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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

스웨덴의 JFK, 팔메 총리 암살 25주년

by betulo 2011.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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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228일 밤,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시내 한 극장 앞에서 영화를 보고 나오던 스벤 올로프 팔메와 부인 리스벳 부부에게 검은 코트를 입은 한 사내가 다가와 권총을 발사했다. 총알은 팔메 총리의 척추를 관통해 치명상을 입혔다.


 지금도 스웨덴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으로 꼽는 팔메 총리가 암살된 지 28일로 25주년을 맞아 스웨덴이 추모 열기에 휩싸였다. 여러 국가 비밀정보기관이 공모해 그를 죽였다는 것부터 국내 극우세력의 소행이라는 각종 음모론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지금까지 자신이 팔메를 암살했다고 자백한 사람만 130명이 넘지만 조사 결과 진범은 아무도 없었다. 1989년 법원은 크리스터 페테르손을 암살범으로 지목해 종신형을 선고했지만 1998년 대법원은 재심을 통해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최근 검찰은 팔메 전 총리 암살범에 대한 공소시효를 연장했다.


 자신이 통치하는 나라가 자유와 평등, 평화의 이상에 가장 근접한 세계 제일의 문명국이라고 자부했던 팔메는 평소에 경호원도 없이 시내를 활보하는 자신을 보고 외국인들이 깜짝 놀라는 모습을 즐겼다. 이날도 주말이라며 경호원들을 퇴근시키고 부인·아들과 함께 극장에서 시민들과 똑같은 자리에 앉아 영화를 보고 나오던 길이었다.


 1927년 스톡홀름에서 태어난 팔메는 스톡홀름대학 법학과를 두 학기만에 졸업했다. 1952년 사회민주노동당에 입당한 뒤 두각을 나타내 뛰어난 논객으로 명성을 얻었다. 1957년 상원의원에 당선됐고 196942세에 당대표 겸 최연소 총리가 됐다


그는 고용안정법과 임금노동자 경영참여법 등을 잇따라 제정하며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공고히 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오일쇼크 등으로 인한 경기악화와 노사관계 악화 속에서 1976년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44년 사민당 장기집권이 막을 내리는 걸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곧 1982년 총선에서 다수당 자리를 회복하면서 두번째로 총리직을 수행했다.


 팔메는 미국과 소련의 패권주의를 모두 비판하며 제3세계를 대변한 흔치 않은 정치인이었다.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해 오하이오 주 케년대학에서 정치학을 공부할 당시 미국사회의 엄청난 빈부격차에 충격을 받아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의 한계를 절감했다. 1949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열린 국제학생연맹 회의에 스웨덴 대표로 참석한 팔메는 소련식 국가사회주의 역시 스웨덴의 대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미국이 베트남에 개입하는 것을 맹렬히 비난했을 뿐 아니라 소련이 체코슬로바키아 수도 프라하를 침공하는 것에 항의하는 시위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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