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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역사이야기

머슴을 부리는 법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7.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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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밑빠진독’ 님과 함께 팀블로그를 만들기로 했다고 발표한지 반년도 지나서야 약속을 이행하게 됐습니다. (밑빠진독님! 너무 부지런하신거 아녜요~~~) 밑빠진독님은 제게 ‘예산’ 문제를 일깨워주신 ‘싸부님’ 되시겠습니다. 저와 밑빠진독 님이 둘이서 글을 같이 올림으로써 ‘예산읽기 정책알기’라는 애초 취지를 더 잘 살릴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아울러 밑빠진독 님과 저의 공통 취미생활인 ‘역사’ 주제도 밑반찬으로 내놓습니다. 밑반찬이 맛있으면 밑반찬 혼자서 밥도둑 구실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제 블로그도 그런 구실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머슴을 부리는 법

민주주의의 특히 의회의 모델은 영국이 대표적으로 언급된다. 영국의 의회제도는 무려 7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런데 이들이 완전한 전체 국민의 투표에 의해서 선출된 것은 100여년에 불과하다. 1911년 이전의 영국의회는 귀족이나 ‘젠트리’라고 하는 하급귀족이 무보수로 봉사하는 직위였다.

보수 없이 일하는 젠트리 국회의원은 언뜻 청렴하고 사심 없는 정치가처럼 보인다. ‘젠틀맨’은 ‘젠트리’를 칭하는 말이다. 돈도 많이 가지고 있으니 욕심도 안 부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히려 가난한 사람이 정치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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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도 가난한 정치인을 싫어하고 부자 정치인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그 ‘편견’은 뿌리가 깊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노동하지 않고 여유가 있어서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곧 신사일까?

당시 영국에서 귀족이란 1만 에이커(40㎢) 이상의 토지를 소유한 거대 지주이고 젠트리는 3천 에이커 이상의 토지를 가진 지주를 말한다. 이 정도만 해도 4백만 평, 즉 여의도보다 큰 땅을 갖고 있는 대지주들이었다.

이들의 문화는 고급 백수들의 문화다. 사냥하고 도박하고 교양을 쌓다가 짬을 내어 정치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모범적인 영국문화로 존경을 받아 중류층들도 흉내를 내다 보니 이것이 흔히 말하는 ‘젠틀맨십’이다. 노동당의 지도자들마저도 은퇴 후에는 귀족 작위를 받고 상원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것은 이렇게 뿌리 깊은 의식구조 때문이다.

이들은 전 인구의 0.5%에 지나지 않지만 전체 토지의 55%를 차지하고 있었다. 교양 있는 젠트리들은 교양 없는 하층 계급에게 절대로 기득권을 나눠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급제도는 그래서 좋은 제도라고 볼 수만은 없다. 부유한 사람만이 정치를 할 수 있고 기득권을 가진 자신들을 위한 국회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1911년 국회의원에게 봉급이 지급되었다. 노동자들이 지지한 노동당이 의회에 진출하면서부터이다. 그들은 놀면서 정치할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비로소 대중 민주주의의 시대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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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것은 영국의 의회는 서로 마주보는 구조인데, 앞에 각각 붉은 선을 그어 놓았다. 이것을 검선이라고 하는데 의원들이 연설 도중 절대로 이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

의원들이 흥분해서 검을 뽑더라도, 상대편에 닿지 않도록 한 것이다. 실제로 의회에서 칼부림이 자주 일어났다. 백수들도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결코 ‘젠틀’하지 않았던 것이다.

현재 국회에서 의원세비 반납 논란이 있다. 일을 하지 않으니 돈을 반납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면 그들은 일을 안 해도 되는 역설이 성립된다. 감정적으로 그들이 마음에 안들 수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돈많은 백수를 할수 있는 그들이 모든 결정을 하는 의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오히려 그들의 세비를 올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시민들이 감시할 권한을 가지고,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지 끌어 내릴수 있어야 한다. 머슴은 먹이면서 부려야지 굶기면 나쁜 궁리만 하고, 일이 될 수가 없다.


정창수(역사기고가)

*이글은 시민사회신문에 연재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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