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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몽골 이야기

칸(Khan)

by betulo 2007.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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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간(可汗)이 (뮬란에게) 바라는 바가 뭐냐고 묻는데, 뮬란이 대답하길, '상서랑(尙書郞)의 벼슬도 싫소. 원컨대 명타천리족(明駝千里足)을 빌려주어 나를 고향으로 보내주오.'"


이 시는 북위(北魏)에서 유행하던 "뮬란시(木蘭詩)"이다. 뮬란이라는 한 소녀가 아버지를 대신해 남자처럼 꾸미고 전쟁에 나가 용감히 싸웠던 무용담을 담은 것이다. 몇 해 전에 디즈니에서 만든 악몽 같은 영화, "뮬란"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이 시에서는 북위황제를 카간이라 불렀다. 왜 그럴까? 중국인들은 황제란 칭호를 쓰고, 칸이나 카간이란 칭호는 북방오랑캐나 쓰는 표현이 아니었나? 북위를 세운 건 타브가치(Tabgachi)라는 북방민족이었다.


흔히 지배민족인 타브가치가 한족의 '높은 문화수준'에 흡수되어 버렸다고 생각하는 북위에서조차 카간이라는 호칭은 살아있었다. 북위를 세웠던 타브가치는 보통 탁발선비(拓拔鮮卑)로 알려져 있다. 지금의 내몽골 흥안령산맥 북쪽의 알선동이란 동굴에서 기원했다고 전해지는 민족이다.


칸이라는 칭호가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대단히 오래된 일이다. 부여나 고구려의 가(加), 백제의 하(瑕), 가야의 한기(旱岐), 거란의 가(呵)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칸은 선비족(鮮卑族)이나 맥족(貊族)계통의 민족들에서 지도자나 수장(首長)을 뜻하는 칭호였다. <자치통감>의 주석에는 "카간은 북방의 존칭이다. 한나라 때의 선우와 같다. 송백(宋白)은 '북방민족의 풍속은 하늘을 칸(汗)이라 부른다'고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북방의 유목제국에서 최고통치자를 부르는 최초의 칭호는 흉노의 선우(單于)였다. <사기>에 보면 선우란 '넓고 크다(單于者, 廣大之貌)'는 뜻이다. 흉노의 최고통치자는 스스로 "하늘의 아들 선우"라고 불렀다. 한때 흉노가 한(漢)나라에게 조공을 받으면서 선우란 칭호는 중국의 "황제" 이상의 위상을 가졌다. 하지만 흉노가 분열되고, 일부는 후한(後漢)에 명목상으로나마 예속되면서 선우의 위상은 격하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선비족과 맥족 계통의 민족들이 북방을 제패하면서 칸계통의 칭호가 광범위하게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당태종 이세민도 "황제천가한(皇帝天可汗)"이라 하여 중국인에게는 황제였고, 북방민족에게는 카간이었다. 몽골인들은 금나라 황제를 알탄칸(Altan Khan)이라 불렀고(몽골어로 알탄은 금이란 뜻), 청나라 황제도 몽골을 비롯한 북방민족에게는 카간이었다.


그럼 카간(Khagan)과 칸(Khan)은 어떻게 다를까? 종래 많은 학자들이 중국의 역사책에 기록된 돌궐의 경우를 들어, "칸은 소부족장, 카간은 대부족장"이라고 단정지어 왔지만 근거 없는 말이다. 내몽골 출신의 역사학자들인 하칸촐로(Hakanchulu)나 작치드-세첸(Jagchid-Sechen)에 따르면 칸은 카간의 준말일 뿐이었다. 하지만 칭기스칸의 셋째 아들인 어거데이카간이 공식적으로 둘을 구분했다. 그때부터 청나라까지 카간과 칸은 대소의 구별을 갖게 되었다. 카간은 황제, 칸은 제왕(諸王)정도로 생각하면 무리가 없다.


하지만 실제 말을 할 때는 문제가 생긴다. 카간은 13세기 후반기부터 Khagan〉Kha-an〉Khaan으로 발음이 바뀌고 지금에 와서는 '하안'으로 바뀌었다. 마찬가지로 칸은 현대몽골어에서 '한'으로 발음한다. 장모음과 단모음 차이밖에 없기 때문에 발음으로 구별하기가 애매해졌다.


그렇더라도 카간과 칸을 구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몽골시대 문서에서도 카간과 칸은 명확하게 구분되었으며, 대원(大元)의 '황제'를 제외하고 어느 누구도 카간이란 칭호를 쓰지 못했다. 사실 칸이라는 칭호를 쓴 사람은 많았다.


동유럽원정으로 유명한 바토칸, 코빌라이카간에 대항했다는 카이도칸, 훌레구 올로스(올로스는 나라라는 뜻의 몽골어)의 훌레구칸, 유럽에도 잘 알려진 카잔칸이나 울제이투칸... 카간과 칸을 구별하지 않으면, 마치 이들이 동격인 것처럼 오해할 소지가 생긴다.


칭기스칸이 살아있을 당시에는 칸이나 카간을 구별하지 않고 썼다. 물론 <몽골비사> 202절의 "칭기스카간에게 칸이라는 칭호를 그곳에서 주었다"는 기록과 같이, 칸이 더 일반적인 표현이었다. 칭기스카간이란 표현은 후대에 나왔다. 그래서 <몽골비사>의 첫 구절은 "칭기스카간의 근원은 위 하늘에서 이미 정해진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던 버르테-치노이다."로 시작한다.


<참고문헌>

박원길, <몽골비사역주>1, 두솔, 1997, 35-38쪽.

--- , <북방민족의 샤마니즘과 제사습속>, 국립민속박물관, 1998, 15-18쪽.

박한제, <중국중세호한체제연구>, 일조각, 1988, 70-176쪽

스기야마 마사아키, 임대희 외 옮김, <몽골세계제국>, 신서원, 1999.

2001년 8월22일 세상에 나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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