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雜說

꿈과 희망을 잃어버린 금수저들

by betulo 2016. 7. 27.
728x90


개돼지 '망언'으로 온 나라가 홍역을 치렀다근래에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엘리트 집단의 일원으로서 그토록 솔직한 분을 본 게 얼마만인가 싶어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사람이 만복을 못 가진다'는 어릴때 친척 어른 말씀처럼 그 분도 그렇게 진솔한 면모에 어울리지 않는 주변머리를 갖고 있었던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 정도 주변머리로 그 정도 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던 걸 보면 그 분은 혼이 정상이 아니었던 걸까아니면 그 분이 개돼지가 아니라 사람의 아들이었던 걸까그것도 아니라면 한국 사회 지배엘리트라는게 원래 개나 소나 줄 잘 서면 거저 걸리는 자리였던 걸까 의문이 꼬리를 문다.

 

 솔직함은 가졌으나 주변머리를 갖지 못한이제는 개돼지 일원이 된 금수저를 보면서 흔히 얘기 나오는 것과는 좀 다른 차원에서 이 나라가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는 징후를 읽을 수 있다어느 시대나 시대정신을 주도하는 혹은 강요하는 지배엘리트들은 있기 마련이다. 대체로 금수저들이 지배엘리트에서도 중요한 구실을 했던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그런데 말이다그 금수저들이 꿈과 야망을 갖지 않은 찌질이들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역사는 거대한 자연실험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역사를 보면 금수저들의 결단과 행동이 역사를 뒤바꾸는 때가 있다서기(CE) 7세기, 그러니까 삼국시대는 그 중에서도 들여다볼수록 흥미진진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사실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 가운데 적잖은 분들이 신라가 삼국통일을 했던 게 불행이라는 인식을 공유한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저 광대한 만주벌판이 지금도 우리 영토였을 텐데’ 하는 상상을 하면서하지만 역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자각하기 위해 배우는 것도 아니고부동산 투기를 고대사까지 확장하라고 있는 것도 아니다진짜로 고민해야 하는 건 오히려 왜 고구려·백제가 아니라 신라였을까’ 하는 주제다.

 

역사를 공부하려면 지도와 친해져야 한다동북아 지도를 펼쳐놓고 신라 영역을 유심히 살펴보면 이 나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이기고 삼국을 통일했다는 게 기적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고대사회는 농업생산력이 국력이던 시절이다농경지가 부족하고전지구적인 교통로에서 한참 비껴난 변두리에 자리한 신라는 험준한 자연방벽 빼곤 내세울 것 없는 약소국의 숙명을 타고났다


 초기에는 가야한테 치이고백제한테 두들겨 맞고고구려 속국으로 전락한 적도 있었다그런데 어떻게왜 신라였을까고구려·백제의 내부분열과 당()나라와 고구려의 갈등 같은 외부요인들 덕분에 어쩌다 보니 호박이 넝쿨째 굴러 온 것 뿐일까?

 

삼국은 모두 강력한 신분제 사회였다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민(人民)은 원래 고대사회에서 지배계급인 인()과 피지배계급인 민()이라는 완전히 다른 신분을 가리키던 용어이다당시에 이란 말 그대로 개·돼지나 다를바 없는 존재였다골품제라는 건 ()’ 중에서도 많아봐야 수백 명에 불과했을 극소수가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구조다역사 시간에 배웠던 성골과 진골을 생각해보면 금수저도 이런 금수저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날이면 날마다 외침에 시달리는데 이골이 난 신라 지배층은 이대론 살 수 없다며 원대한 혹은 절박한 꿈을 꾸기 시작한다힘을 합쳐야 하니극히 제한적이긴 하지만 신분제를 조금은 완화하는 개혁 조치를 취했다가야 왕족 출신인 김유신이 태종 무열왕을 도와 신라군을 이끄는 총사령관으로 활약했다는 점화랑 제도를 통해 특진이라도 할 수 있었던 이들이 존재했다는 점이 그런 변화를 보여준다


특히 눈여겨 볼 대목은 김유신이 전장에서 무단이탈했다는 이유로 친아들인 원술을 내쫓고 평생 의절했던 장면이 아닐까 싶다. 김유신은 중풍에 걸린 노구를 이끌고 평양성으로 군량을 운송하는 수송부대를 직접 이끌기도 했다. 그 정도 책임감이 있었기에 지배계급으로서 부하들에게 희생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신라는 지배집단이 단결해서 국가능력을 총동원했다. 그 덕분에 고구려나 백제가 아닌 신라가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다. 


아래 지도에서 5세기 고구려 장수왕 시절 신라를 보면 얼마나 변변치 않은 나라였는지 알 수 있다. 반면 발해와 국경을 마주할 당시 신라를 보자. 신라 입장에서 보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 국가적 승리인지 느낄 수 있다. 


 

외교를 통한 통일이라는 것도 손쉽게 폄하할 문제가 아니다신라로서는 고구려와 백제한테 고립돼 있었다국가를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외교는 필수다김춘추의 굴욕외교 욕하기 전에 연개소문과 의자왕의 국제외교 실패를 비판해야 한다적어도 김춘추그러니까 태종 무열왕은 목숨을 걸고 직접 험난한 바다를 건너 당나라를 찾아갔다.


그렇게 동맹을 맺은 신라는 나중에는 국가의 명운을 걸고 당나라에 맞서 대규모 전쟁을 치렀고 승리했다그리고는 다시 사신을 파견해 양국간 교류를 재개했다국제관계에서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것을 당시 신라 지배층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물론 신라는 통일 이후 안정을 찾자 급속히 옛 모습으로 되돌아갔다신분제가 다시 공고해지며 활력을 잃어갔다그 결과 후백제, 후고구려(태봉), 고려가 차례로 등장했고 결국 신라는 무너졌다왜 고구려·백제가 아니라 신라였는지 생각해보면 왜 견훤이나 궁예가 아니라 왕건이었는지 납득이 간다그는 영산강 하류를 장악해 견훤을 후방에서 압박하는 동시에 한중일을 잇는 청자무역을 복원해 막대한 국부를 쌓았다견훤은 군사령관으로선 정말이지 특출난 영웅이었고 전투에선 여러번 왕건을 패망 직전까지 몰아붙였지만 끝내 전쟁에서 이긴 건 왕건이었다.

 

신라와 고려를 되돌아보면 지배집단요즘말로 국가 엘리트들이 전략적인 목표를 갖고 그 목표를 위해 힘을 합하는지그리고 적절한 양보와 솔선수범을 통해 민중들의 동의와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끼게 된다특히 국제관계를 제대로 인식하고 외교에 힘을 쏟는 것은 국가의 생사를 가른다서희의 담판으로 강동6주를 얻어낸 역사와 '재조지은담론에 포획돼 나라를 말아잡수신 역사를 비교해보면 외교와 눈뜬 장님의 차이가 뼈저리게 느껴진다.

 


적어도 고려는 요나라 금나라 송나라 사이에서 '고려'라는 주체를 정확히 인식하고 실리를 취할줄 알았다. 조선도 초기엔 외교라는 걸 했다. 하지만 그 잘나신 조선 후기 북벌론자들 중 자식들 군대보낸 사람이 누가 있나전쟁을 하려면 예산이 필요한데도 증세 반대한것도 그 잘나신 북벌론자들이었다우리가 찬양해야 할 대상은 냉철하게 국제정세를 이해하고 책임윤리를 다한 최명길같은 사람이지 정신승리의 대가들인 삼학사가 아니다.

 

21세는 어떨까. '미국이 살려내 이 나라'라는 '재조지은'이 엘리트 집단 머릿속을 다 파먹어놓은 마당에 외교부는 뭐하러 있고 99% 국민을 국부의 원천이 아니라 개돼지로 생각하는데 교육부는 왜 존재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그 중에서도 압권은 국방부다전시작전권도 없고 그걸 부끄러워할줄도 모르는 국방부는 어차피 전시가 되면 아무짝에 쓸모가 없으니 차라리 그 돈으로 364일 단위로 단기 계약을 맺어 미군을 고용하면 어떨까 싶다안으로는 '·돼지피를 빨아먹는 것으로 호구지책을 삼고[각주:1]밖으로는 호구짓과 민폐로 일관하는 21세기 한국 집권 집단에게 이렇게 권하고 싶다


"금수저들이여야망을 좀 가져봐라."

 


  1. 시사IN에 실린 <살고 싶어서 퇴사합니다>란 기사에 등장하는 증언을 보자. “주요 업무가 협력업체 쥐어짜기였다. 논리가 없고 ‘너희 납품할 거면 단가 깎아라, 안 그러면 물량 끊겠다’ 협박하는 게 일이었다. 단가 깎는 게 성과로 돌아왔다. 수년 전만 해도 공장 여러 개를 운영하던 협력업체 대표가 달랑 하나만 남겨놓고 있고, 재무제표로 적자 사정을 확인하고도 또 단가를 낮추라고 했다. 팀장은 회의 때마다 ‘목에 빨대를 꽂아서 쪽쪽 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일은 깡만 있으면 된다. 마음 여린 신입 사원은 상사가 일단 세게 갈구고 나서 협력업체에 보낸다. 그러면 무덤덤하게 가서 해코지한다. 회의감이 들었지만 더 큰 회의감은 그 정도의 경쟁력밖에 없다는 거였다. 기업은 경쟁력이 생겨서 성공하거나 경쟁력이 떨어져서 망하든 해야 하는데, 한국 대기업 제조업은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는데도 특혜를 받고 협력업체를 쥐어짜면서 망하지 않는다. 생각이나 솔루션, 알고리즘을 바꾸는 문제 해결 노력은 전혀 없다. 변할 의지가 없는 시스템은 자존감을 떨어뜨렸다. ‘머지않아 한국 제조업이 추락하겠구나’ 하고 깨달았다. 내가 한국 경제를 악화시키는 대기업을 위해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25471 [본문으로]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