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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

김부겸 인사청문회 앞두고 살펴보는 대한민국 총리 42명 ‘영욕의 역사’

by 자작나무숲 2021. 5. 3.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여야 대립이 계속되고 있다. 인사청문회를 통과한다면 제47대 국무총리로서 문재인 정부와 임기를 함께 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사실 헌법만 놓고 보면 “국무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하며, 행정에 관하여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한다”고 돼 있기 때문에 총리의 권한은 결코 작지 않다. ‘의전용 총리’라는 말이 심심치 않았고 ‘책임총리’라는 말 자체가 대통령에게 도전하는 의미로 느껴지는게 현실이다. ‘일인지상 만인지하’라고는 하지만 어떤 면에선 조선시대 영의정보다도 더 실권이 없는게 국무총리다. 그런 속에서도 그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국무총리 78년의 영욕을 되짚어본다.


 대한민국 국무총리는 매우 독특한 자리다. 보통 대통령제 국가에선 국무총리가 없다. 그렇다고 의원내각제 국가처럼 국정 최고책임자도 아니다. 이유는 1948년 제헌헌법 제정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헌헌법 초안만 해도 의원내각제를 구상했기 때문에 대통령은 상징적인 국가원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권력을 원했던 이승만 전 대통령이 막판에 몽니를 부리면서 초안에 대통령중심제 요소를 덧붙이는 식으로 절충이 됐다. 이 때문에 초대 대통령과 총리 모두 국회에서 선출했다. 


 파행으로 인한 최대 피해자는 목사 출신인 이윤영 국무총리 후보자가 뒤집어써야 했다. 제헌의회 다수당이던 한국민주당은 김성수 당대표가 총리가 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는데 이 전 대통령이 이를 거부했고, 이 후보자는 결국 총리 인준투표에서 부결되는 바람에 초대 총리 자리는 이범석 전 광복군 참모장 차지가 됐다. 이 전 후보자는 그 뒤로도 1950년 4월, 1952년 4월과 10월에 총리 후보가 됐지만 모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총리 낙마 4회라는 전무후무한 기록만 세우게 됐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가장 권한이 막강했던 총리는 단연 장면 전 총리다. 제2공화국이 의원내각제 개헌을 한 덕분에 총리가 국가원수로서 위상을 갖게 됐기 때문이다. 그 외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사실상 연립정부를 이끌었던 김종필 전 총리, 노무현 정부 당시 ‘책임총리’를 표방했던 이해찬 전 총리 정도가 꼽힌다. 결국 총리의 권한이란 대통령이 힘을 실어주는 정도에 비례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김 후보자 이전까지 총리를 역임한 인물은 모두 42명이다. 4명(장면, 백두진, 김종필, 고건)은 총리를 두 번 맡았다. 정일권 전 총리는 1964년부터 1970년까지 6년이나 재직하며 역대 최장수 총리 기록을 세웠다. 두번째는 김종필(1971~75년, 1998~2000년) 전 총리로 두차례에 걸쳐 약 6년을 채웠다. 이낙연 전 총리는 2017년 5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약 2년 8개월로 민주화 이후로는 최장수 총리로 일했다. 각 정부별 총리 현황을 보면 전두환·노태우 정부 5명, 김영삼 정부 6명이던 것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4명, 이명박·박근혜 정부 3명으로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다.  


 역대 총리 중에는 떠올리기 싫은 기록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초대 이범석 총리는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군인이었지만 동시에 히틀러를 존경하고 나치즘을 추구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정일권·김정렬·장면 세 총리는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된 친일파 4776명에 이름을 올렸다. 정일권 전 총리는 만주군에서 장교로 복무했고, 김정렬 전 총리는 조종수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다. 장면 전 총리는 종교계 총동원을 논의하는 시국간담회에 천주교 대표로 참석한 이력이 있다. 


 역시 최고령 총리는 현승종·박태준 전 총리로 각각 74세에 취임했다. 김정렬·한승수 전 총리는 73세였다. 반면 백두진·김종필 전 총리는 각각 46세로 최연소 총리였다. 정일권 전 총리가 47세로 그 뒤를 잇는다. 지역별로는 서울이 8명으로 가장 많다. 충남·전북·경남이 각각 5명이다. 이북 출신이 12명이나 되는것도 눈에 띈다. 특히 노태우 정부는 총리 5명 중 3명이 이북 출신이었다. 


 정일권 전 총리는 유일한 재외동포 출신 총리다. 그는 러시아 우수리스크에서 태어나 만주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는 1966년 깡패 출신 김두한 전 의원이 일으킨 오물투척사건의 피해자로 역대 총리 중 최악의 봉변을 당한 인물이 됐다. 청주 한(韓)씨는 37대 한명숙 전 총리부터 39대 한승수 전 총리까지 세 번 연속 총리를 배출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역대 총리 가운데 여성은 한명숙 전 총리가 유일하다. 역대 가장 단명한 총리는 이완구 전 총리로 2개월만에 물러났다. 

2021-04-30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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