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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경제雜說

한미FTA 재협상은 정말 합의사항일까

by betulo 2017.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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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공식화한 가운데 실제 진행 여부를 놓고 혼선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핵심은 재협상이 양국이 인정해야 하는 ‘합의 사안’이냐 어느 한쪽에서 요구하면 이뤄지는 ‘제안 사안’이냐 하는 점입니다.


 당초 청와대는 1일(한국시간)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가 재협상을 요구했지만 양국이 재협상에 합의하지는 않았으며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한 ‘고위급 협의체’를 구성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고 했습니다. 청와대 정책실장 장하성은 지난 1일 브리핑을 통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FTA 재협상에 대해 합의한 바가 없다”고 선을 긋기도 했습니다. 대통령 문재인 역시 1일 워싱턴 한국 특파원단 간담회에서 "(한미FTA 재협상은) 합의 외의 이야기"라고 일축했습니다


정말일까요? 한·미 FTA 협정문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게 명백합니다. 협정문 2.3조는 개방 가속화를 위한 요청이 있으면 협의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협정문 16.7조에는 ‘각 당사국은 다른 쪽 당사국의 요청이 있는 경우 제시한 사항에 관해 협의를 개시해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습니다. 또 22.2조는 한·미 FTA 개정을 위한 검토는 한·미 공동위원회의 권한이라고 규정합니다(여기). 


간단하게 얘기해서 미국이 계속 요구하면 한국 정부 의사와 상관 없이 언제든 재협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반대로 한국이 계속 요구하면 미국 정부의 뜻과 관계없이 언제든 재협상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심지어 "어느 일방 당사자가 FTA 종료를 원할 경우 상대국에  통보하면 180일 이후 종료한다"는 규정도 있습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국제통상위원장인 변호사 송기호는 2일 위와 같은 사실을 지적하면서 “어떤 내용으로 개정하는가는 합의 대상”이라면서 “개정 협상을 개시하는 것은 한국의 동의가 필요 없으며 오히려 협의 요청에 응하는 것이 의무사항”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또 “장 실장이 한·미 FTA 재협상에 합의하지 않았다고 강조하는 것은 협정문과도 맞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논란이 확산되자 “재협상이 합의 사항이 아닌 것은 맞지만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습니다. 산업부 관계자는 “상대국과 합의 없이도 (재협상은) 통보만으로 가능하다”면서 “다만 재협상을 통보하기 전에 상대국과 사전 협의를 한다”고 설명합니다. 미국은 의회 보고 후 90일 동안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하며 우리나라도 통상절차법에 따라 국회에 보고해야 합니다.


 왜 이런 비생산적인 논란이 벌어진 것일까요. 변호사 송기호는 "지금의 혼선은 그 뿌리가 자신들이 2011년 최종 완성한 한미FTA를 지고지선의 금과옥조처럼 국민에게 선전한 통상 관료들의 기득권에 있다"고 꼬집습니다. 


그는 전화 인터뷰에서 “정부가 한미FTA 협정문은 한 글자라도 고치면 안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태도 자체가 대미 협상력을 떨어뜨린다”고 비판하면서 “협정문을 언제라도 개정할 수 있는 ‘상수’로 봐야 한다. 정부가 과민반응을 보이면 안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민주주의와 임금주도성장 그리고 원청-하청 적폐 청산을 국제법적으로 보장하는 문재인표 FTA 모델을 정립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사실 미국 정부에서 한미FTA 재협상 가능성을 흘린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일부 지적처럼 그것이 국내정치용이라고 할지라도 어쨌든 한미 FTA 재협상 언급이 나온 것 자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이미 트럼프는 대선 기간에 한미FTA를 거론했습니다. 대선 승리 뒤에도 이런 분위기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가령 4월 18일 미국 부통령 펜스는 주한 상공회의소(AMCHAM) 연설에서 한미 FTA의 개정(review, reform)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습니다. 4월 25일 미국 상무장관 로스는 WSJ에서 NAFTA와 마찬가지로 한미 FTA 협상을 재검토reopen)하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틀 뒤에는 트럼프가 로이터 인터뷰를 통해 한미 FTA를 받아들일 수 없는(unacceptable), 끔찍한(horrible) 협상으로 규정하고 재협상(renegotiate) 또는 종료(termination) 옵션을 제시하는 정도까지 나아갔습니다. 


출처: 산업연구원 (http://www.kiet.re.kr/kiet_web/?sub_num=9&state=view&idx=53387&ord=0)


송기호도 말했듯이 한미FTA 재협상 한다고 겁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재협상하자고 하면 하면 됩니다. 미국에서 한마디 했다고 온 나라가 벌벌 떨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정확한 정보를 국민에게 제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미FTA 과정에서 정부가 온갖 거짓말과 왜곡으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는 걸 지겹도록 봤습니다. 그런 상황을 다시 보고 싶지 않습니다. 


출처=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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