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들은 투표율이 낮다?’ 우리 주변에서 그런 ‘상식’을 가진 사람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개인주의가 강해서’ 혹은 ‘굳이 투표 안해도 잘먹고 잘사니까’ 하는 나름대로 그럴듯한 이유가 뒤따른다. 하지만 각국 투표율을 보여주는 간단한 막대그래프만으로도 ‘상식’은 순식간에 ‘근거없는 선입견’으로 바뀐다.
오히려 ‘투표율이 높아야 선진국’이라는 말이 더 ‘사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높은 투표율은 가만히 앉아서 나오는게 아니다. 선진국들은 지금도 투표율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제도정비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역대 선거별 투표율
구 분 |
투표율 |
구 분 |
투표율 |
구 분 |
투표율 |
|||
대통령선거 |
제13대(‘87) |
89.2% |
국회의원선거 |
제14대(‘92) |
71.9% |
동시지방선거 |
|
|
제14대(‘92) |
81.9% |
제15대(‘96) |
63.9% |
제1회(‘95) |
68.4% |
|||
제15대(‘97) |
80.7% |
제16대(‘00) |
57.2% |
제2회(‘98) |
52.7% |
|||
제16대(‘02) |
70.8% |
제17대(‘04) |
60.6% |
제3회(‘02) |
48.9% |
|||
제17대(‘07) |
63.0% |
제18대(‘08) |
46.1% |
제4회(‘06) |
51.6% |
지난달 영국 총선 투표율은 65.1%였다. 2006년 지방선거 51.6%, 2008년 46.1% 등 낮은 투표율로 당선자의 대표성 자체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른 한국에 비하면 매우 높은 선거율이다. 하지만 영국의 투표율은 ‘선진국’ 치고는 낮은 편이다. 가령 지난해 독일 하원의원선거와 일본 중의원선거 투표율은 각각 70.8%와 69.3%였다.
2008년 이탈리아 하원의원선거 투표율은 80.5%에 달했다. 2007년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율은 84.0%였다. 심지어 투표율 세계최고를 자랑하는 호주는 2007년 하원선거 투표율이 무려 94.7%나 됐다. 2000년부터 2009년까지 10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평균 투표율은 71.4%였다. 지난달 유엔 공인 ‘민주주의·선거 지원 국제기구’(IDEA)가 발표한 수치다.
이 조사에서 한국은 56.9%의 투표율로 최하위권인 26위에 머물렀다. 한국보다 투표율이 낮은 나라는 멕시코(56.1%), 슬로바키아(55.0%), 폴란드(50.5%), 스위스(46.8%) 뿐이다. 투표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호주(94.8%), 벨기에(91.4%), 덴마크(86.1%) 등이다. 미국이나 일본도 68.9%와 62.6%도 한국보다 높았다.
선진국에서 예전에 비해 선거에 대한 관심과 투표율이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IDEA가 계산한 1945년부터 2001년까지 평균 투표율이 호주 94.5%, 벨기에 92.5%, 덴마크 85.9%, 미국 66.5%, 일본 69.5%인 것과 비교하면 별 차이를 찾을 수 없다. ‘선진국이 될수록 투표율이 낮아진다.’는 속설의 근거가 사라져 버리는 셈이다.
이처럼 선진국이 높은 투표율을 유지하는 비결은 국민들의 선거 참여를 높이기 위해 비례대표제 도입 등 끊임없이 제도적 개선책을 모색해 왔다는 점이다. 심지어 투표의무화를 법제화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다양한 대표자 선출방식은 아래 사이트 참조
지난달 영국 총선에서 자유민주당은 득표율 23.0%를 기록했지만 실제 의석비율은 8.8%에 불과했다. 전체 649석 가운데 득표율로만 따진다면 최소한 130석은 얻어야 하지만 비례대표 없이 지역구 최다득표자 1명만 뽑는 소선거구제라는 선거제도 때문에 득표율은 올랐지만 의석수는 오히려 9석이나 줄어드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반면 노동당은 득표율이 29.2%에 불과했지만 의석수는 249석이나 차지했다.
영국 같은 경우를 막기 위해 유럽 각국에선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고 있다. 독일 등에서 시행 중인 비례대표제는 선호하는 후보와 정당에 한 표씩 행사해 의석비율에 맞추도록 하고 있다. 국민의 의사를 최대한 정확히 의석에 반영하려는 취지다.
호주, 벨기에, 브라질 등 30여개 국가에서는 투표가 권리이자 의무라는 취지에서 유권자에게 의무적으로 투표하도록 하고 위반시 제재를 가한다. 벨기에는 1회 선거 불참시 5~10유로, 2회 위반시 10~25유로를 벌금으로 부과한다.
룩셈부르크는 벌금 규모가 99~990유로나 된다. 호주에선 심지어 벌금(20~50호주달러)을 미납하면 법정모독죄로 징역형을 선고한다. 참정권 제한 조치도 있다. 벨기에에서는 유권자가 15년 동안 4회 이상 선거에 불참하면 10년 동안 선거인명부에서 말소하고 공직진출을 제한한다. 브라질은 벌금을 미납할 경우 은행대출과 여권취득에 제한을 가한다.
대표적인 의무투표제 시행 국가인 호주에서도 제도 도입 배경은 낮은 투표율에 있었다. 1919년 하원의원 투표율 71%에서 1922년 투표율이 59.38%로 떨어지자 위기의식을 느낀 호주 정부는 의무투표제를 시행했고 1925년 선거에서는 다시 투표율이 91.4%로 올랐다.
급진적인 주장도 있다. 최근 풀뿌리운동 아카이브 ‘풀내음’에서 눈에 띄는 주장을 봤는데 바로 기권할 권리를 달라는 것이다. 몽똘이라는 분은 “투표율을 높이고 싶다면 시민들이 자기 마음에 드는 후보를 찾을 때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후보자를 거부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면서 “투표용지에 기권란을 하나 만들어서 시민들이 지금 나온 후보들 모두를 반대한다는 의견을 드러낼 수 있도록 보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시민들 다수가 기권란에 기표하면 선거를 다시 치르도록 해야 한다.”는 건데, 개인적으로 적극 찬성한다. (http://blog.grasslog.net/archive/752)
국가해체 앞으로 한걸음 더 다가선 벨기에 (0) | 2010.06.17 |
---|---|
급변하는 시대, 현 정부는 따라잡을 수 있을까 (0) | 2010.06.16 |
극단으로 치닫는 태국, 갈등의 뿌리는 (0) | 2010.05.20 |
경축! 가카께서 세계 19위 부자정치인에 등재 (0) | 2010.05.20 |
인권을 기준으로 본 '부르카 금지' (2) | 2010.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