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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사해/순회특파원(2011)

실체와 호들갑이 공존하는 ‘프랑스 한류 열기’

by betulo 2011.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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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가 K팝에 흠뻑 취했다?


 10일(현지시간) 밤 소녀시대와 슈퍼주니어 같은 한국 아이돌 그룹이 공연을 펼친 프랑스 파리 르제니트 주변은 온통 K팝, 한국 대중음악에 취한 젊은이들로 넘쳐났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나온 프랑스 젊은이들은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K팝 스타 얼굴을 새긴 브로마이드 사진과 한글 이름 등을 피켓으로 만들어 흔들며 이름을 연호하고, K팝을 따라 불렀다.


공연시작 5시간 전부터 입장을 기다리는 유럽팬들.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한국 아이돌그룹 콘서트를 보기 위해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젊은이들이 공연장 밖으로 몇백 미터나 되는 줄을 만들었다. 공연 시작 전에는 파도 타기 물결이 공연장을 몇 바퀴씩 돌았다. 관객들은 ‘SM타운’ ‘소녀시대’ 등을 연호했다. 


한국 대중음악이 ‘세계 문화의 수도’를 자임하는 프랑스 파리의 밤을 달궜다. 10대부터 20대 초반이 주축이 된 젊은이들이 한국 가요를 따라 부르는 모습에 취재를 나온 프랑스 기자들조차 혀를 내둘렀다. “유럽에서 한류가 시작되는 게 몸으로 느껴진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런 열기는 파리에서 오래 지낸 한국인들도 대부분 예상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한국 아이돌 그룹 공연을 취재하는 기자에게 이들은 “K팝이 실체가 있기는 한 거냐.”고 되묻기도 했다. 지난 4월과 5월 두 차례로 나눠 이뤄진 인터넷 예매가 일시적 과부하로 서버가 다운되는 소동 끝에 시작 15분 만에 매진됐다는 얘기를 들으면서도 반신반의하기도 있었다. 심지어 유럽 다른 나라에서 만난 한 한국 공무원은 “언론에서 자꾸 펌프질하는 것 아닐까요? 파리에 가거든 그 실체를 파헤쳐 주세요.”라는 제보(?)를 하기도 했다.


 주재원으로 파리에서 일하고 있는 A씨는 콧대 높기가 하늘을 찌르는 프랑스 파리에서 한국 아이돌 그룹이 뜨거운 인기를 얻고 있다는 얘기가 도통 믿기질 않는다고 했다. 파리에 있는 한 기업 관계자도 “한국인 직원들끼리 모여서 과연 실체가 있는 것인가를 두고 토론을 하곤 했다. 직접 확인해 보기 전에는 미심쩍은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지난 1일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수백명이 한국 아이돌 그룹의 공연을 연장해 달라며 시위를 벌인 데 대해서도 그는 “원래 시위가 많은 곳이다. 수십명이 했는지 수백명이 했는지 누가 알겠느냐.”고 했다.


 코트라 파리지사에서 11년째 근무하는 프랑스인 프레데리크 클라보는 “젊은 층 일부가 한국 음악을 좋아하는 건 분명하다. 르몽드 같은 언론에서 다룰 정도면 실체는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의 K팝은 아직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만큼 프랑스 전반으로 확산됐다고 보기 힘들다.”면서도 “그러나 한국 영화는 내가 이미 김기덕 감독을 알고 있을 정도로 대중화돼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 순위는 영화와 드라마, 음식 순이고 맨 뒤에 한국 음악이 있다는 말이다. 그 역시 프랑스에서 한류 운운하는데 긴가민가하는 경우에 속했다.

프랑스를 한류가 점령?


 처음엔 나도 그런줄 알았다. 하지만 한국 음악 마니아를 자처하는 마티아스 함사미를 만나면서 생각이 좀 달라졌다. 그는 한국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대학에서 전공도 한국어과로 선택한 경우다. 그는 “20대 이하 젊은 층에서는 한국 음악이 굉장히 인기 있다.”며 한국 음악과 미국·일본 음악을 세세하게 비교해 주기도 했다.


 아마추어 음악인이기도 한 그와 얘길 나누면서 내내 머리를 맴돈 생각은 “프랑스에서 한류가 실체가 있다.”기 보다는 오히려 ‘한국문화를 수용하는 프랑스인들의 수용능력’이었다. 이들은 한국 문화를 접하고 친구들과 공유하며 즐기고 있었다. 이를 통해 자신들의 문화적 토대의 외연을 확장하고 있었다. 스페인 출신인 피카소가 파리에서 예술활동을 하며 프랑스의 예술역량을 드높였듯이, 정명훈이 파리에서 프랑스 음악계에 이바지하듯이 말이다. 


 “K팝 전사”라거나 “파리 점령”이라거나 하는 말들은 실체를 더 혼란스럽게 하거나 의구심만 키웠다. 이 때문에 호들갑떤다는 반응이 나와도 할 말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에서 호들갑을 떠는 것에 비해, 프랑스인들은 한국 문화를 다양한 관점에서 소화하고 향유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프랑스에서 '한류'는 프랑스의 문화적 저력을 보여주는 한 징표가 아닐까. 


 내가 머무는 숙소 사장님은 이런 말을 했다. "파리에서 국악공연을 한다고 해서 딸과 함께 갔다. 누가 이런데 올까 싶었는데, 한국 사람은 우리 뿐이고 프랑스 사람들로 자리가 꽉 차 있더라." 


6월11일 둘째날 공연이 끝나가자 눈물을 흘리는 유럽팬.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최준호 프랑스 주재 한국문화원장은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갖고 있는 프랑스인들을 만난 한국인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현상 중 하나로 “그들이 한국 영화나 음악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것을 꼽았다. 비단 한국 음악뿐 아니라 일본 음악 중국 음악도 예외가 아니다. 새로운 것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재해석하고 공유한다.

 최 원장은 “프랑스인들의 문화 향유 양상을 감안한다면 K팝 등 한국 문화가 앞으로 프랑스에서 더 많이 확산될 것으로 본다.”고 확신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이를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프랑스인들을 만나 보면 한국 영화와 드라마, 가요를 다운로드할 수 있는 곳을 알려 달라는 말을 많이 한다.”고 했다. 


한국의 음악을 불법 다운로드받아야 할 정도로 이들이 체계적으로 한국 문화를 누리기에는 관련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는 “K팝 인기가 올라가더라도 주변의 연계된 부분이 같이 성장하지 않으면 과거 홍콩영화가 그랬듯 언제 주저앉을지 모른다. 영화, 음악, 음식 등 한국의 다양한 문화와 콘텐츠를 자연스럽게 하나로 묶어 내는 부분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안하다. 소녀시대. 그 날 나온 아해들 중에 너희가 평균적으로 젤 노래 못하더라.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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