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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생각

'주식회사 대한건설’ 선언한 ‘준예산 검토’

by betulo 2009.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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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브리핑(091224~091226)

흔히 지금 정부를 신자유주의, 쉽게 말해 ‘시장근본주의’ 정부라고들 한다. 시장근본주의 정부 하면 일단 떠오르는게 부자 세금 깎아주기(이른바 감세)와 규제완화, 금융시장 개방 등이다. 최근 내년도 예산안을 둘러싼 갈등을 지켜보면서 나는 이런 규정이 ‘틀렸다’는 확신을 하게 됐다.

몇달전 익명의 모 인사한테서 이런 말을 들었다. “정부 여당이 감세 철회를 조건으로 4대강 예산 통과를 야당에 요구하려 한다.” 실제로 요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정부는 감세를 철회하고 4대강 통과를 위해 전쟁을 불사하고 있다.

생각해보자. 감세는 시장근본주의를 상징하는 구호다. 레이건이나 대처 정부가 대표적이다. 그들이 집권하고 나서 제일 먼저, 가장 강력하게 (공식적으로) 추진한 작업이 바로 부자 세금 깎아주기였다. 부자 세금을 깎아주면 부자들이 세금 안 낸 돈으로 소비를 많이 할 거고, 기업들은 투자를 더 많이 할거고, 그럼 소비확대와 투자활성화 덕분에 경기도 살아나고, 서민들도 더 잘살게 된다는 논리다. 이를 ‘낙수효과’라고 한다.

4대강 사업은 시장근본주의와는 맥락이 상당히 다르다. 정부가 내세우는 논리대로라면 4대강 사업은 일자리창출을 위한 사업이고 경기회복을 위한 사업이다. 이 사업을 위해 수십조원에 이르는 국가재정을 투입하겠다는 거다. 대규모 토건사업으로 경기를 살리겠다는 발상 자체가 시장근본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최근 예산 관련 움직임 두가지를 주목해보자.

먼저 준예산. 대통령이 나서서 ‘준예산 검토’라는 초강수를 꺼내들었다.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전체 예산의 1.2%에 불과한 4대강 예산을 문제삼아 예산안 처리를 하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이같이 밝혔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이 말한 바로는 준예산을 편성할 경우 헌법이나 법률에 따라 설치된 기관은 급여를 지급하지만 훈령 등에 설치된 기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은 봉급 지급이 어렵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얘기를 듣고 대통령은 즉석에서 “공무원 봉급 지급도 유보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법에도 없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누구나 알다시피 준예산 발언이 나오게 된 직접 원인은 4대강이다. 한겨레는 26일자 1면 머릿기사에서 4대강 중에서도 핵심은 “보 개수와 높이, 준설량 등”이라고 지목했다. 야당은 이 부분을 대폭삭감을 해야 한다는 것이고 여당은 절대 그렇게 못하겠다는 것이다. 문제 해결의 열쇠인 청와대는 ‘준예산’이라는 초강수를 통해 협상 가능성을 없애 버렸다. 이제부터 내년도 예산안 ‘정치’는 사라졌다. 오직 힘과 힘이 맞붙어 한쪽이 항복해야 끝나는 ‘전쟁’이 있을 뿐이다.


간단히 정리해보자. 4대강 사업은 전체 국가예산의 1.2%에 불과하다. 98.8%를 제쳐 놓고 1.2%를 위해 헌정사상 한 번도 없던 전무후무한 상황을 벌이겠다는거다. 그것도 작년초부터 자장면 값 감시하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일 시켜온 공무원들 월급을 안주는 사태를 감수해서라도 말이다. (그 공무원 월급에 대통령 월급도 포함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런 극한 대립 와중에 눈여겨 볼 두 번째 문제는 정부가 취임 전부터 강력하게 추진했던 감세 정책은 국회에서 유보했다는 점이다. 23일자 한겨레와 경향을 보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22일... 소득세,법인세 최고 구간의 세율 인하를 2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시장근본주의를 평소 자랑으로 여기던 조중동에서 이 문제를 별로 거론하지 않은건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다.) 

정부는 애초 소득세의 경우 내년부터 최고 구간(8800만원 초과) 세율을 35%에서 33%로, 법인세는 2억원 초과 구간 세율을 22%에서 20%로 인하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걸 유보한거다. 한나라당이 합의해줬으니까 결정된 것이다. 청와대에서 허락해주지 않았다면 지금쯤 "감세를 위해 준예산 검토"라는 말이 나왔을거라고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부자감세는 찬성측과 반대측 모두에게 엄청나게 중요한 사안이다. 지난해 국회예산정책처에서 이미 정부가 추진하는 방안대로 될 경우 향후 2012년까지 100조원 가까운 재정감소가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했다. 정확한 액수를 아무도 모르는 4대강 예산이라도 100조원에는 미치지 못한다.

감세는 유보하고 4대강엔 집착한다. “시장을 통한 경제회복”은 유보하고 “정부가 주도하는 토건사업을 통한 경제회복”은 밀어붙이는거다. 이래가지고는 신자유주의 정권이라고 부르기가 민망해진다. 

그런 면에서 내 결론은 이거다. 현 정부를 단순히 신자유주의(=시장근본주의) 정부라고 하는 건 정확하지 않다. 평소 외치던 것과 달리 친시장 정부라는 프레임으로만 설명하는건 더더욱 맞지 않다. 시장을 생각하는 정부라면 ‘준예산’ 얘기를 먼저 꺼내는 식으로 전쟁선포를 하지는 않을거다. 내가 보기에 정부는 오히려 친시장정부의 탈을 쓴 토건정부다. 

외환위기 이전 한국 정부가 추진한 경제정책을 가리키는 말 중에 "주식회사 대한민국"이란 게 있었다. 정부가 중심을 잡고 기업과 은행을 통해 경제개발을 이끌어내는 체제였다. 물론 90년대 초부터 이 모델은 해체됐다. 그럼 지금 한국정부의 경제모델은 무엇일까. 아마도 "주식회사 대한건설"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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