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건설공사로 인한 막개발과 예산낭비를 모두 막을 수 있는 제도인 예비타당성조사제도가 관료주의와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겉돌고 있다. 정창수 함께하는시민행동 전문위원은 “관료들이 편법과 꽁수를 써서 예비타당성조사를 피해가면서 제도도입 취지가 무색해지고 있다”며 제도개선을 통한 보완을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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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봉 화백 |
김대중 정부가 1999년 ‘세계 최초’로 도입한 예비타당성조사는 각 부처가 추진하려고 하는 사업의 타당성 여부를 예산당국이 직접 판단하는 시스템이다. 도입 첫 해부터 2003년까지 예비타당성조사 결과를 보면 이 제도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다. 조사한 153건 가운데 78건(51.0%)을 타당성이 낮은 것으로 판정해 사업을 보류했다. 타당성을 인정받은 사업건수가 절반도 안 될 정도로 엄정하게 조사를 벌이는 성과를 거둔 셈이다.
하지만 기획예산처는 타당성이 낮아 사업추진을 보류한 78건 가운데 308%인 24건(총 사업비 12조 3천955억원)의 예산을 편성했다. 이 가운데 국회는 11건에 4조7천710억원에 해당하는 공사를 예산심의 과정에서 통과시켰다. 정치적 입김으로 사업성이 낮은 것으로 판단된 사업을 강행하는 것이다.
정 전문위원은 현행 예비타당성조사제도의 한계로 △불명확한 조사대상사업 선정기준 △집단사업에 대한 조사기준 불합리 △조사를 회피하기 위한 사업비 추산액 축소 △특정연구기관 조사 전담 △조사인력 중복참여에 따른 객관성과 신뢰성 추락을 지적했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예비타당성조사를 피해가기 위해 정부부처가 편법을 쓴다는 점이다.
예비타당성조사 대상사업 선정지침에 따르면 기존시설의 효용증진을 위한 단순개량이나 유지보수사업 등 예비타당성조사로 인하여 불필요한 예산낭비와 사업지연이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경우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총사업비가 3조4천169억원에 달하는 성산-담양간 고속도로 확장사업은 이를 단순보수 혹은 개량사업으로 보아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했다.
예비타당성조사가 사업계획 수립시 총사업비를 기준으로 이뤄지는 점을 이용해 총사업비를 500억원 이내로 해서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치지 않았다가 사업을 추진한 후에 사업비를 증액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03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타당성재검증 절차를 거친 사업은 총 28건(재검증 완료 22건, 재검증 중 6건)으로 이중 당초 추정 총사업비가 500억원에 미치지 못했던 사업이 9건에 불과했다.
현행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으로 정 전문위원은 “조사대상사업의 선정기준을 보다 구체화하고 특히 집단사업의 경우 종합기본계획을 토대로 구간(세부)사업별 예비타당성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예비타당성조사를 회피하려는 사업은 사업실명제 등을 통해 관련공무원에게 책임을 묻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조사기관전담과 중복 참여의 문제는 경쟁체제의 전환모색과 중복참여를 엄격히 규제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예비타당성조사는 타당성이 없는 많은 사업들을 가려냄으로써 재원의 효율적 배분에 이바지하고 있다”며 “모호한 기준이나 조사회피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제도개선을 통해 국고 낭비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비타당성조사제도는 당초 대규모 건설공사만 개략적으로 심의·판단할 목적이었지만 지금은 사실상 각 부처가 실시하는 타당성조사를 대체하기에 이르렀다. 건설공사를 포함해 신규로 추진하는 사업 가운데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인 사업을 대상으로 한다. 다만 지방자치단체가 시행주체인 사업과 민자유치사업은 국고지원이 300억원 이상인 사업에 한한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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