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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몽골 이야기

자다(Jada) - 날씨를 내맘대로

by betulo 2007.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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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2년 1월 당시 금나라의 서울인 개봉의 서남쪽 삼봉산(三峰山). 이 곳에서 몽골군과 15만의 금나라군이 나라의 운명을 걸고 맞붙었다.

몽골군 총사령관은 칭기스칸의 막내아들 톨로이(Tolui). 금나라는 완안합달(完顔哈達)이었다. 당시 몽골군의 병력은 1만 3천이라고도 하고, 4만이라고도 한다.


몽골군은 참호를 파고 말과 몸을 숨겼다. 계속된 폭설로 세상은 온통 눈으로 뒤덮였다. 금나라 군대는 사력을 다해 공격을 거듭했지만 큰 타격을 입히지도 못한 채 추위와 허기로 급격히 전력이 약해져 버렸다.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몽골군은 반격을 시작했다. 금나라의 최정예 부대는 전멸했다. 금나라는 저항할 힘조차 잃어버렸다.


왜 톨로이는 참호를 파고 말과 몸을 숨기는 작전을 썼을까? 기병전은 참호전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폭설이 내릴 거라는 걸 미리 알고 있었을까? 그럼 완안합달은? 흔히 일칸국이나 일한국으로 알려진 훌레구 올로스의 재상이었던 라시드 알-딘이 14세기 초에 완성한 <집사>라는 책에는 당시 톨로이가 인위적으로 폭설이 내리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자다석(石)을 물 속에 집어넣고 비비면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비가 내렸다. 한여름에도 곧 바람이 일어나 날씨가 추워지면서 눈이 내린다. 몽골군 가운데에 이 술법에 정통한 한 '캉리' 사람이 명령을 받들어 주술을 시행했다." 그래서였을까? "키타이(금나라)군대는 들판에 휘몰아치는 눈보라에 노출된 채로 있었"고 승패는 결정된 거나 마찬가지였다.


가뭄이 들 때 비를 부르는 의식인 기우제는 세계 어디에나 있지만 지역에 따라 무척이나 다양하다. 몽골에서는 우리나라의 성황당과 비슷한 구실을 하는 오보에 경건하게 기도를 드린다. 지금은 맥이 끊어져 버린 기우제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1232년 금나라의 15만 대군을 전멸시켰다는 '자다(Jada)'이다.


물·바람·구름 같은 것들을 '무조건' 농경민족의 상징인 것처럼 보통 얘기하지만 솔직히 전혀 이해할 수 없다. 물·바람·구름은 유목민이든, 뱃사람이건 모두에게 죽고 사는 걸 결정할 만큼 중요한 문제다.


몽골도 예외는 아니다. 이들은 날씨에 굉장히 민감하다. 초원지대인 몽골의 기후는 한마디로 변화무쌍 그 자체다. 특히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때에 비가 많이 오거나 눈이 많이 내리면 가축들이 먹이를 구할 수 없어 폐사하는 경우가 생긴다. 몽골에선 이런 경우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기도 한다. 역사적으로 이런 돌발적인 기상이변으로 유목제국이 멸망직전의 위기에 내몰린 적도 많았다.


전쟁을 할 때도 날씨는 중요한 변수이다. 북방민족이 중국을 공격할 때는 대개 가을과 겨울이다. 반대로 중국에서는 봄에 북방민족을 공격하기 시작해 가을에 귀환한다. 겨울이 되면 강이 얼어붙어서 북방민족의 기병부대가 기동력을 살릴 수 있다. 침입을 받았을 때에는 적을 후방으로 유인하면서 매복과 기습을 거듭하며 적이 지치기를 기다린다. 두 가지 경우 모두 날씨는 큰 변수가 된다.


차강조드(Chagan jud)라고 부르는 겨울철의 폭설이나, 폭우와 강풍은 전투의 승패를 한순간에 바꿔버릴 정도로 무서운 재앙이다. 날씨는 우세한 전력을 무용지물로 만들 수도 있고, 불리한 상황을 반전시킬 수도 있다. 날씨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비법이 히트를 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자다는 비바람을 부르는 주술법이고, 거기에 쓰이는 것이 자다석이다. 자다석은 동물의 결석(結石)으로 만드는 데 특히 콩팥에서 얻은 자다석이 가장 효험이 크다. 돌궐계 민족에서 시작된 걸로 보이는 이 비법은 초원의 유목민족들 사이에서 비바람, 서늘한 기운, 눈, 안개, 우박, 서리 따위를 부르거나 구름을 쫓아버리는 데 애용되었다.


자다를 부리는 절차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자다석에 주문을 외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다석에 피와 주문을 결합시킨 절차이다. 자다석과 주문이 결합한 방식이 더 일반적이라고 한다.


주문은 매우 다양하다. 현지의 지배적인 종교와 결합한다. 지배적인 종교의 신이 가장 힘이 센 신이라고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글쓴이도 어린 시절 "지금 세상엔 예수귀신이 가장 힘이 세다"는 말을 마을 할머니들한테 들은 적이 많다. 불교가 강한 지역에서는 다라니경같은 불경을, 이슬람교 지역에선 꾸란의 한 구절을 외운다.


가장 기본적인 용도인 비를 부를 때는 어떻게 할까. 네 가지 방법이 있다. 자다석을 물 속이나 물 단지에 넣고 주문을 외우기, 자다석을 버드나무 가지에 맨 다음 물단지에 담그거나 물단지 위에 드리워 놓고 주문을 외우기, 자다석을 자루에 넣은 뒤 말 고리에 매달아 주문을 외우기, 마지막으로 자다석에 동물의 피를 칠한 뒤 주문을 외우기.


물을 돈 쓰듯 하는 우리나라에서 올해는 가뭄 때문에 유난히도 고생을 많이 했다. 해서 이 글에서는 비를 부르는 비법을 소개하고자 한다. 1801년에 채록된 내용이다.


"비를 부르려 할 때는 기도가 끝난 뒤 물 한컵 정도 들어가 있는 단지에 자다석을 집어 넣고 비를 비리고자 하는 방향으로 자다석과 물을 동시에 끼얹는다. … 자다석을 물에 집어넣으면 소용돌이를 일으킨다고 한다. 그 단지에 들어있는 물은 모두 끓어오르는 모습처럼 움직인다. 이 때 적합한 다라니경을 외우면 반드시 비가 내린다. … 경건하게 필요한 주문을 오백번 외우면 실패하는 법이 없다고 한다."


바람을 부를 때도 위의 세 번째와 같은 방법을 쓴다. 한여름에 장거리 여행을 할 때는 자다석을 자신의 허리띠에 매단다. 비나 바람을 부르는 방법을 겨울에 쓰면 눈을 부를 수 있다. 특히 겨울에 눈을 부르는 건 군사적으로 아주 유용하다. 구름을 쫓아버리는 방법도 있다.


<동방견문록>에는 "칸이 대나무 궁전에 머물 때 악천후의 날이 있으면 칸을 섬기는 현명한 점성사나 요술사가 구름이나 악천후를 쫓아 버린다. 그 결과 궁전의 날씨만 금방 좋아지고 악천후는 모조리 다른 곳으로 옮겨가 버린다. 이런 요술에 능한 자들을 '박시'라고 부른다."라고 적고 있다. (박시는 오늘날 몽골어에서 선생이란 뜻인데, 샤만 즉 무당을 뜻하는 베키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자다를 하는 사람을 자다치(Jadachi)라고 부른다. 자다치에는 크게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전통적인 샤만(Shaman)이다. 둘째로 나중에 다른 종교가 전파되고 샤만의 지위를 대신하게 된 이슬람교나 라마교 등의 사제들. 마지막으로 비법을 전수 받은 일반인들이다.


일반인들 중에는 아요르-시리다라(Ayur Shiridara)같은 왕자도 있다. 몽골의 역사서인 <알탄 톡치(황금사)>에는 그가 어느 전투에서 자다를 이용해 명나라의 군대를 전멸시켰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요르-시리다라는 토곤테무르카간[順帝]과 고려출신 기황후(奇皇后)사이에 태어나 1370년 카라코롬에서 대원(大元)의 카간이 되었던 인물이다.


자다는 유목민족들 사이에서 무척 애용되었던 비법이다. 뭐든 마찬가지지만 이것도 항상 성공하는 건 아니다. 돌팔이 자다치가 없으란 법도 없다. 일단 구름이나 바람 등을 유심히 관찰해서 언제쯤 비가 올지 감을 잡으면 '쇼'를 부릴 수도 있다. 실패하면 "날씨가 너무 더워 비의 힘이 그것을 이기지 못했다"고 핑계를 대기도 한다. 하지만 목숨을 건 전쟁터에서 그런 실수나 실패는 그 자체가 더할 나위 없는 재앙이다.


1202년 테무진과 쿠이텐이란 곳에서 맞붙은 적군의 우두머리들이 자다를 쓴 적이 있었다. 비바람을 불러냈다. 태풍 '도라지'가 울고 갈 정도로 힘도 좋다. 근데 자기들 쪽으로 휘몰아쳤다. 전진도 못하고 낭떠러지로 밀려 떨어질 지경이었다. 많은 사상자가 생기고 대열은 붕괴되었다. 승부는 판가름났다. 우두머리 둘은 "하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외쳤다고 한다. 그리곤 도망쳤다.

상황 종료...


끝으로 실크로드의 한 중심지였던 중앙아시아의 어느 도시유적에서 시를 한편 소개하고자 한다. 그 시에는 술고래 남편 때문에 속앓이를 하던 여인의 슬픔이 잘 나타난다.


"피가 자다에 닿으면 비가 내리듯이

술이 당신의 붉은 입술을 적실 때

나의 눈물은 비처럼 흘러내린다"



※이 글은 박원길 선생님의 <북방민족의 샤마니즘과 제사습속>(민속박물관, 1998)에 실린 [자다(Jada)제]라는 글을 바탕으로 정리했다.


2001년 8월31일 세상에 나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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