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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자작나무책꽂이

2009년 상반기 나를 뒤흔든 책 6가지

by betulo 2009.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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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를 시작하면서 올 한 해 동안 72권/3만쪽을 읽자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한 달에 6권씩 2500쪽을 읽어야 달성할 수 있습니다. 상반기 독서실적으로 점검해보니 9611쪽을 읽었네요. 23권, 25호, 14편입니다. ‘호’는 잡지를 말하는데 1월부터 6월까지 나온 모든 시사IN을 읽은 걸 나타내고요. ‘편’은 논문인데 주로 석사논문 때문에 읽은 논문들입니다. 

 

쪽수

1월

3

4

0

1029

2월

2

3

4

1359

3월

3

5

0

1448

4월

4

4

10

1485

5월

8

4

0

2888

6월

3

5

0

1404

합계

23

25

14

9613

상반기 동안 23권이니 올해 목표보다 1/4에 불과하군요. 쪽수로는 1/3이 채 안되고요. 목표를 너무 높게 잡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애초 목표를 잡을 때도 마음 한 켠에 그런 생각이 없던 건 아니지만요. 제가 원래 책을 빨리 읽기보다는 줄을 그어가며 읽는지라 속도가 그리 빠른 편은 못되거든요.

상반기 동안 읽었던 책 목록에서 한권씩 지워가는 방식으로 상반기 가장 기억에 남을 책 여섯 권을 선정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부는 따로 서평을 쓰려고 생각중인데 아직 붓을 못 들고 있습니다. 조만간 결행하도록 합지요.

■김성해, 2008, 『대외경제정책과 뉴스미디어』, 한국언론재단, 256쪽.

한국언론재단 객원연구위원으로 계신 김성해 박사가 쓴 연구서입니다. 프레임 분석기법을 이용해 언론이 대외경제정책을 어떻게 보도하는지 고찰했는데요. 특히 한국과 미국, 일본, 유럽 등을 비교하는 부분과 대외경제정책 관련분야에 종사하는 관계자와 대외경제정책을 담당하는 기자들을 심층인터뷰한 부분이 흥미롭습니다.

사실 이 연구서 발간에 저도 참여했습니다. 지난해 여름 일일이 찾아다니며 심층인터뷰를 해서 정리한 내용이 책에 수록돼 있습니다. 책 속표지를 넘겨 판권 부분을 보시면 제 이름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ㅋㅋㅋ

김성해 박사는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습니다. 대학에선 언론을 공부했고 증권사에 취업에 현장 금융을 익혔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미국으로 유학가서 정치학과 언론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다음 언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외환위기는 왜 일어났고 어떻게 전개됐는가, 그 과정에서 언론보도는 어떤 프레임으로 작동했는가에서 시작해 미디어권력, 저널리즘의 프레임, 지구를 움직이는 ‘게임의 법칙’ 등으로 관심영역을 확장시켰지요.

얘길 하다보면 ‘아!’ 하는 느낌을 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개똥철학이 아니라 넓고 깊게 본질을 포착해 핵심을 짚어주죠. 그러면서도 표현은 정제돼 있고 함부로 가르치려 들지 않습니다. 김성해 박사님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 국제적인 권력에 얽힌 ‘게임의 규칙’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김성해 박사가 얼마전에 출간한 <세계는 울퉁불퉁하다>도 추천합니다.


■찰스 T. 굿셀, 황성돈·박수영·김동원 옮김, 2006, 『공무원을 위한 변론』, 올리브M&B, 366쪽.

크리트님이 제게 넘겨주신 편견타파 릴레이를 뭘로 채울까 하다가 제일 먼저 떠오른게 바로 이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우리가 상식처럼 생각하는 공무원, 공공부문, 정부에 대한 인식들이 얼마나 근거없는 편견에 불과한지 다양한 근거자료를 동원해 보여줍니다. 굿셀 교수는 공무원과 정부에 대한 공격과 비난이 오히려 공무원과 정부의 업무능력을 떨어뜨리고 그로 인해 국민들이 더 큰 불편을 겪게 되는건 아닌지 되돌아볼 것을 촉구합니다.

가령 이런 식이지요. 우리는 정부 욕하고 공무원 욕하는게 거의 일상생활 수준입니다. 공공 서비스가 조금만 늦어져도 화를 내기 일쑤죠. 그런 불만을 이용해 활개치는 논리가 바로 레이건식 ‘정부가 문제다’는 ‘이데올로기’입니다. 공무원한테 맡겨놓는건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꼴이다. 그럼 대안은? 민간에 맡겨라. 민간에 맡기면 경쟁원리에 따라 국민들이 더 좋은 서비스를 더 저렴하게 받을 수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전력 민영화한 이후 벌어진 ‘재앙’까진 아니더라도 당장 우리 주변에서 날이면 날마나 터져나오는 ‘민간자본’을 활용한 건설사업(인천공항철도, 지하철 9호선, 마창대교 등등)만 봐도 공무원을 불신하고 정부를 불신한 여파가 오히려 문제라는 굿셀의 지적은 경청해야 할 가치가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공무원, 정부를 보는 제 시각이 선입견과 편견으로 덮여있는건 아닌지 성찰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정부를 비판하는게 제 직업상 의무입니다만, 앞으로는 ‘제대로 비판하자’ 본의아니게 ‘공무원은 나쁜 넘들’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데 이용당하진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조한상, 2009, 『공공성이란 무엇인가』, 책세상, 177쪽.

굿셀 교수의 책과 함께 읽어서 제게 더 많은 고민꺼리를 던져 준 책입니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사회를 휩쓸고 있는 난리판굿 속에서 재발견하는 가치가 바로 ‘공공성’입니다.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같은 이는 한 강연에서 한국 진보세력이 주력해야 할 운동의 화두가 바로 공공성이라고 말하기도 했을 정도죠. (http://betulo.blog.seoul.co.kr/514를 참고하세요.)

조한상 교수는 공공성에 대해 <인민,공공복리,공개성>을 핵심 요소로 꼽습니다. 역사와 철학, 헌법학 등을 넘나들며 차분하게 전개하는 공공성 논의를 통해 우리는 왜 지금 공공성이란 화두가 우리에게 그토록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공공부문을 다룬 언론보도나 일부 학자들의 주장, 그리고 공공부문에 불만을 털어놓는 목소리를 관통하는 ‘프레임’은 뭐랄까... ‘졸속행정’ 프레임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공무원 싫어’ 프레임이라고 해야 할까... 하여간 정부부문에 대한 불만 가득한 담론이 강력하게 존재합니다. 그리고 또다른 한켠에선 ‘국회 무용론’같은 프레임도 강합니다.

그런 프레임들이 결합해서 토론은 뭐하러 하고 예비타당성조사 같은 건 뭐하러 하냐, 신속하게 처리하자, 공무원을 어떻게 믿냐, 민간에 맡기자, 위탁하자, 민영화하자, 정부가 왜 나서냐, 규제나 왕창 왕창 풀어라 같은 목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집니다.

달리 생각해보면 그런 담론을 부추기는 건 규제완화와 민영화 같은 담론의 결과물로 이득을 보는 세력들이겠지요. 그리고 그런 이득을 보는 세력들과 동맹을 맺은 집단일 테고요.

지대추구 이론이란게 있습니다. 니스카넨이 주창하고 계속 확대 재생산된 이 이론은 그 후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여전히 한국 행정학 책에선 주요 이론으로 소개하지요.

이 책을 읽으면서 ‘지대추구’ 이론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해 봤습니다. 공무원들이 생선가게 고양이처럼 지대추구를 하는 건 적절한 견제장치 혹은 적절한 통제장치가 작동을 하지 않아서 그런게 아닐까. 그런 장치가 없다면 민간에 맡기건 위탁운용을 하건 아무런 차이가 없지 않은가. 결국 중요한건 공무원들이 지대추구를 하느냐 여부가 아니라 적절한 통제장치 여부가 아닐까. 그리고 그 통제장치의 핵심은 결국 공공성이 아닐까. 

■이민희, 2008, 『조선을 훔친 위험한 책들』, 글항아리, 383쪽.

뭐든 거품이 끼면 본질을 놓칠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우리는 조선의 기록문화에 대해 많은 찬사를 하는데 조선의 기록문화에 관한 거품빼기가 바로 이 책을 통해 얻은 수확입니다.

이 책은 조선시대 “찬란한” 기록문화의 뒷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서점을 허락하지 않고 책과 관련한 모든 업무를 국가가 독점함으로써 지식생산과 유통에 차질이 빚어졌습니다. 책 하나를 구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을 들여 필사를 해야만 했고 공부를 하고 싶어도 책을 구하지 못하고 돈이 있어도 책을 맘껏 사볼 수가 없었습니다.

국가는 책 독점을 통해 사상을 통제할 수 있었지만 그로 인해 발생한 엄청난 기회비용은 결국 조선이 도약하는데 걸림돌이 됐을 뿐입니다.

■로버트 H.프랭크, 황해선 옮김, 2009, 『부자 아빠의 몰락』, 창비, 203쪽.

이 책만큼 생생하고 신랄하게 소득불평등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보여주는 책을 찾기도 쉽지 않을거란 생각을 합니다. 이 책은 소득불평등이 결국 양극화를 부르는 것을 넘어 사회를 비생산적인 경쟁으로 내몰고 사회공공성을 파괴한다고 역설합니다.

이 책은 주류경제학의 기본 가정을 근본부터 뒤집어 버립니다. 사람은 누구나 합리적으로 판단해서 알아서 결정할거라는 전제는 아무런 근거도 없다는 것을 다양한 경험과 최신 이론을 통해 밝혀냅니다. 이를 통해 이 책은 정부가 소득불평등을 치유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누진적인 소비세라는 대안을 제시합니다. 그 부분은 다음 기회에 별도로 언급하겠습니다.

■데이비드 케이 존스턴, 박정은·김진미 옮김, 2009, 『프리런치; 내가 낸 세금은 어디로 갔을까?』, 도서출판 옥당, 512쪽.

언제나 이런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습니다. 눈에 보이는 예산낭비를 넘어 예산이 특정한 집단에게 편중됨으로써 발생하는 다양한 폐해들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입니다. 민영화와 위탁, 세금감면, 각종 보조금 등을 통해 정부예산을 우리 모두의 재산이 아니라 그들의 쌈짓돈으로 만들어 버리는 행태를 하나씩 하나씩 파헤치는 책입니다.

이 책을 보면서 생각해봅니다. 한국이 달려가는 곳이 바로 이 책이 묘사하는 세상은 아닐까. 이 책에 대한 자세한 서평은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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