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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자작나무책꽂이

‘민’을 통해 시도한 민족형성, <민(民)에서 민족(民族)으로>

by betulo 2007. 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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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도 ‘민족’은 한국지식인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화두다. 이는 1960년대 서구에서 태동한 포스트모더니즘이 한국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친 시기와 일치한다. 역사학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장 먼저 비판 대상으로 삼은 것이 바로 ‘민족’ 문제였다. 


근대 ‘신화’를 해체시키려는 포스트모더니즘이 한국 민족과 민족주의를 도마에 올린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 한국사회는 민족 과잉이다. 근대 과학정신과는 담을 쌓은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지닌 단일민족’이라는 ‘상식’이 횡행한다. 


민족은 식민지시기 민족해방운동 이후 너무나 강력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 깃발 아래서는 성적소수자, 장애인, 양심적 병역거부 같은 소수자들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심지어 노동자·농민같은 계급의식조차 민족 앞에서는 고양이 앞에 있는 쥐 신세였다. 


한국사에서 신분적 차별을 뛰어넘는 공동체 의식, 공동체 문화는 성장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런 성장을 찾을 수 있다면 성장과정은 어떠했을까. 그 시대 사람들은 그것을 무어라 표현했을까. 


이석규 한양대 역사철학부 교수 등 한국사 연구자 5명이 펴낸 <민(民)에서 민족(民族)으로>는 그런 문제의식을 담은 논문을 모은 책이다. 이들은 각자가 전공하는 시기에 따라 △고려말 조선초 신흥유신(新興儒臣) △조선 중기 사림파 △조선 후기 실학자 △대한제국 의병지도층 △식민지시기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의 민·민족 인식을 살펴본다. 


전근대사회에서 민은 항상 피지배계급으로 존재하면서 끊임없이 자기성장을 이뤘다. 이에 따라 지배층도 점차 민을 달리 인식한다. 조선은 건국이념으로 민본사상을 설정했고 민은 정치적으로 배려하지 않으면 안되는 정치적 실체로 인정받았다. 이 시기에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을 아우르는 동포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했다. 


이런 민 인식은 19세기 후반 이후 외부세력과 접촉이 잦아지면서 질적으로 변한다. 의병지도층은 민을 참정권을 지닌 정치주체로 인식했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물론 한일합병은 민에서 국민으로 발전하는 선순환을 가로막았다. 대신 민족해방운동에서 ‘민족’이 주체가 됐다. 


서문에서 인정했듯이 연구내용을 주제와 일관성있게 결합하는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전근대에서 근현대로 넘어가는 시기는 일정한 혼란이 느껴진다. “민족은 근대의 산물”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항해 전근대부터 이어지는 민족의식을 강변하려는 결론을 미리 내린 다음 전근대 피지배계급인 ‘민’을 탈계급적인 ‘민족’으로 억지로 맞추려는 시도는 아니었는지 의문이 든다. 


이석규·김창현·김도환·김순덕·김광운 지음/선인/1만8천원

2006년 10월 31일 오후 14시 36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74호 15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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