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횡사해328

리비아의 미래는 이라크가 될 것인가 리비아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 해법이 군사 제재 조치에 방점을 두는 미국·영국과 여기에 제동을 걸려는 여타 국가로 양분되고 있습니다. 미·영은 ‘인도적 개입’을 명분으로 하지만 여타 국가들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합의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우죠. 미·영이 유엔을 통한 문제 해결보다는 리비아의 석유 자원을 노려 과거 이라크에서처럼 독자적인 군사작전을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미·영이 과거 이라크를 침공해 석유 자원을 차지했던 사례가 리비아에서 재연될 수 있다는 겁니다. 논쟁지점을 제 나름대로 세 가지로 나눠서 정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군사개입은 효과적일까? 중동 문제 전문가인 미국 정책연구소(IPS) 필리스 베니스 연구원은 4일 연구소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미군이 1986년 트리폴.. 2011. 3. 10.
담론을 지배하는 국가가 세계를 지배한다 위기 의식 커지는 미국..."담론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미국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2일(현지시간) 자아비판을 했다. 중동에서 벌어지는 거대한 변혁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우린 패배하고 있다”고 외쳤다. 상원 외교위원회가 개최한 청문회에 선 클린턴 장관은 리비아 사태 등 중동 정세를 설명하면서 “우리는 지금 정보전쟁 중이며, 그 전쟁에서 지고 있다.”는 말로 미 외교의 현주소를 축약해 설명했다. 여론전에서 지고 있다는 게 클린턴 장관에겐 무엇보다 뼈아프다. “알자지라는 사람들의 마음과 행동을 바꾸는 선도자 역할을 한다. 우리는 알자지라에 패배하고 있다.” 그는 “알자지라의 시청률이 미국에서 올라가고 있는데 그것은 진짜 뉴스이기 때문”이라며 “반대로 미국의 TV는 수많은 광고와 공허한 논쟁.. 2011. 3. 4.
리비아 정국 이해하는 열쇠는? 부족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이 물너설 수 없는 극한충돌을 이어간다. 향후 리비아 정국을 이해하는 핵심열쇠로 부족들의 움직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리비아에서 국내 정치에 영향력을 가질만한 부족들은 30여개에 이른다. BBC방송에 따르면 카다피는 1969년 정권을 잡은 뒤 초기 10년 동안은 부족들을 평등하게 대하면서 고른 지지를 끌어냈다. 하지만 점차 각 부족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통해 부족들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정권을 유지했다. 이로 인해 특정 부족이 정부와 군 요직을 차지하게 되면서 부족간 알력과 갈등이 누적됐다. 리비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부족은 와르팔라, 마가리하, 알진탄이다. 여기에 카다피가 부족장을 맡은 알카다파 부족을 포함해 리비아 4대 유력부족이 리비아 전체 인.. 2011. 3. 2.
왜 카다피를 보면서 '가카'가 떠오를까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에 대해 리비아 정부가 벌인 대응방식은 말 그대로 ‘막가파’다. 이 정도면 학살이라고 해야 할 지경이다. 사망자가 2000명이 넘는다는 발표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초강경 시위 진압으로 세계를 경악시킨 리비아의 국가원수 무아마르 알 카다피(69)는 현존하는 최장기 독재자다. 그런데 말이다. 그 역시 한때는 부패한 왕과 낡은 전제군주제를 몰아내고 국가의 면모를 일신했던 젊은 혁명 영웅이었다. 하지만 42년이라는 시간은 눈에 총기가 가득한 새세대 지도자를 권력의 단맛에 취해 눈이 풀려버린 똠방각하로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하고도 남는 시간이었다. ●그도 한때는… 카다피는 1942년 유목민의 아들로 태어났다. 1963년 대학을 졸업한 뒤 군사학교에 들어가 직업군인이 됐다. 당시 이집트 대통령이.. 2011. 3. 2.
리비아에 등장하는 무기들 면면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 진영과 반정부군이 사용하는 무기들을 살펴보면 리비아가 전 세계 무기 전시장이 된 듯한 느낌마저 든다. 이들이 손에 쥔 무기에는 굴곡 많은 현대사를 거쳐 온 리비아의 모순과 갈등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근대 이후 리비아군의 뿌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리비아에서 작전을 전개했던 영국군과 그 이후 리비아에 군사기지를 주둔시켰던 미국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옛 소련과 수십년간 맺었던 긴밀한 군사협력의 유산은 지금도 개인화기인 AK47 소총부터 T72 탱크, 주요 전투기 등에 그대로 남아 있다. 카다피가 정권 안위를 위해 넘쳐나는 오일머니로 각종 무기를 사들이면서 브라질, 체코슬로바키아,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 유고슬라비아, 심지어 북한산 무기까지 리비아로 흘러들어 .. 2011. 3. 1.
현존 최장기독재자 카다피의 아들들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는 그동안 정권안보를 위협하는 조짐이 있을 때마다 600만 국민들을 주저 없이 무력으로 억압해 왔다. 1996년 아부 살림 교도소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중화기를 동원해 1000여명을 학살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튀니지나 이집트에 비해 훨씬 철저하게 12만명에 이르는 군대를 장악하고 있다. 특히 주력부대는 대부분 아들이나 핵심 측근이 장악하고 있다. 강경 시위진압을 지휘한 것도 아들들이다. 그럼 카다피의 아들들은 어떤 인물들일까. 영국 일간 가디언과 BBC방송을 토대로 카다피 집안을 들여다보자. 카다피는 결혼을 두 번 했고 모두 8명(아들 7명, 딸 1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첫 부인과 사이에 아들을 하나 낳았고, 두 번째 부인이 아들 6명과 딸 하나를 낳았다. 조카를 둘 입양했지만.. 2011. 2. 22.
카다피, 젊은 혁명영웅에서 학살원흉으로 리비아 정부가 말 그대로 ‘막가파’식 시위진압을 하고 있다. 이 정도면 학살이라고 해야 할 지경이다. BBC방송은 19일 시위 도중 숨진 희생자들의 장례식에 참석한 문상객들이 14.5㎜ 대구경 기관총 공격을 받아 최소한 15명이 숨지는 사태가 벌어졌다고 전했다. 어떤 희생자는 지대공 미사일에 머리를 맞았다. 시위에 참가한 한 시민은 “벵가지는 마치 시위대와 보안군이 대치하는 전쟁터 같다.”고 말했다고 알자지라방송은 전했다. 알자지라방송은 현지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벵가지 한곳에서만 200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면서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희생자가 훨씬 더 많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리비아 정부는 시위가 확산되거나 외부에 구체적인 시위 상황이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인터넷을 전면 차단했다. 초강경 .. 2011. 2. 21.
트위터로 이란 염장 지르는 미국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대립을 거듭하고 있는 미국과 이란이 이번에는 트위터 때문에 얼굴 붉히게 생겼다. 미 국무부가 2월 14일부터 페르시아어 트위터 계정을 만들어 메시지를 날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목표는 분명해 보인다. 이집트 민주화시위 과정에서 위력을 발휘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이용하는 이란 국민들을 겨냥한 셈이다. 이집트나 바레인처럼 미국의 굳건한 동맹이었던 곳에서 일어난 시위에 대해서는 자제를 촉구하거나 '질서있는 전환'을 강조하는 미국이 대립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상당히 다른 대처방식을 쓰고 있다. (이란은 인종적으로 아랍이 아니라 페르시아족이 주류이고, 언어도 아랍어가 아니라 페르시아어를 쓴다.) 미 국무부는 14일 ‘미국 다르파르시’(@USA darFarsi)를 통해 페르시아어로.. 2011. 2. 18.
'무바라크 이후' 이집트 정치 '총감독' 군부 호스니 무바라크 정부와 야권이 헌법개혁위원회 구성 등에 합의해 소요 사태 2주일 만에 대화 국면을 형성하면서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과 막후의 군부가 집중적인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가 6일(현지시간) “9월 선거 이후 누가 새 대통령이 되더라도 부유하고 비밀스러운 군부가 이집트 통치의 열쇠를 쥐게 될 것”이라고 보도한 데에서 보듯 ‘포스트 무바라크 시대’의 열쇠는 결국 술레이만과 군부가 쥐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집트 정치 개혁 논의의 ‘주연’이 술레이만이라면, 군부는 이를 연출하는 ‘총감독’으로 자리매김해 가는 형국이다. 현대 이집트 권력의 원천 사실 이집트의 현대정치는 군부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1953년 ‘자유장교단’ 쿠데타로 왕정을 무너뜨린 뒤 초대 대통령이 된 무하마드 나기브부터 .. 2011. 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