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운동 전문가 토마스 케른 박사
이스라엘이 벌이는 팔레스타인학살엔 즉답 피해
2007/1/9
‘지구와 지역 연구소(GIGA)’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는 토마스 케른 박사는 지난해 12월 한국에 입국했으며 3개월간 한국시민사회를 연구할 예정이다. 케른 박사는 한국의 민주화과정에 대해서 ‘한국의 민주화 경로’(Suedkoreas Pfad zur Demokratie, 2005)라는 책을 집필했고, 사회운동 입문서인 ‘근대화와 저항운동’(Modernisierung und Protest, 2006)을 낸 사회운동 전문가이다.
지난해 12월 29일 그가 머물고 있는 오피스텔에서 독일 시민사회를 주제로 인터뷰했다. 그는 간단한 질문 하나도 기본개념부터 시작해 길고 자세하게 대답하는 성의를 보여주었다. 덕분에 애초 한 시간을 예상했던 인터뷰는 두 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끝이 났다. /편집자주
독일GIGA 토마스 케른 박사
독일은 철저한 과거사청산과 끊임없는 성찰로 한국에 깊은 인상을 심어줬다. 그럼에도 토마스 케른 박사(독일 GIGA 선임연구원)는 “여전히 과거사 문제는 독일에서 중요한 주제이며 지금도 계속 토론중인 주제”라고 강조한다.
“현재 독일에서 주된 논의는 과거사성찰을 다음 세대에게 전승해 주는 것입니다. 내 경험상 독일 TV에서 하루라도 히틀러나 나치 얘기가 안나오는 적이 없습니다. 나이든 세대는 지금도 계속 그걸 시청하지요. 하지만 자라나는 세대는 그걸 직접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알려야 합니다.”
독일에선 지금도 과거 나치가 저지른 제노사이드와 관련한 기념관과 기념물을 계속 세운다. 케른 박사는 최근 기념물로 지난 2005년 베를린 중심부 1만9천 평방미터 면적에 들어선 ‘학살된 유대인을 위한 중앙기념공원’(약칭은 ‘홀로코스트를 경계하는 기념관’)을 소개한다.
개관 첫 해에만 350만명이나 기념공원을 방문했을 정도로 독일에서 과거사청산은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케른 박사는 인터뷰 중간에 3,500,000이라는 숫자를 직접 종이에 적어주며 독일 시민사회가 그 문제에 얼마나 큰 관심을 갖는가를 강조했다.
독일 시민사회가 과거 나치가 저지른 민간인학살에 얼마나 주목하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이 1980년대 역사가논쟁이다. “놀테라는 역사가가 국가사회주의(나치) 정권이 저지른 유대인학살은 다른 나라에서도 있었던 보편적인 테러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자 하버마스를 비롯한 지식인이 들고 일어났지요. 그런 식으로 비교할 경우 나타나는 상대화 초래를 우려했던 겁니다. 결국 논쟁에서 승리는 하버마스였구요.”
철저한 과거사청산작업은 독일 시민사회가 얼마나 건강하게 작동하는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하지만 최근 한국 시민사회에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상대로 벌이는 홀로코스트”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2004년 번역된 ‘홀로코스트산업’은 홀로코스트 뒤에 감춰진 그림자를 주목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독일 시민사회는 이런 주제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홀로코스트산업이라…어려운 주제입니다. 물론 독일 정치가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책임을 중시합니다. 내가 알기론 독일은 매우 중요한 이스라엘 연대 국가지요. 독일에게 중요한 건 이스라엘이 아랍에서 위협을 받고 있는 한, 가령 이란이 이스라엘 없앤다고 말하고 핵을 갖고 있고… 그런 상황에선 독일은 계속 이스라엘 편으로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물론 독일에서도 이스라엘이 자행하는 학살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까지는 못가고 있는게 현실이지요.”
케른 박사는 “독일이 구현하는 중동정책은 이스라엘과 아랍이 공존하는 상황이며 독일은 유럽연합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많은 돈을 원조하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것이 한계가 있는 것은 하마스처럼 이스라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조직과 독일이 함께 일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은 ‘우리가 피해자’라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가해자’다. 그런 문제까지 넘어서지 못하는 한 과거사청산은 현재진행형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이 질문에 대해 케른 박사는 한참을 고민한 뒤 “과거사는 ‘청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고 밝혔다. 우문현답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끝내 홀로코스트산업에 대해서는 즉답을 피했다.
독일 평화운동의 딜레마
미군도 문제지만 독일재무장에 더 주목
독일은 1·2차 세계대전에서 끔찍한 경험을 했던 나라다. 독일은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큰 미군이 주둔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케른 박사는 “독일의 평화운동은 미군주둔에 대해 큰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독일군대에 대한 경계심이 컸다”고 말한다. 한국 맥락과는 대단히 다른 이런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독일인들에게 평화와 관련한 가장 중요한 쟁점이 독일 재무장이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관점에서 말한다면 미군은 물론 2차대전 이후 점령군으로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미군뿐 아니라 영국군, 프랑스군, 소련군도 있었지요. 미군은 나중에 성격이 점령군에서 보호자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그 계기는 역시 분단이었구요. 만약 3차대전이 일어나면 독일은 필연적으로 전쟁터가 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 때문에 미군이 주둔함으로써 보호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화운동이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반향이 적었던 겁니다.”
50-60년대 평화운동의 과제는 독일 재무장을 둘러싼 것이었다. 얼마나 재무장할 것인가, 어떤 군대여야 하는가. 독일이 핵무기를 가져야 하는가. 최근에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지난 몇 년간 이라크 등에서 미군인식이 아주 안 좋아졌다.
이라크 전쟁하면서 미군항공기가 독일 상공을 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는 것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 미군이 레바논 출신의 독일내 테러혐의자를 불법적으로 납치했던 문제가 지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슈투트가르트 미군기지에서 그런 일을 자행했다는 것에 대한 반대운동도 얼어났다.
케른 박사는 “독일 평화운동도 물론 미국의 대외정책이나 전쟁정책을 비판한다. 하지만 미군기지 주둔에 대한 비판은 적다”며 “한국에선 미군주둔이 통일 걸림돌로 여겨진다. 하지만 독일은 동독에 소련군이 있었으니까 맥락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2007년 1월 9일 오전 11시 47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82호 8면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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