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이 일곱번째 일본 방문입니다. 도쿄는 네번째입니다. 일본은 뭐랄까... 접할수록 더 호감이 갑니다.
처음 일본을 방문한 건 2005년이었습니다. 대구KYC에서 주최한 히로시마 평화기행 동행취재였다(전시장에 갇힌 '반핵' 히로시마를 가다 히로시마 평화공원 한켠 얻는데 30년 걸린 한국인희생자위령비). 당시 제 시선은 일본에 매우 비판적이었습니다. 2006년에는 한일시민사회포럼 취재차 일본 도쿄를 처음 방문했습니다. 당시 시간을 내서 개인적으로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했는데 역시 일본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잘 드러납니다(야스쿠니 신사, 성찰 없는 평화는 공허하다). 하지만 일본 시민단체를 방문하고 일본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만나보면서 새로운 일본의 모습에 눈을 떠 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한일 시민사회 대화하고 또 대화하자).
인권연대가 주최한 종교문화답사에 개인적으로 동행한 게 세번째 일본 방문이었습니다. 2008년 6월에 도쿄와 요코하마 등지를 둘러봤습니다. 2012년에는 박원순 시장 일본방문 동행취재와 가족여행으로 두번 일본을 찾았습니다. 박 시장 동행취재는 대규모 동행취재단이었는데 일정이 엄청 빡빡했던게 기억에 납니다. (서울시 수해방지대책, 일본 요코하마에서 길을 묻다). 가족여행은 크루즈 할인판매를 잘 활용해서 저렴하게 나가사키와 후쿠오카를 가봤지요.
올해 2월에는 가족여행으로 간사이 지역을 가봤습니다. 오사카와 고베, 교토 등지를 둘러봤는데 이때가 일본에 대한 인식이 아주 좋아진 때입니다. 물론 박 시장 동행취재 때 일본의 재난관리 시스템을 보며 참 배울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간사이, 특히 교토 문화유산인 키요미즈데라, 그리고 문화유산을 관리하고 가꾸는 모습을 보면서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한국정부회계학회에 동행했습니다. 3박4일 동안 일본 지방재정제도를 토론하고 일본 지자체를 방문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일본을 좀 더 이해하고 좀 더 가깝게 느끼는 계기가 됐습니다. 일본 지방재정제도를 공부한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이고요.
일본에서 보고 듣고 느낀 걸 두 차례에 나눠 싣습니다.
#장면1
일본은 지난해 전국적으로 지방자치단체 회계제도에 복식부기·발생주의를 도입했다. 일본 정부에 여러 차례 제도도입을 건의했던 일본 정부회계학회는 “한국에선 벌써 2007년에 복식부기·발생주의 회계제도 개혁을 완료했다. 일본은 한국보다 개혁이 너무 더디다”는 논리를 내세운 끝에 회계제도 개혁을 이끌어 낼 수 있었다고 했다.
#장면2
한국은 복식부기·발생주의 회계제도를 만능열쇠처럼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중앙정부가 전국적으로 통합관리하는 것이 자칫 지자체를 과도하게 통제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거기다 순환보직 제도에 더해 일 자체가 어렵고 노동강도도 세기 때문에 지자체 공무원들이 회계 업무를 기피하는 경향 때문에 고민이 많다.
지난 10월24일 일본 도쿄 와세대대학교에서 열린 한국정부회계학회와 일본정부회계학회 공동세미나는 한국과 일본이 재정회계제도에서 서로 부족한 점을 채우는 데 유용한 시사점을 주는지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시바사키 켄지 일본정부회계학회장은 “한국은 지방회계제도 개혁을 신속하게 과감하게 이뤄냈다”며 비결을 물었다. 강인재 한국정부회계학회장은 “일본 회계제도개혁에서도 나타나듯이 신중하면서도 꾸준하고 전략적인 움직임은 배울게 많다”고 평가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각각 국가재정과 지방재정에서 회계제도 개혁을 어떻게 추진하고 있으며 과제와 고민은 무엇인지 서로 발표하고 토론하는 순서로 이어졌다. 점심 시간 이후 시작해서 해가 질 때까지 5시간 가까이 진지한 토론과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세미나를 마치고 나서는 한국정부회계학회와 일본 와세다대 공공서비스연구소가 상호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도 체결했다. 강 회장은 “내년에는 한중일 협력체계를 구축하려 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발생주의 회계제도를 도입한 것은 공공부문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대내외 요구와 함께 1997년 외환위기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회계제도개혁을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했고 결국 2007년 전체 지자체가 복식부기·발생주의 회계를 도입했다. 2008년에는 4년여에 걸친 준비 끝에 지자체 예산편성·집행·결산 등을 관리하고 각종 통계를 제공하는 지방재정관리시스템(e-호조)도 개발했다.
일본은 지방자치라는 측면에서 한국과 상당히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일본은 수백년 넘게 지자체가 사실상 나라[國]처럼 존재했던 반면 한국은 전세계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 체계적인 국가통치체계를 수백년 넘게 유지해왔다. 그 결과 일본은 지자체마다 재정시스템이 다르고 정보공유도 잘 안된다. 자율성을 중시하고 지자체간 협력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국가차원의 통일된 관리에선 약점이 있다.
한미경 재정성과관리연구원 부원장은 “일본은 신중하게 논의해서 제도를 고치기 때문에 의사결정은 느린 반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제도를 바꾼다. 안정성과 지속성에서 장점이 있다”면서 “지방재정제도에서도 그런 특징이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는 “복식부기·발생주의 회계제도가 만능열쇠는 아니다. 실정에 맞는 적용이 필요하다”면서 “일본은 꾸준한 논의를 통해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종혁 한양대 정부혁신정책연구소 연구교수는 “일본은 독자적인 회계관리 시스템으로 지자체 특색에 맞는 자율적 재정운용을 하는 노력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는 “일본 오사카부 수이타시(市) 사례발표를 보니 복식부기 제도를 도입하면서 자산관리에 초점 맞춘게 인상적이었다”면서 “일본 경험을 한국에 적용하면 지자체 자산관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일본 학자들은 대체로 한국의 신속한 의사결정과 추진력을 높이 평가했다. 반면 한국 학자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차근차근 개혁을 추진하는 일본의 ‘우직함’을 부러워했다. 한 한국측 참석자는 “한국정부가 지방교부세를 배분할 때 인센티브를 강화하하고 있다고 했더니 일본 학자가 ‘지방교부세는 지자체가 자체적으로 사용하는 일반재원인데 왜 중앙정부가 지자체를 통제하느냐’고 반문하더라”면서 “지방자치 발전을 위해서는 일본 경험과 고민을 깊이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