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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몽골 이야기

칭기스칸은 주당이었다?

by betulo 2007.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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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인의 풍속에서는 주인이 술잔을 들어 손님에게 권했는데 손님이 아주 조금이라도 술을 남기면 주인은 그를 다시는 대접하지 않는다. 반드시 손님이 완샷을 해야 좋아한다. … 그들이 술을 먹는 풍속은 나란히 앉아 서로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한 손으로 잔을 들면 나에게 술 한 잔 하라는 뜻이다. 내가 술을 한입에 비워야 그 사람도 마실 수 있다. 혹은 두 손으로 잔을 들어 나에게 주는데 그러면 내가 마신 다음에 그에게 똑같이 술을 따라 줘서 술을 돌려 먹는다.


이렇게 하게 되면 쉽게 취하게 된다. 그러면 취해서 울고, 싸우고, 실례하고, 토하고, 드러눕는다. 그렇게 해야 주인이 크게 기뻐하면서 ‘손님들이 모두 취한 것은 나와 한마음이 되었다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칭기스칸 당시 몽골에 파견되었던 남송(南宋)의 사신 조공(趙珙)이 쓴 <몽달비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위에서 묘사한 내용이 우리에게 썩 낯설지 않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실 연회의 술자리는 우리네의 일반적인 '뒤풀이' 모습을 생각나게 할 정도로 비슷한 면이 많다.


로마 교황이 몽골에 파견한 사신이었던 루브룩(William of Rubruck)은 심지어 '멍케카간' 앞에서조차 술에 취해 혀가 꼬부라져 버린 통역관때문에 고생을 하도 해서 다음에 몽골에 갈 사신에게는 훌륭한 통역이 그것도 여러 명 필요할 거라는 푸념을 할 정도였다.


연회를 뜻하는 단어 '토이'는 투르크어와 몽골어에 모두 있는 말이다. 몽골에서는 어떠한 모임이든지 그 전후에는 반드시 모두가 즐기는 자리를 마련했다. 사람마다 따로 한 상을 차려주고, 술통도 각자의 옆에 둔다. 연회는 몽골제국의 정치운영에도 대단히 중요한 구실을 했다.


연회는 사흘이나 닷새, 혹은 이레동안 열렸다. 코릴타 전에 열리는 연회에서는 각종 사전교섭과 협상이 벌어졌다. 또 코릴타 폐막 연회는 안건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생긴 잡음을 없애고, 국론을 재통일하는 역할을 했다.


몽골인의 애주(愛酒)는 말 젖을 발효시켜 만든 도수 5도 정도의 '말젖술'이다. 막걸리와 비슷하지만 더 시큼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인이 말젖술을 처음 먹으면 바로 설사를 한다고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건강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라면 말젖술을 접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말젖술은 몽골인의 여름 주식이기도 하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즐길 수 있는 한 여름의 고급영양식인 셈이다.


이밖에도 몽골에는 '아리히'라고 하는 40도 가량의 독주가 있다. 아리히는 칭기스칸 시절 위구르를 통해 몽골에 전래된 아라비아산 술이다. 아리히는 몽골을 거쳐 고려로 건너와 지금의 '안동소주'가 되었다.


현재 몽골의 국민주(國民酒)는 '보드카'이다. 사회주의 시절 소련의 영향 때문이다. 몽골인에게 술은 애음(愛飮)의 대상이자 모든 '희노애락'(喜怒哀樂)의 나눔이기도 하다. 슬픔, 기쁨, 행복, 헤어짐의 순간에 이들의 술자리는 '터'가 따로 없다. 노상이던, 대합실이던, 터미널이던, 초원이든….


몽골제국의 건설자, 칭기스칸 역시 이런 술 문화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었다. '코릴타(Khurilta)'의 전후연회에서, 승패에 관계없이 전쟁 이후에, 주변의 대소사에 그는 당연히 희노애락을 함께 나누고 "영원한 하늘"의 가호를 기원하며 주저없이 술잔을 돌리며 '완샷'을 했을 것이다.


<참고문헌>

Christopher Dawson (ed.), The Mongol Mission, (London & N.Y.: Sheed and Ward, 1955).

박원길, 몽골의 문화와 자연지리, (두솔, 1996).

오래 묵혀두었던 글을 다시 꺼냈습니다. '히스토피아'라는 곳에 연재했던 글들인데 벌써 6년 전이군요. 당시 한참 몽골사 공부에 미쳐있던 때라 몽골사에서 가려낸 10가지 글을 써 봤습니다. 잠시 머리나 식히며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글이라 올려놓습니다. 몽골에서 찍은 사진도 찾아서 같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칭기스칸은 주당이었다?>는 2001년 8월18일 세상에 나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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