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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

35년 짬밥 육군 원사, 인권운동가로 인생2막 도전

by 자작나무숲 2022. 3. 30.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부사관으로 입대해 35년을 직업군인으로 살았다. 전역식까지 치른 예비역 육군 원사는 인생2막으로 인권운동가를 선택했다. 기업 두 곳에서 관리직으로 채용하겠다는 제안도 거부하고 경기도 양주시에서 서울까지 왕복 4시간을 다녀야 하는 버거운 출퇴근 속에서도 조용철 인권연대 연구원(이하 직함 생략) 28일 “보람과 재미를 느낀다”며 얼굴에 웃음이 가시지 않았다. 전직 육군 원사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조용철이 군대에 들어간 건 1987년이었다. 그는 “가난한 집안형편에 전액 장학금도 주고 군대 취직도 시켜 준다니까 고등학교 3년간 군입대장학금을 받았다”면서 “육군 6군단 예하 포병대와 감찰부 등에서 35년 7개월을 복무했다”고 말했다. 직업군인과 인권단체라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사실 199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용철은 “당시 내가 군수과 선임하사였는데 운동권 학생 하나가 배치될테니 특별관리를 해달라는 요청을 하러 국가안전기획부에서 나를 찾아왔다”고 회상했다. 당시 그가 “거리를 두며 감시하고 동향파악해 몰래 보고하던 보급계 병사”가 지금 그가 일하는 인권연대 사무국장 오창익이다.

조용철은 “같이 일하다보니 서로 정이 들어서 얘길 많이 했다. 그때까진 군대만 알았는데 세상 보는 눈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처음엔 선입견이 있었습니다. 2~3개월은 업무 외에는 아무것도 안시키고 거리를 뒀습니다. 지켜보니 의외로 성실하게 군복무해서 차츰 얘기를 많이 나누게 됐습니다. 보급계로 일하면 양말부터 속옷까지 좋은 건 자기 몫으로 따로 챙기는게 보통인데 전혀 그러질 않는거예요. 그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납니다."

 

그러다 오창익 부친과 인연이 닿아서 결혼식 주례로 모시기도 했다. "결혼식 하고 나서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결혼식 사진을 달라고 하시더군요. 그 분이 결혼식 주례를 세계에서 제일 많이 선 걸로 기네스북에도 올랐는데, 주례를 선 결혼식 사진이 벽에 가득 있었습니다."

오창익이 제대를 하고 천주교인권위원회를 거쳐 인권연대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교류가 계속 이어졌다. 그런 속에서 세상을 보는 눈이 많이 달라졌다.

"저는 사회생활을 해본적이 없잖아요. 군대밖에 모르니 세상 돌아가는 걸 제대로 모르죠. 논산훈련소에 있을때 대통령 선거가 있었는데 선거가 뭐하는건지도 제대로 몰랐을 정도예요. 조교가 1번(노태우) 찍으라고 하길래 그냥 1번 찍었습니다. 물론 다른 후보를 찍는게 불가능하기도 했지만 아무런 불만도 없었죠."

 

오창익이 일하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인권연대를 찾아가 술도 한 잔씩 하며 교류를 이어가다보니 전역하고 시민단체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고 했다. 마침 감찰 업무를 하면서 느낀 군대의 부조리한 모습에 실망도 쌓이고 있었다. 조용철은 “입바른 소리를 했다고 오히려 내가 감찰 대상이 되는 일을 겪었다. 더 오래 있다가 후회하는 것보다 사회를 위해 좋은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해서 오 국장에게 먼저 ‘취업 제안’을 했다”고 말했다.

조용철은 인권연대에서 운영하는 ‘장발장은행’ 관련 업무를 담당한다. 장발장은행은 벌금형을 선고받고도 낼 돈이 없어 교도소에 갇히는 사람이 한 해 4만명이라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이자 없이 벌금을 대출해주는 공익사업이다. 조용철은 “대출 안내도 하고 대출과 상환 관련 서류 처리도 하고, 대출 상환 안내도 한다”면서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고 일도 재미있다”고 말했다.

조용철의 좌우명은 “절대긍정 과잉성실”이다. 그는 “틈틈이 오창익과 함께 부사관 처우개선을 비롯한 군대 개혁 방안도 의논한다”면서 “일단 지금 목표는 인권연대에서 꾸준히 오래 일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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