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권이 세 개냐” 붙잡힌 적도
K리그에서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올스타로 선정되기도 했던 안영학의 국적은 한국도 북한도 아니다. 법적으로 ‘조선적’(朝鮮籍)인 안영학은 엄밀히 말해 무국적자다. 정대세도 아버지는 한국국적이지만 어머니는 ‘조선적’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자 그 때까지 내국인으로 간주하던 식민지 조선인들을 외국인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한반도 남북에서 각기 다른 정부가 들어서기도 전인 1947년 일본은 외국인 등록령을 발효하면서 한반도 출신자로 일본에 남아있던 60여만명을 일률적으로 ‘조선’으로 표시했다.
한국과 일본이 외교관계를 수립하기까지 20년 가까이 재일동포는 ‘조선’이라는 가상의 존재 소속일 수밖에 없었다. 한일조약 이후 재일동포들은 조선에서 한국으로 국적으로 바꾸는 것이 가능해졌지만 한국을 택하는 것이 분단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정치적으로 북한에 우호적이거나, 남북 어디도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은 ‘조선적’으로 남게 됐다.
'조선적'은 개인사업을 하는 경우 은행 대출도 받을 수 없다. (여권을 발급해줄 '국가'가 없어서) 외국여행에 제한을 받는다. 외국에 가서도 이들을 도와줄 대사관이 없다. 한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엔 전향적인 정책을 펴서 조선적이라고 하더라도 한국 여행을 할 수 있게 됐지만 최근 들어 한국을 방문할 경우 한국국적으로 바꾸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 이 사실이 문제가 돼 지난해 12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시정을 권고했고, 지난 1월 법원에서 한국영사관이 패소하기도 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20만명에 이르던 조선적은 최근엔 3만명 이하로 급감했다고 한다. 특히 2002년 고이즈미 총리가 평양을 방문했을 당시 김위원장이 일본인 납치 사실을 공식 인정한 뒤 불어닥친 반북 광풍을 거치면서 대거 한국국적을 취득했다.
안영학은 일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에 갈 때는 여권을 발급받지 못해 여행증명서를 별도로 받아야 한다. 한국 K리그에서 부산아이파크와 수원삼성 구단에서 뛰면서 북한 국가대표팀 경기에도 참가할 당시 그는 3개월짜리 여행증명서를 20번도 넘게 받은 적도 있다.
북한에서 발급한 여권이 있지만 일본에선 북한 여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쓸모가 없다. 다행히 그는 K리그에서 뛸 당시 ‘북한과 재외동포는 국내선수로 취급한다.’는 대한축구협회 규약 덕분에 '외국인' 용병 취급을 받지는 않았다.
안영학 공식 사이트(http://www.yeonghag.info/k/profile.html)를 보면 그는 출국을 할 때는 일본 정부가 발행하는 재입국허가증(再入國許可證)을 취득한다. 북한대표팀으로 외국에 나갈 때는 북한 정부가 발행한 ‘신분증명서’를 갖고 간다. 한국에서 일본이 아닌 다른 나라로 갈 때도 한국 정부가 발행하는 ‘여행 증명서’를 소지한다. 세 신분증 모두 겉표지는 그 나라 여권과 똑같이 생겼다. 심지어 외국 공항에서 “왜 여권을 세 개나 갖고 있느냐.”는 이유로 붙잡힌 적도 있다.
“우리는 ‘자이니치’다”
재일동포 사회가 3세 4세로 이어지면서 한국어를 알지 못하고 일본에 귀화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안영학과 정대세 역시 재일동포 3세다. 이들에게 남이냐 북이냐 하는 양자택일은 갈수록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남녘에서는 북한 사람, 북녘에서는 남조선 사람, 일본에서는 외국인도 아니면서 일본인도 아닌 ‘조선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재일동포들 사이에선 점차 ‘자이니치(在日)’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재일동포 3세로 스포츠전문 기고가인 신무광씨가 재일동포 축구선수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우리가 보지 못했던 우리 선수’에서 안영학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북이요, 남이요, 일본이니, 일본이 아니라니 나는 나를 그 어디라고 규정짓고 싶지 않아요. 그래도 굳이 그래야 된다면 나는 ‘자이니치(在日)’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대세 역시 “내 모국은 일본이 아니라 일본 속에 있는 ‘재일’이라는 또 다른 나라”라면서 골을 통해 “‘재일’의 존재를 널리 알리면서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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