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라는 영화가 있다. 흥행이 썩 잘되진 않았고 다소 지루한 것도 사실이지만 영화 초반부 가우가멜라 전투 장면만큼은 언제봐도 흥미롭다. 알렉산더대왕이 이끄는 마케도니아와 다리우스3세가 이끄는 페르시아가 기원전 331년 오늘날 이라크 아르빌 인근 가우가멜라라는 곳에서 맞붙었던 전투에서 알렉산더는 우익에 배치한 기병대를 이끌고 페르시아 쪽 좌익 기병대를 유인한 뒤 페르시아 본진과 좌익 사이에 벌어진 틈을 놓치지 않고 다리우스3세 바로 앞까지 쇄도했다. 예상치 못한 일격에 전열이 무너지면서 페르시아는 결정적인 패배를 당한다. 대오가 흐트러지는 그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은 덕분에 그토록 기세등등했던 페르시아가 무너졌다.
군대에 가면 가장 먼저 배우는 게 제식훈련이다. 조교들은 끊임없이 “오와 열을 맞추라”며 어그적거리는 훈련병들을 닦달한다. 줄이 조금 안맞는다고 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일어날까 싶은 생각이 들기 마련이지만 지나놓고 보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줄을 맞춰서 움직이지 못하는 군대는 군대로서 기능을 할 수가 없다. 평소에도 줄이 안 맞는데 위기상황에서 한 몸처럼 움직인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줄이 무너져서 몰살당하는 얘기는 동서고금 흔하디 흔하다. 데모할 때 생각해보자. 가투(가두투쟁)에서 전경들이 최루탄을 쏘고 시위대가 화염병을 던지는 건 기본적으로 상대 진영을 붕괴시키기 위해서다.
축구도 크게 다르지 않다. 4-4-2나 4-3-3 같은 이른바 포메이션이라는 것도 따지고보면 전투진형과 다르지 않다. 수비가 무너져서 실점을 했다는 건 수비 대오가 무너져 방어가 안되는 구멍이 뚫렸다는 의미다. 강한 압박과 속도, 패스를 통해 우리 공격대형은 제대로 작동하게 하면 승리할 수 있다. 한국과 포르투갈 경기 막판 역전골은 포르투갈 선수 7명이 손흥민 막느라 정신이 팔려서 수비대형이 무너진 게 원인이었다.
대오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짧은 군대 경험을 통해 생각해보면 내 옆에 있는 전우, 내 뒤에 있는 전우가 나를 지켜준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적군이 우리를 향해 돌진해오면 무섭지 않은 사람이 없다. 그럴 때 한두명이 자리를 이탈해 버리면 공포가 전염병처럼 순식간에 퍼지기 마련이다. 그럼 전투는 하나 마나다. 반대로, 내 옆자리를 맡은 사람이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면 그 용기 또한 퍼져나간다. 대오를 유지해야 내 목숨도 살릴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결국 믿음직한 전우만큼 든든한 게 없다.
한 군인이 있었다. 세상은 남자라 여겼지만 자신은 여자이고 싶었다. 믿음직한 전우로서 나라를 지키는 군인, 하사 변희수로 남고 싶었다. 하지만 육군에선 하사 변희수가 성전환수술을 한 것을 ‘심신장애’로 규정했다. 강제전역시켰다. 육군의 논리는 이런 것일까. 하사 변희수는 남성의 상징인 ‘거시기’를 떼어냈다. 그는 이제 ‘생물학적 남성’이 아니고, 믿음직한 전우도 될 수 없다. 성전환 수술 이후에도 계속 군복무를 하고 싶어했던 하사 변희수는 결국 스스로 세상을 버렸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것 투성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듬직했던 전우가 어떻게 성전환 수술을 하고 나면 전우들의 목숨을 믿고 맡길 수 없는 믿음직하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육군이 생각하는 믿음직한 전우는 ‘생물학적 남성’이어야만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오늘도 군대에서 성실하게 복무하는 여성 장교와 부사관들은 뭐란 말인가. 법원에서도 강제전역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런데도 최근 육군은 고(故) 변희수 육군 하사가 ‘순직’이 아니라 ‘일반 사망’이라고 결론내렸다.
육군에선 “공무와 상당한 인과관계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하는데, 군인사법에선 “고도의 위험을 무릅쓴 직무 수행 중 사망”한 사례 뿐 아니라 “국가의 수호·안전보장 또는 국민의 생명·재산 보호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사망한 사람”도 순직 대상에 포함한다는 것과도 맞지 않는다. 인권침해나 관리소홀로 인한 자살을 순직으로 인용하는 최근 추세에 비춰보더라도 납득이 안된다. 육군은 여전히 하사 변희수를 전우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리라.
전우가 내 뒤에서 나를 지켜주고 나 또한 전우를 지킨다. '여자'냐 '남자'냐 하는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그런 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오직 내 옆 내 뒤에 있을 때 든든한, 목숨을 빚질 수 있는 믿음을 주는 ‘사람’이면 된 것 아닐까. 나를 지켜주는 건 '전우'로 충분하다.
인권연대에 기고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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