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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

각자도생인가 고통분담인가, 스페인의 선택은

by betulo 2010.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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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간과 급여를 줄이려는 논의도 있었지만 결국 노동계조차 ‘같이 죽고 같이 살자.’를 택하지 않고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자.’를 택했다. 밀려난 사람은 비정규직이 되거나 노숙자가 됐고 남은 사람들은 ‘나도 저렇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서 눈 앞에 있는 임금만 신경 쓰게 된 10년이었다.”

2년 전 87년 6월항쟁 10주년을 기념해 서울신문이 마련한 기획좌담(기획좌담)에 참석했던 은수미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왜 87년에 함께 길거리에 모이면서 작게나마 형성됐던 연대의식이 사라져 버렸나’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87년에는 너나 없이 어깨걸고 거리에 나섰다. 97년엔 한 회사 안에서도 살아남는 사람과 죽는 사람이 갈렸다.

은수미 박사는 당시 경험에서 비정규직 문제와 극단적인 가족주의 등 사회적 병리현상의 원죄를 짚어낸다. “실업을 경험한 사람과 그걸 지켜본 사람의 경험은 지금도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그 상처가 지금의 모든 걸 설명해 준다.”

당시 모두가 고통을 함께 나누는 방식을 택했다면 어땠을까. 적어도 위기를 막지는 못하더라도 각자도생(各自圖生)하는 아귀지옥으로 떨어지는건 최소한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김성해․강국진(2010: 7~8)은 이렇게 묘사했다.

“정치인은 인기를 위해 언론의 비위를 맞추고, 언론은 광고를 위해 기업을 두둔하고, 기업은 생존을 위해 직원을 해고해야 하고, 노동조합은 직장을 위해 거리로 나서야 하고, 힘없는 국민들은 알아서 자기 살 길을 모색해야 하는 각자도생(各自圖生)을 강요받는 상황이다.”

스페인에서 들려온 뉴스에 눈길이 간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모두가 함께 살자’는, 우리가 말로만 외쳤던 ‘고통분담’을 실천하기로 정부-사용자-노동자가 힘을 합쳐기로 했다는 소식은 나에게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2월5일 밤에 AFP통신에 타전된 뉴스를 기사로 써 봤다. 8일자 서울신문에 실렸다.

'해고는 곧 살인'일 수밖에 없는 한국 현실에서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야 했던 전쟁의 현장이었던 쌍용차 파업 사진을 올려본다. 기억하기 위해서 .


 

재정 위기에 빠진 스페인이 노사정 대화를 통한 고통분담에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AFP통신은 최근 스페인이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고용안정에 주력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정부-재계-노동계 3자 대화를 통해 이끌어 낸 이번 타협은 정리해고 유보와 근무시간 단축, 임시직 축소와 파트타임 정규직 확대 등을  담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정리해고를 하지 않는 대신 근무시간을 단축해 비용절감을 유도하는 것이다.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는 독일 정부가 이 정책으로 성과를 냈다는 점을 들어 재계와 노동계를 설득했다. 이와 함께 임시직 고용을 줄이는 대신 ‘파트타임 정규직’을 확대하고 미숙련 청년노동자 고용을 촉진하기로 한 점도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고용안정을 위한 방안이다.

노사정 타협에 대해 재계도 환영 입장을 밝혔다. 게라르도 디아스 페란 스페인경제인연합회(CEOE) 회장은 “정부 정책은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 첫인상은 긍정적이다.”라고 밝혔다.

스페인은 비정규직 비율이 높기로 유명한 국가다. 지난해 말 전체 노동자 가운데 비정규직 비율이 25%나 됐다. 유럽연합 27개 회원국 평균 비정규직 비율 14%(2008년 기준)에 비해 두 배가 넘는 수치다. 실업률도 지난해 4·4분기 현재 19%로, 유럽연합에서 두번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유로화를 사용하는 16개 ‘유로존’ 국가들의 평균 실업률은 10%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3.6%를 기록했고 4분기 경제성장률도 마이너스 0.1%였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1.4%에 달하는 재정적자로 위기에 빠졌다.

AFP는 “스페인이 유럽연합에서 경제규모가 5위나 되지만 국제 금융위기에 특히 취약하다는 것이 이번에 드러났다.”면서 “대출 규제완화에 따른 부동산 거품과 과도한 국내 신용팽창에 의존한 경제성장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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