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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요르시리다라2

1368년 원나라가 멸망한 해? 1368년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매우 특별한 해로 기억된다. 이 해에 "원·명 교체"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동양사"를 가장한 많은 중국사 개설서는 이 사건을 "명은 원을 멸하고 건국하였다"고 적고 있다. 1368년은 역사 해석 주체의 역사관에 따라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 동전의 뒷면처럼 모습을 달리 하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면 역사는 누가 무엇을 누구를 위해 어떻게 기억하고 해석하는가에 따라 외양을 달리하는 셈이다. 어떻게 기억하는가, 그리고 누구를 위하여 기억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역사'가 생겨난다.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 1368년, 주원장은 남경(南京)에서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국호는 대명(大明), 연호는 홍무(洪武)였다. 즉위와 함께 '북벌'을 시작했다. 원나라 중앙정부는 이미 .. 2007. 7. 25.
자다(Jada) - 날씨를 내맘대로 1232년 1월 당시 금나라의 서울인 개봉의 서남쪽 삼봉산(三峰山). 이 곳에서 몽골군과 15만의 금나라군이 나라의 운명을 걸고 맞붙었다. 몽골군 총사령관은 칭기스칸의 막내아들 톨로이(Tolui). 금나라는 완안합달(完顔哈達)이었다. 당시 몽골군의 병력은 1만 3천이라고도 하고, 4만이라고도 한다. 몽골군은 참호를 파고 말과 몸을 숨겼다. 계속된 폭설로 세상은 온통 눈으로 뒤덮였다. 금나라 군대는 사력을 다해 공격을 거듭했지만 큰 타격을 입히지도 못한 채 추위와 허기로 급격히 전력이 약해져 버렸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몽골군은 반격을 시작했다. 금나라의 최정예 부대는 전멸했다. 금나라는 저항할 힘조차 잃어버렸다. 왜 톨로이는 참호를 파고 말과 몸을 숨기는 작전을 썼을까? 기병전은 참호전과는 영 어울리지.. 2007. 7.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