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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역사이야기

자베르 경감의 딜레마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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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어떤 임무에 충실해야 하는가


태초에 경찰은 없었다. 다만 사회가 만들어지고 구성원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경찰의 역할을 한 경우는 있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직업경찰이 생겨났다.

세계에서 근대적인 국립경찰의 역사가 가장 오랜 것은 우리나라이다. 1829년에야 제복을 입고 칼을 찬 근대식 경찰인 파리경찰청과 런던경찰청이 생겼지만 우리는 그보다 300여년전인 1500년대에 포도청이 설치되었다.

조선의 기본법인 경국대전에는 포도청 규정이 없었으나 성종 때 도적의 발호를 막기 위해 한시적으로 포도장이라는 기관을 운영하다가 중종 때 아예 상설기관으로 만든 것이 포도청이다.

이렇게 민생치안을 위해 설치된 포도청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양란을 겪고 난후 왕권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무관이 포도청을 운영하고 지방의 토포영도 군사조직이 겸하면서 경찰조직과 군사조직이 하나가 되었다. 특히 대궐에서는 포도대장이 왕을 호위하고 왕의 명령을 직접 하달하기도 했다.

민생치안 때문에 생겼다가 공안치안으로 변화된 것, 이것이 우리나라 경찰제도가 가지는 특수한 모습이다. 서구의 근대경찰이 치안과 군사권을 분리해서 그 맥을 이어오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구 경찰의 근대적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는 1830년대 프랑스 대혁명을 배경으로 하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을 추적하는 자베르 경감이다.

법과 원칙에 충실한 원칙주의자인 자베르 경감은 당시 혁명이 진행되는 정치적 상황과는 무관하게 휴머니스트 장발장 체포한다. 하지만 공리와 윤리사이에서 번민하던 그는 장발장을 풀어주고 자살한다.

‘자베르경감의 딜레마’라는 것이 있다. 사회질서를 잡아가는 서구에서 변화에 대한 고민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의 융통성은 민주주의 혹은 휴머니즘이라는 메시지도 전달한다. 법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이 목적이 아닌가 하는 문제의식이다. 사회의 발전을 뒤쫒아가는 법은 바로 그런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포도청은 1894년 갑오개혁과 함께 경무청으로 변화한다. 그러나 제복과 명칭만 서구식으로 바뀌었을 뿐 정치에 충성하는 기본적인 성격은 오히려 계승되고 강화된다. 의병을 탄압하고 나라를 잃게 하는데 일조하게 된다. 당시 구한말의 군인들이 대부분 의병이 되거나 독립운동을 한 것과 대조적이다. 군인들은 국가에 충성했지만 그들은 정권수호라는 임무(직장)에만 충실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정권이 바뀌면 그것이 일제라도 그들에 충성하면 될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자베르 경감의 딜레마에 빠진 경찰이 있을 것이다. 정권수호에 충실하던 조선후기에도 방대한 “포도청등록”같은 기록을 남긴 직업에 충실한 전문경찰들이 있었다. 포도청 등록에는 다양한 범죄수사 기록이 있는데 예를 들면 천주교 박해 때의 신문기록에는 ‘죽으면 바로 천당에 가니 죽여 달라’는 애절한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기록도 남아 있다. 하지만 그들은 소원을 들어주지 않는다. 다만 죄에 대해 신문할 뿐이었다.

하지만 정치적 논리나 상황에 충실한 현재의 경찰들의 모습에는 그런 모습이 찾아지지 않는다. ‘나를 잡아가라’는 시민들에게 ‘그럼 잡아갈께’라고 응대하는 경찰은 어느 시대의 경찰인가


정창수(역사기고가)

*이글은 시민사회신문에도 연재되고 있습니다.http://www.ingo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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