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기사/취재뒷얘기

[20&30] 이럴 때 학력위조 유혹 느낀다

by 자작나무숲 2007. 9. 6.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학력 위조 파문이 계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신정아 전 동국대 교수의 학력 위조 이후 학력 위조 파문은 학계, 예술계, 연예계 등 사회 각계 각층을 뒤흔들고 있다. 이러한 학력위조 논란은 자연스럽게 학벌만 중시하는 사회 풍조를 비판하는 것으로 모아진다. 그러나 유명인이냐 아니냐일 뿐이지 학력 위조는 우리 주변에 만연돼 있다. 학력 위조 유혹을 느낄 때는 더 일상적이다. 직장에서 ‘짧은 가방끈’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거나 무시를 당할 때, 명문대 재학생으로 포장하면 과외 등을 더 쉽게 구할 수 있을 때 학력위조의 유혹을 느낀다.20&30이 직면하는 학력위조 유혹에 대한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차별받을 때 유혹 느낀다


많은 이들이 학력 때문에 차별을 받을 때 학력위조 유혹을 느낀다. 최근 불거진 학력위조 논쟁에 대해서도 ‘나도 학력위조 했으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을텐데.’하는 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정보통신(IT)분야 벤처기업에서 과장으로 일하는 정모(32)씨는 창립멤버임에도 고등학교 졸업 학력 때문에 숱한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믿는다. 근속연수가 10년에 이르지만 과장 승진심사에서도 두 번이나 떨어져 창립멤버 중에서 가장 늦게 과장이 됐다. 자기보다 나중에 입사한 사람 중 상당수가 자기보다 직위가 높다. 대학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입사한 동료들 초임이 자기보다 많은 경우도 있었다. “대놓고 말은 안 해도 내가 고졸이라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대졸이라고 속이고 입사했으면 지금보다 대우가 훨씬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죠.”


모 대학 지방캠퍼스를 졸업한 임모(33)씨는 사회생활을 하고 나서 자신의 학력이 낮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됐다. “전에 일했던 회사에서는 동료 50명 중에서 지방대 출신이 5명이 안됐어요. 35살이 되기 전에는 대학원에 가서 석사학위라도 받아야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들더라구요. 공부를 해야겠다는 게 아녔어요. 오로지 ‘가방끈’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인거죠.”


모 정당 정책연구원으로 일하는 한모(36)씨도 비슷한 의견이다. 그는 “능력도 있고 경력도 있는데 단지 박사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연구책임자가 못 되죠. 정작 일은 제가 다 했는데 보고서에 대표집필자 이름은 박사학위자로 나갈 때 솔직히 짜증스럽죠.”


●얼굴 화끈하게 만든 학력위조(?) 경험


차별을 피하기 위해, 혹은 더 좋은 대우를 받기 위해 실제 학력을 위조해 봤다는 이들도 있다. 학력을 위조해 교수가 된다는 식으로 사회적 지위를 얻는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학력을 둘러싼 이중잣대는 오늘도 일상 속 학력위조로 사람들을 내몬다.


이모(23여)씨는 그 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A대학 한문학과 수업 시간,다른 학과 학생으로 보이는 이씨를 향해 담당 교수가 “무슨 과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이씨는 K대학 지방 캠퍼스 출신이지만 이중전공 신청을 본교로 한 학생. “서울 캠퍼스와 지방 캠퍼스는 학과 이름이 달라요. 그런데 지방 캠퍼스에서 온 티가 날 것 같아서 걱정이 되는 거에요. 결국 서울 캠퍼스에 있는 과 이름으로 얼버무려 말해버렸죠.”


거짓말은 오래가지 못했다. 며칠 뒤 출석부를 보던 교수가 “우리 학교에 이런 과도 있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바람에 지방 캠퍼스 출신인 게 들통 나버렸기 때문. “그 때 사람들이 ‘어쩐지’ 하는 표정으로 절 쳐다보던 표정을 생각하면 아직도 진땀이 나요.”


B대학 경제학과에 다니는 정모(24)씨도 비슷한 유혹에 빠진 적이 있다. “복학 하면서 용돈도 벌 겸 과외를 구하려고 했지만 잘 안 되더라고요.” 고민 끝에 정씨는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라고 프린트 된 전단지를 뽑아서 인근 아파트에 붙였다. “어차피 철저하게 확인하지 않는데다 서울대라고 하면 평균 과외비부터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전단지를 보고 연락이 왔을 때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성대에 다니는 후배에게 연결해주겠다는 식으로 말을 바꾸긴 했지만 정씨는 과외 시장에서 학벌이 차지하는 위상을 실감했다. “요즘 과외 연결 업체에서 학생증, 재학 증명서까지 요구하는 것도 이런 유혹 때문에 학벌을 속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학력만 좋으면 만사 OK?


직장인 장모(28)씨는 대학시절 학력위조(?)를 한 경험이 있다. 방학 때 돈도 벌 겸 학원강사를 하려고 했지만 대학생을 받아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설령 있더라도 처우가 열악해 벌이가 시원찮았다. 결국 장씨는 “군대를 갔다 오고 대학도 졸업했다.”고 속여 학원 강의를 시작했다. 장씨는 학원이야말로 ‘학력위조의 천국’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학원에서 명문대 출신을 선호하다 보니 대부분의 동료 선생들이 자신의 대학을 거짓으로 속이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말했다. “선생님들 대부분이 이력서에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나왔다고 써요. 그런데 실제 나온 대학은 그게 아니죠. 학생들을 끌어 모으는 게 목적이니 학원 측에서 알더라도 쉬쉬하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출신대학에 관계없이 ‘계급’에 의해 신분이 결정되는 군대에서도 취업준비생 박모(26)씨는 학력위조의 유혹을 받았다. 자대로 배치되고 행정병을 선발한다는 얘기를 듣고 손을 번쩍 들었지만 Y대학을 나온 동기에게 밀렸던 것. 결국 박씨는 힘들다는 포병으로 군생활 2년을 마쳤다. “가장 먼저 물어보는 게 ‘어느 대학 나왔냐.’더군요.” 박씨는 대학 이름을 속일까 망설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사실대로 말했고, Y대학을 다니고 있는 동기에게 행정병 자리가 돌아갔다.


박씨는 이 순간만 생각하면 아직도 억울하다고 말한다. “별 생각을 다 했습니다. ‘차라리S대학 나왔다고 말할걸. 그러면 행정병으로 뽑힐 수 있었을 텐데… ’학벌이 중요하지 않다는 군대도 이런데 사회 나가면 어떨까 실감 많이 했습니다.”


●학력 숨기기도 있다


미국에 유학했다 얼마 전 귀국한 한모(35)씨는 한국유학생들 사이에서는 학력을 밝히지 않는게 관례라고 말한다. 서로 부담스러우니까 ‘학력 숨기기’를 하는 셈이다. 물론 학력을 드러내놓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서울 강남에서 초등학교를 나왔거나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들 얘기다.


“일종의 콤플렉스죠. 학력위조라기 보다는 학력 숨기기입니다. 보통 자기가 졸업한 대학을 얘기하지 않고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나이도 물어보지 않는 게 불문율이지요.” 한씨는 “그런 와중에도 지방대 출신들은 왠만하면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대충 알게되기 때문에 유학생들 사이에서 지방대 출신은 업신여기는 분위기가 있다.”고 증언한다.


결국 자신이 졸업한 학부보다 석사학위를 받은 대학이 더 좋은 경우 후자를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같은 명문대를 나와도 서울 강남 출신들은 자기들끼리 반창회를 할 정도”라면서 “미국에서도 학벌풍조는 그대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강국진 이경원기자 betulo@seoul.co.kr


기사일자 : 2007-09-04    23 면


가방끈에 대한 이중적인 시선
 

사람들이 학력을 바라보는 눈길은 철저히 이중적이다. 회사원 조모(27․)씨는 “명문대학을 나왔다는 게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고 말한다. “동료들 사이에서 업무능력이 떨어지거나 해서 평판이 안 좋은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 동료 얘기를 하다가 ‘그래도 걔 S대 나왔어.’라고 누가 말하니까 평가가 달라지더라구요.”


조씨는 학력에 관한 한 사람들이 대단히 자기모순적이라고 생각한다. “제가 회원으로 활동하는 청년회에도 명문대 출신들이 있지요. 똑똑하고 인기도 많은 사람한테는 ‘역시 명문대 출신이라 뭔가 달라.’라고 하고 이기적이고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사람한테는 ‘그럼 그렇지. S대 출신이 원래 그래.’라고 말해요.”


능력이나 품성이 아니라 졸업장이 판단기준이 돼 버리는 사회 풍조가 정작 명문대 출신들에게 역차별로 작용하기도 한다. 언제나 선입견의 수혜대상은 아닌 셈이다.


직장인 이모(26)씨는 군대시절 학력으로 인한 ‘역차별’을 겪었다. 유명 Y대학 출신인 이씨는 실수를 할 때마다 ‘너는 좋은 대학 나온 녀석이 이런 실수를 하냐.’고 혼쭐이 난 적이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군대에는 대학이 없다고 하잖아요. 그러나 자신이 어떤 대학을 나왔는지가 그 사람의 과거를 규정하더라고요. 저는 그 곳에서 ‘똑똑한 사람’이란 이미지가 강했지만, 실수를 하면 고참들이 항상 학벌얘기를 들먹이더라고요.”


쉬는 시간에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고참들이 찾아와 항상 과외를 해달라고 했기 때문. “고참들 가르치는 게 참 힘들어요. 함부로 대할 수도 없고, 행여나 쉽게 설명을 안 하면 ‘이렇게 밖에 못가르치냐.’며 되려 역성을 내기도 했죠.”


S대학교 대학원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인 김모(28․여)씨 역시 학벌이 부담스러운 경우다. 학부 조기 졸업을 하고 바로 대학원 진학한 엘리트지만 주변에 소개팅 주선을 부탁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여자가 너무 고학력이니까 아무래도 남자 쪽에서는 부담을 느끼게 되는 것 같아요.”


주변에 결혼 적령기를 지난 대학원 동기들을 봐도 하나같이 남자친구가 없다는 사실이 김씨를 더 불안하게 한다.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고학력 여성은 기가 세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아요. 빨리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그게 잘 될지 모르겠어요.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