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카 성지순례를 가리키는 말을 인터넷에서 검색해 봤습니다. 위키백과(http://ko.wikipedia.org/wiki/%ED%95%98%EC%A6%88)에는 “하즈(아랍어: حج)는 메카의 성지를 순례하며 종교적 의례에 참가하는 일로 모든 이슬람 교도에게 부과된 기본적인 종교 의무 중 하나이다. 정규적인 순례를 마친 자를 '하지'(الحجّي)라고 부른다.”라고 돼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자료나 국내언론보도에는 ‘하지’라고 돼 있네요. 어느 쪽이 맞는 걸까요?
황병하 조선대 아랍어과 교수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봤습니다. 황 교수는 하즈(hajj)는 메카 성지순례를 가리키는 말이고 하지(haji)는 성지순례를 다녀온 사람에게 붙이는 일종의 존칭이라고 알려줬습니다. 위키 승!
내일자 서울신문에는 메카 성지순례객들을 보여주는 사진이 실릴 겁니다. ‘하지’라는 ‘잘못된’ 표현과 함께. 이유는 국립국어원이 발간하는 표준국어대사전에 ‘하지’라고 돼 있기 때문입니다. 신문사는 국어사전에 실린 표기법을 준수할 수밖에 없다는 원칙 때문에 ‘하지’라고 씁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하지(<아>Hāji): 이슬람교에서, 메카 순례 또는 그 순례를 마친 이를 높여 이르는 말.”
생각해보면 외래어 표기법은 논란이 될만한 게 많습니다. 몽골사를 잠깐 공부했던 제 입장에서 보면 공식적인 몽골인명 표기법은 거의 재앙 수준이지요. 칭기스칸(Chinggis Khan)은 칭기즈칸 심지어 징기스칸이라고 하지요. 가장 자주 틀리는게 알파벳전사 ‘u’를 ‘우’발음으로 옮기는 잘못입니다.
중세 몽골어 전사에서 ‘u’와 ‘o’는 모두 ‘오’ 발음입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으나, ‘우’ 발음은 ‘ü’로 돼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몽골사 관련 이름 발음이 상당히 달라집니다. 칭기스칸의 우익 만호장으로 삼았던 ‘무칼리’는 사실 '모칼리(Mokhali)가 맞고요. 칭기스칸의 큰아들 조치의 아들로 동유럽 원정군을 이끌었던 ‘바투’는 사실 ‘바토(Batu)’입니다. 칭기스칸의 손자였던 쿠빌라이칸은 ‘코빌라이칸’입니다.
이럴 수밖에 없는 또다른 이유는 바로 ‘모음조화’ 때문입니다. 한 낱말 안에서 양성모음과 음성모음이 같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런 현상은 중세 한국어에도 있었지만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요.
하즈와 하지를 보면서 한국이 얼마나 나라 밖 물정에 약한지 다시 깨닫게 됩니다. 고려 원종과 밀약을 맺고 그 아들이었던 충렬왕을 사위로 삼았을 정도로 고려사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는데도, 여전히 쿠빌라이와 코빌라이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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