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마다 이 땅에는 정감록에서 예언한 바로 그 '정도령'이 강림하신다. 전체 유권자의 몇십퍼센트, 그러니까 몇백만이나 되는 신도들이 구름처럼 정도령 주위에 몰려든다. 신도들 중엔 '예수 아니면 지옥을 달라'거나 '부처믿고 성불하세요'하는 분들도 적지 않다. 그분들에겐 정도령이 예수 혹은 부처로 보일터.
선거라는 한판 굿이 끝나고 나면 정도령은 '아름다운 패배'를 하며 홀연히 우리 마음 속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5년 뒤 재림하실 새로운 정도령을 기다린다. 현직 정치인을 잘근잘근 씹는 것은 정도령을 맞기 위한 준비운동이다.
정도령이 실제 정씨냐고? 그건 전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정치권을 저주하고 뒤엎을 수 있는 언행만 보여주면 그걸로 족하다. 신도들이 진정 원하는 건 현실 정치를 바꾸고 개혁하는게 아니라 그저 현실 정치를 욕하며, '나는 너희들같은 더러운 족속이 아니야'라고 외치는 정신승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정도령이 현실 정치인이 되면 그는 더이상 정도령이 아니다. 권력을 잡은 정도령도 신도들이 순식간에 다 떠나 버린다. 한번 정도령은 결코 두번 정도령이 될 수 없다. 어쩌면 정도령은 황금가지를 지키며 존경과 칭송을 누리지만 결국은 살해당할 운명에 처한 신관(神官)일지도 모르겠다. 신도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신관을 죽인 사람을 새 신관으로 영접한다. 신도들에겐 그냥 신관이 있다는 게 중요할 뿐 누가 신관인지는 관심 밖이다. (Romeo must die...)
역대 정도령 명단
1992년- 정주영(반값아파트 공약의 원조) 혹은 박찬종(무균질 정치인)
1997년- 이인제 (불사조...)
2002년- 정몽준 (하루만 더 참았어도...)
2007년- 문국현 (뉴패러다임...)
2012년- 안철수 (새정치와 창조경제의 공통점은...)
2017년- 가능성은 반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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