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소국의 비애라고 해야하나, 작은 부인에게 정신이 나가 맏아들도 귀찮아진 걸까? 나라를 위해 아들조차 희생시키는 '구국의 결단'? 아버지는 아들을 인질로 보내놓고는 바로 그 나라를 공격했었다. 월씨(月氏)라는 나라다. 흔히 월지국이라고 한다.
'천리마'의 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중앙아시아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선진국에 군사강국이다. 인질로 가있는 동안 아들은 그 곳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그래도 살아 돌아온 아들이다. 아들에게 1만 명의 군대를 지휘하게 했다. 만인대장(萬人大將), 보통 만호장(萬戶長)이라고 하는 자리다. 그의 이름은 묵특(冒頓). 뜻이 뭔지는 잘 모른다. 바아타르(Baatar)라고도 하고 '복트(Bogdo)'라고 한다. 바아타르는 용사란 뜻이다.
아들은 신기한 걸 만들었다. 명적(鳴鏑)이라는 화살이다. 끝이 둥글게 되어 있어서 그걸 쏘면 새 울음 소리가 난다. 소리화살이다. 일종의 신호탄 구실을 한다. 그는 1만 명을 모아놓고 명령을 내렸다. "이제부터 내가 무슨 표적에 소리화살을 쏘든지 모두가 그 쪽으로 화살을 날려야 한다. 안쏘면 죽인다."
처음에는 들짐승이나 날짐승에게 소리화살을 날렸다. 그리고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그때마다 닥치는 대로 죽였다. 명령불복종은 죽음이다. 자기가 아끼는 말에 소리화살이 날아갔다. 주저하는 자들은 죽였다. 자기가 사랑하는 아내에게 소리화살을 쐈다. 이번에도 머뭇거린 자들은 어김없이 죽였다.
아버지와 사냥에 나간 아들이 소리화살을 아버지가 아끼는 말에 날렸다. 1만개의 화살이 그 말에 박혔다. 이만하면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했을까. 아들의 소리화살이 아버지를 향했다. 그는 계모와 이복 동생, 그리고 자신을 따르지 않는 모든 자들을 죽이고 스스로 선우(單于)가 되었다. 선우는 그 나라에서 하늘의 아들을 가리킨다. 이름하여 천자(天子).
그가 훈련시킨 1만 병력은 이제 절대 복종과 충성을 생명으로 하는 최정예부대로 거듭태어났다. 1만 개의 화살이 투멘선우를 죽였으니 모두가 공범이고 한배를 탄 셈이다. 그의 말 한마디, 손짓 한번이면 1만 명이 언제라도 불속이라도 뛰어든다.
아직 그의 나라는 약소국이다. 서쪽엔 그가 도망쳐왔던 월지국이란 강대국이 있다. 동쪽은 더 문제다. 동호(東胡)라고만 알려져 있는 그 나라의 왕이 사신을 보냈다. 아버지가 아끼던 천리마를 요구한다. 아무리 그래도 천리마는 나라의 보배다. 모두가 반대했다. 하지만 줘 버렸다.
다음에 온 사신은 아내를 달라고 했다. 이번에도 내주었다. 세 번째는 두나라 사이에 있는 천 여리에 이르는 땅을 내놓으란다. 신하들 중에서도 그냥 주자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던 땅이다. 묵특은 땅을 주자는 신하들의 목을 그 자리에서 베어버렸다.
전쟁이다. 그는 동호로 내달렸다. 그간 천리마며 아내까지 군소리없이 주길래 자기를 무서워한다고 생각한 동호의 왕이 제대로 대비를 했을 리가 없다. 묵특은 동호를 정복했다. 내친김에 쉬지 않고 서쪽으로 말을 달려 월지국도 차지해 버렸다. 수십년전에 진시황에게 빼앗겼던 땅도 되찾았다.
이제 묵특은 최강대국의 지배자가 되었다. 그는 그 힘으로 중국의 한(漢)나라를 공격했다. 유라시아 역사에서 절대 잊혀질 수 없는 이름, 훈나(Hun-na). 그 흉노(匈奴)가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중국은 긴 혼란기를 끝내고 한나라가 막 통일한 상태였다. 하지만 아직 초창기. 기틀이 제대로 잡혔을리 없다. 지방 곳곳에 강대한 세력가들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한나라 황제 '유방'의 동지들이었지만,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언제 칼을 빼들지 모른다.
하나씩 하나씩 토사구팽이 진행되었고, 심심찮게 반란도 일어났다. 그 중에는 묵특에게 투항하는 경우도 있었다. 유방도 능력있는 사람이라고는 결코 볼 수 없었다. 나라를 다스릴 만한 식견이 없다고 보는 것이 객관적일 것이다. 기원전 201년 드디어 묵특은 중국을 공격했다. 유방은 직접 32만의 군대를 이끌고 반격에 나섰다. 그리고 전투마다 승리를 거뒀다. 자신감이 생긴 유방은 계속해서 전진을 거듭했다.
평성(平城)이라는 군사 요충지가 있다. 지금의 대동(大同)으로, 북경 서쪽에 있는 공업중심지이다. 평성을 빼앗기면 황하의 북쪽 땅이 모조리 위험해진다. 평성까지 진격한 유방은 근처 백등산(白登山)에서 묵특에게 포위당했다.
그간에 유방이 전투에 이긴 것은 모두가 묵특의 계략이었다. 거기에 속아 유방은 너무 서둘렀던 것이다. 주력부대가 도착하려면 며칠을 더 기다려야 할 지 모른다. 유방은 백등산에서 이레를 포위당한 채 꼼짝못하고 있었다. 유방은 묵특의 상대가 아님이 분명해졌다. 묵특의 군대는 40만이었다고 전한다. 물론 모두가 기병이다.
묵특은 모든 군대를 말색깔에 따라 다섯으로 나누었다. 동쪽은 얼룩말(검은 털과 흰 털이 섞인 말), 서쪽은 흰 말, 남쪽은 절따말(붉은 말), 북쪽은 가라말(검은 말)이다. 그와 함께 화살을 날렸던 1만의 용사들이 지금은 40만으로 늘어나 있다.
유방은 천신만고 끝에 위기에서 벗어나 장안성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기록에는 유방이 알씨(閼氏; 선우의 아내, 곧 황후를 가리키는 말)에게 뇌물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뭔가 미심쩍다. 전투도 없이 다잡은 적장을 풀어준다는 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일이다. 그것도 전투한번 하지 않고.
40만의 대군에게 포위당한 상태에서 뇌물을 갖고 알씨를 만난다는 건 가능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묵특 몰래 그 일이 가능할까? 소리화살 하나에 묵특이 아끼는 여자까지 주저없이 죽이는 군사들을 뚫고? 백등산 전투 후에도 묵특은 여러번 한나라를 공격했고, 결국 한나라는 묵특과 화친을 약속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화친이 목적이라면 백등산에서 모종의 약속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지 않을까? 한가지 더, 백등산 전투는 결코 전면전이 아니었다. 일종의 맛뵈기일 뿐. 전면전은 그 후로 70여년 후에 벌어진다.
흉노와 한 사이에 맺은 조약은 어떤 내용이었을까? 한나라에서 종실(宗室)의 공주를 선우에게 시집보내고, 해마다 흉노에게 솜, 비단, 술, 쌀과 여타의 물자를 제공하며, 흉노와 한은 형제가 된다는 것이다. 나중에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분명한 건 흉노가 한나라를 압도했고, 한나라에서 해마다 흉노에 조공을 바쳤다는 것이다. 한의 공주를 흉노에 시집 보내는 문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고대인의 눈으로 보면 여자는 일종의 전리품일 뿐이다. 그 여자가 공주라면, 체면때문에라도 막대한 혼수품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 많은 조공품을 모두 어디에 사용했을까? 흉노가 야만인이나 오랑캐라는 편견을 지녔다면 대답은 뻔하다. 한나라에서도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공주가 흉노로 시집을 가서 그 피를 이어받은 아들이 다음 선우가 되고, 한나라의 좋은 물건들을 쓰게 되면 저 북쪽의 야만족들이 중화의 높은 문화를 동경하게 될 거고, 그러다보면 오랑캐의 힘도 미약해져서 결국 무릎을 꿇게 될 거라고. 그러나 그런 일은 미몽에 지나지 않았다.
비단을 예로 들어보자. 흉노가 한창 잘나갈 때도 비단은 생활필수품과 한참 거리가 멀었다. 당시 흉노로 망명했던 중국인의 증언에 따르면 흉노의 선우조차 비단옷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에 20-30%정도에 불과했다.
사람들은 장건이란 사람이 서역에서 수십년간 고생 끝에 고향에 돌아와 한무제에게 서역의 상황을 보고했고, 그 때부터 동서교류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중국인 최초로 장건이 서역을 여행하기 전에 이미, 흉노는 아무런 제약도 없이 중앙아시아 나라들과 왕래를 하고 있었다.
흉노가 동서교역에 깊숙이 개입되어 있던 것이다. 한나라에서 받은 조공품이 큰 교역품 구실을 했다. 한나라의 조공품이 흉노를 통해 서역으로 수출되는 구조였다. 훗날 한무제가 서역을 공격하여 그 연결로를 차단하자 흉노가 큰 타격을 받았다는 것이 그것을 반증한다. 묵특은 인질로 가 있으면서 월지국에서 무었을 보았을까? 혹시 동서교역과 문화교류의 현장을 본 것은 아니었을까?
20세기 중반 어느 날, 몽골 수도 울란바아타르의 북쪽 노욘올이란 곳에서 흉노의 '떼무덤'이 발견되었다. 흉노 귀족의 묘에서 수많은 중국 비단과 서역 물품이 부장품으로 출토되었다. 이 가운데는 흉노인의 초상화도 있었는데, 흉노하면 사람의 탈을 쓴 짐승같은 놈들(人面獸心)이라고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그 그림을 권해주고 싶다. 악몽 같은 번역이 유일한 흠인 스기야마 마사아키의 {유목민이 본 세계사}에 삽화로 나와있는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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