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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자작나무책꽂이

고전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일까?

by 자작나무숲 2016.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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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삽입 이미지조선시대 서재그림. 자신의 서재를 고전으로만 채워놓은 사람은 과거에 묻혀 사는 사람이거나 허영심 넘치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고전이 될만한 '신간서적'으로 자신의 서재를 채워보자.



오늘자 경향신문에 관심을 끄는 기사가 있었다. 취업전쟁 때문에 사회과학서적 읽는 건 사치라며 ‘고전 담 쌓은 서울대생’을 주장하는 기사다. 기사의 근거가 되는 건 최근 교수신문이 국내 학회와 계간지 편집위원 1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60년 동안 한국사회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책들이 서울대도서관 대출순위(2001~2008.4.15)에서 순위에 오르지도 못했다는 거다. 

이 기사는 전문가 103명의 권위에 빌어 서울대생들이 고전을 읽지 않는다는 논지를 폈다. 이유는 바로 취업전쟁과 “상업주의, 감각주의, 개인주의”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이 기사는 허점이 너무 많다. 도서관에서 대출하지 않고 직접 사서 읽어본 대학생이 더 많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일단 제쳐놓자. 90년대 대학생, 심지어 80년대 대학생 중에 한국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책을 다 읽어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당장 기사가 지목한대로 취업전쟁을 겪지 않았고 상업주의나 감각주의, 개인주의와 담 쌓고 지냈다고 자부하는 나만 해도 전문가들이 꼽은 책 가운데 읽어본 책은 해방전후사의 인식(2위), 제3의물결(5위), 오리엔탈리즘(6위), 태백산맥(9위) 뿐이다. 그나마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태백산맥을 빼고는 전부 대학을 졸업한 후 읽었다. 대학시절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았던 친구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출처=경향신문



기사는 서울대도서관 대출순위를 보여주면서 사회과학서적을 읽지 않고 고전을 읽지 않는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전혀 다르다. ‘구별짓기’나 ‘변신’ ‘장미의 이름’ ‘좀머씨 이야기’ 등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들만한 책들이다. 대출 순위가 돈버는 법이나 재테크 하는 법 책들 위주가 아닌 바에야 오히려 서울대도서관대출순위는 “여전히 서울대생들이 건강하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高典’ 아닌 ‘古典’은 그저 오래된 책일 뿐

기사에서 내가 가장 거부감을 느낀 것은 ‘고전’에 대한 지나친 ‘숭배’ 때문이다. 인류의 지성에 큰 영향을 남긴 고전은 존중받아야 한다. 하지만 때로는 고전에 대한 강박관념이 건강한 지성발전을 가로막기도 한다.


대학 시절 운동권 일부 선배들이 방학을 이용해 러시아혁명을 주제로 한두달씩 학습을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공산주의혁명에 대해 레닌이 쓴 ‘고전’들을 읽으며 열심히 토론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에게 더 필요한 건 레닌의 저작이나 러시아혁명의 경험이 아니라 한국의 고민과 한국의 경험이었다.


다른 학교의 어떤 선배들은 학습이라면 오로지 ‘원전’만 시킨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다. 원전을 완전히 학습한 다음에 다른 조류의 책들을 소화할 수 있지 거꾸로 하면 “잡사상에 오염되기 때문”이란다. 솔직히 나는 그런 학습방식을 가진 선배들이 한총련 지도부를 차지했던게 한총련을 몰락을 향한 지름길로 인도했다고 본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고전이라고 반드시 읽어야 할 필요가 있는 ‘필수교재’라고 볼 필요도 없다. 과격하게 말해서 ‘논어’는 동아시아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책이지만 솔직히 그걸 우리가 반드시 읽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솔직히 나는 ‘논어’를 읽다가 지루해서 포기했지만 앞으로도 굳이 나서서 ‘논어’를 읽을 생각은 안든다.)


나는 오히려 신간서적을 더 많이 읽는게 지성 발전을 위해 좋다는 입장이다. (물론 신간서적이라고 다 같은 신간서적은 아니다는 점을 분명히 해놓자.) 



프랑스 정치학자 토크빌이 1835년에 쓴 ‘미국의 민주주의’는 이 분야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고전이다. 하지만 미국의 민주주의를 깊게 알고자 하는 사람에겐 ‘미국의 민주주의’보다는 이삼성 교수가 1990년대에 쓴 ‘
래의 역사에서 미국은 희망인가’라든가 ‘미국과 세계’를 읽는게 더 유용할 수도 있다. 



이삼성 교수가 쓴 책에는 토크빌을 비롯한 그 이후 다른 학자들의 고민의 흔적을 토대로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19세기 초반 시점의 관찰보다는 그 이후 150여년의 역사적 흐름과 현재시점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까지 짚어주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논리로 인권의 고전이라 할 만한 홉스, 로크, 루소의 저작들은 고전으로서 큰 중요성이 있는 책이지만 이 책들보다 조효제 교수가 얼마전 쓴 ‘인권의 문법’이나 번역서 ‘세계인권사상사’가 더 유용하고 가치있는 책일 수 있다.


고전이라고 해서 다같은 고전도 아니다. 고전에는 高典도 있지만 그냥 古典도 있다. 高典이 아닌 古典은 그저 오래된 책일 뿐이다.


<2008년 4월17일 처음 쓰다>


<2016년 6월22일 보완>

고종석이 시사IN 457호(2016/6/18)에 기고한 <고전이란 어떤 책일까>(68쪽)를 읽으면서, 2008년에 내가 썼던 글과 동일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걸 보고 기쁜 마음에 글 일부를 발췌해 기억하고자 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공자와 맹자는 확실히 지적으로 비범한 사람이었어. 그런데 이들의 '앎'이 평균적 현대인의 '앎'보다 넓거나 깊을까? 그럴 수는 없어. 이들은 우리보다 2000~3000년 전 사람이고, 그 2000~3000년간 우리 인류는 많은 '앎'을 축적해왔으니까."

"과학소설가이자 영화평론가인 듀나라는 이는 이 점을 강조하며, 옛 사람들이 어른이고 지금 우리가어린이인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옛사람들이 어린이고 우리가 어른이라고 말했어. 생각해보면 당연하지. 우리는 플라톤에 견주어 더 성장했고, 그 성장 과정에서 많은 지식을 습득하고 축적했으니까."

"비유하자면 우리는 대학원생이고 플라톤은 유치원생인 격인데, 대학원생이 유치원생에게 배울 것은, 설령 있다 해도, 거의 없을 거야. 그래서 나는 '고전을 읽자'라는 구호 아래 고대인들의 책을 읽는 캠페인을 벌이는 사람들을 보면 좀 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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