


"동북아 지역에서 역사화해라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동북아 평화정착은 먼 얘기일 뿐이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넓은 시각에서 보면 한중일 사이에 공유할 수 있는게 적지 않다. 오랜 역사를 돌아보면 전쟁보다는 평화롭게 지난 기간이 훨씬 많았다. 중요한 건 다시 정치적 리더십이다. 불행히도 한중일 어느 나라도 역사문제 해결하려는 의지가 부족하다. 오히려 정치문제로 활용하려는 경향이 크다."



 "미국과 연계해 중국 견제하자"

 

신기욱은 오해 소지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정세에서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자기 생각을 밝혔다. 간단하게 얘기하면 전략적 미국 활용론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래 내용은 발언을 요약한 것이다.


중국과 어떻게 살 것인가. 일본은 미국과 전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외전략인 ‘미국과 함께 중국을 견제한다.’를 실천하다. 앞으로 차이나 퀘스천이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인가. 그런 면에서 베트남과 전략적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 

동북아 지도를 봐라. 한국은 중국, 일본, 러시아 사이에 끼여 있다. 하지만 그 지도에서 한국을 뗴어내 유럽으로 옮겨보자. 한국이 작은 나라가 아니다. 결국 러시아, 중국, 일본에게 한반도는 대단히 중요한 전략적 위치를 차지한다. 미국은 아무래도 이해관계가 상대적으로 적다. 미국을 어떻게 활용해 동북아 지역 평화를 유지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전략적 관점에서 미국과 일본을 활용해 중국을 견제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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