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카 금지 논란은 여성인권, 표현의자유, 안보위협, 이슬람 탄압 등 다양한 쟁점이 중첩돼 있다. 박경서 이화여대 학술원 석좌교수(초대 인권대사), 송두율 독일 뮌스터대 교수(사회학·철학), 한상희 건국대 교수(헌법학), 이찬수 전 강남대 교수(비교종교학)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을 통해 부르카를 둘러싼 다양한 ‘맥락’을 짚어봤다.
Q: 부르카 금지는 이슬람 탄압인가.
박경서:지금으로서는 이슬람 탄압이라고 단정하기 힘들지만 앞으로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배제하기 힘들다. 일부 정치세력이 공권력을 동원해 부르카 금지를 밀어붙일 경우 이슬람포비아(이슬람 혐오증)가 발생할 수 있다.
송두율:부르카 금지는 기본적으로 문화, 종교와 정치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기독교문화와 이슬람문화간의 갈등의 역사가 오랜 유럽에서 9.11 이후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중동문제로 반이슬람정서가 강해진 조건에서 경제위기와 정치불안감을 이용하려는 포퓰리즘 정치가 자리잡고 있다.
Q: 부르카 금지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가.
한상희: 부르카 금지법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모든 국민들에게 이슬람은 이상한 사람들, 시민권 제한해야 하는 집단이란 메시지를 주게 된다. 본래 목적과 상관없이 그런 메시지를 주게 되는게 더 무서운 점이다. 그게 이슬람 여성을 역설적으로 억압하는 기제가 될 수도 있다.
박경서: ‘표현의 자유’라는 측면에서 봤을 때 좀 심하지 않나 싶다. 만약 프랑스나 벨기에 전체 국민 다수에게 혐오감을 줄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거나 다수가 부르카를 착용한다면 부르카 금지가 명분이 있겠지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인권 선진국으로서 인권문제에 많은 발언을 하는 서유럽 국가들이 소수자의 문화적 전통을 법으로 강제한 것은 지나치다.
Q: 부르카는 단지 타파해야 할 악습(惡習)에 불과한 것 아닐까.
이찬수:구습 혹은 악습도 상대적인 개념이다. 가령 한국의 지리산 청학동으로 유명한 소수종교인 ‘갱정유도’ 신도들은 여전히 상투를 틀고 있다. 보기엔 따라선 구습이지만 전통으로 보기도 한다. 더구나 구습은 계몽의 대상이지 금지의 대상은 아니다.
한상희:부르카를 규제한다고 여성 인권이 신장된다고 보기도 힘들다. 유럽 각국 정부가 부르카를 규제한다는 것은 눈에 쉽게 보이는 것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행정편의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Q: 온 몸을 가리는 부르카가 테러수단이 될 위험도 있지 않나.
박경서:만약 국가안보와 국민안전 문제라면 사안에 따라 제한적으로 허용할 수는 있다고 본다. 하지만 엄격해야 한다. 인권의 차원에서는 다수의 인권이 소수의 인권에 침해받고 충돌할 때는 다수 인권 편에 서야 한다.
이찬수:가능성은 있겠지만 가능성만으로 인권을 제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Q: 부르카가 사회통합을 저해한다는 주장도 있지 않나.
한상희: 사회통합 관점에서 보면 위화감을 주는건 사실이다. 시커먼 사람이 앞을 지나가니까 나도 보면 아이구야 싶다. 하지만 사회통합을 왜 자국 혹은 자문화 중심으로 해야 하는지 설명이 없다. 오로지 기독교문화 틀로만 통합하려고 하는 건 어떤 의미에선 반이슬람의 또다른 표현이란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확산되는 부르카 금지
프랑스 의회는 11일(현지시간) 부르카 착용이 ‘프랑스의 가치’를 모욕한다며 비난하는 결의안을 상정한다. 프랑스 정부가 오는 19일 부르카 착용 금지법안을 내각에서 승인하고, 의회가 오는 7월 초 법안을 심의할 예정인 가운데 나오는 이 결의안은 법안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의도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법안은 부르카 착용을 강요한 사람에게 1년 징역형과 함께 1만 5000유로의 벌금형에 처하고, 부르카를 착용한 여성에게도 150유로의 벌금을 물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위스 북부 지방자치단체인 아르가우 칸톤(州)에서는 지난 4일 공공장소에서 부르카 차림을 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법안을 의결했다. 여기에 영향을 받은 수도 베른 칸톤도 부르카 착용 금지법안을 신중하게 검토 중이다. 스위스는 지난해 국민투표를 통해 이슬람 사원의 첨탑 신규 건설을 금지하는 안건을 57.5% 찬성으로 통과시키기도 했다. 첨탑은 무슬림의 기도 시간을 알리는 이슬람 사원의 상징적 건축물이다.
같은 날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주의 노바라 시 경찰은 올해 새로 시행된 조례에 따라 부르카를 착용한 채 우체국을 찾은 여성에게 최대 500 유로의 벌금을 부과할 계획이라고 이탈리아 안사(ANSA) 통신이 보도했다. 이 조례는 공공건물과 학교, 병원 등에서 신분을 즉각 식별할 수 없는 복장은 착용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앞서 벨기에 하원은 지난달 29일 유럽국가 가운데 처음으로 거리와 공원, 운동장 등에서도 부르카 착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확정했다. 경찰 허가 없이 새 법안을 어기면 15~25유로의 벌금이나 7일간의 구류 처분을 할 수 있다.
반이슬람정서 확산 영향
부르카 금지를 추진하는 쪽에서는 여성인권과 사회안전 등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부르카를 착용하는 여성은 1900명 가량이다. 스위스에서는 100명에 못 미치고 심지어 벨기에서는 30명도 채 안된다. 그런데도 굳이 부르카에 열을 올리는 밑바탕에는 반이슬람 정서가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무슬림 다수가 이민자들인데다가 저소득층이라는 점에서 계급갈등이 근원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일 사설에서 “벨기에 인구에서 약 3%에 불과한 무슬림은 다수가 빈민층이기 때문에 극단주의가 퍼져나가기 좋은 환경에 있는데도 정부가 너무 자주 무슬림 전체를 대상으로 완고하게 대응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유럽 전체에서 무슬림은 약 51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7% 가량이다. 출산율을 감안하면 2015년까지 유럽의 무슬림 인구가 지금보다 두 배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규모가 커지면서 갈등도 증가한다. 2005년 프랑스 파리 북부에선 경찰의 과잉진압이 계기가 돼 대규모 소요사태 발생하기도 했다. 무슬림이 연루된 테러사건이 계속되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네덜란드 영화감독 테오 판 고흐가 이슬람 비판 영화를 만들었다가 2004년 암살된 것을 비롯해 스페인 마드리드 열차테러사건, 영국 런던 테러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프랑스와 독일 차이점도 눈에 띈다
유럽에서 가장 먼저 부르카가 사회문제가 된 곳은 프랑스다. 프랑스는 이미 2004년 학교에서 히잡(이슬람 여성용 스카프) 등 ‘종교적 상징물’을 착용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시켰다. 지난 3월 영국 파이낸션타임스가 보도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랑스에서는 응답자의 70%가 니캅과 부르카 착용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답했다. 이는 스페인(65%)이나 이탈리아(63%), 영국(57%), 독일(50%)에 비해 두드러진 수치다.
이런 차이는 국가별 무슬림 인구비중과 상관이 있다. 프랑스 인구는 약 6000만명이며 이 가운데 500만명 가량이 무슬림이다. 독일은 프랑스보다 인구는 2000만명이 많지만 무슬림인구는 400만명 가량이고 대부분은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터키 출신이다. 더구나 프랑스 무슬림은 대부분 옛 식민지 출신들이지만 터키 출신들은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과 동맹관계를 맺기도 했다.
우파 “적극” 좌파 “반대”
부르카에 대한 입장은 국가를 떠나 정치성향에 따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우파는 부르카 금지를 적극 추진하고 좌파는 반대하는 양상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부르카는 여성 굴종의 상징”이라며 부르카 금지를 천명했다.
스위스 중도파와 우파 정당들은 부르카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상징하는 동시에 이민자들이 스위스 사회에 융합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애물이라고 비난해왔다. 이탈리아 노바라 시 조례도 이민자 통제강화를 주장하는 정당인 북부리그 소속 시장이 도입했다.
프랑스 사회당은 이슬람에 대한 공포를 부추긴 정체성 논쟁에 대한 반대를 이유로 지난 1월 프랑스 의회 조사위원회 보고서 인준을 거부했다. 그러면서도 마르틴 오브리 당수는 “부르카가 무슬림에 대한 낙인이 돼선 안된다.”면서도 부르카 착용 금지를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스위스 사회당은 부르카를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반대하지만 여성인권침해라는 견해는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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