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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

한국에서 '좌파'는 어떤 사람들을 말할까

by betulo 2010.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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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요즘 ‘좌파’ 발언으로 뉴스의 중심에 섰다. 그는 지난 16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에서 열린 '바른교육국민연합' 창립대회에 참석해 "10년간의 좌파정권 기간 동안에 편향된 교육이 이루어졌다. 이제는 그 잘못된 편향된 교육을 정상화된 교육으로 바꾸어야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출처는 여기). 이어 봉은사 주지인 명진스님에 대해서도 좌파 스님이라고 했다고 한다.

도대체가 혼란스럽다. 한국에서 ‘좌파’란 누구를 가리키는 말일까. 먼저 좌파의 정의를 보자. 위키피디아에는 이렇게 써 있다.

좌파(左派) 또는 좌익(左翼)은 정치 이념 분포에서 우익의 반대편에 위치하며, 사회개혁과 변혁을 추구하는 정치성향을 가진 사람과 단체를 일컫는다. 또한 리버럴 평등주의를 중시하는 정치적 입장을 말하기도 한다. 비슷한 말로는 진보주의라고 할 수도 있다. 세계적 기준에서 볼 때 보편적으로 사민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아나키즘, 환경주의를 좌파로 본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원론적인 정의가 현실에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어떤 이데올로기는 좌파는 곧 친북과 동의어처럼 쓰는데 내가 아는 한 한국에서 자칭 좌파들 가운데 북한을 어여삐 여기는 아무도 없다.

한국 교육이 좌파 교육이었다? 명진 스님이 좌파였다?

이쯤 되면 안상수 원내대표를 비롯해 한국의 일부 세력이 사용하는 좌파라는 말 자체가 일반적인 정의와 아무 상관없다는 결론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럼 도대체 ‘좌파척결’ 주장하는 분들에게 좌파의 정의가 뭘까.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이 명쾌한 결론을 내려줬다. 자파(自派)가 아니면 좌파(左派)다.

정권이 전교조를 좌파로 본다면 왜 그러겠는가. 전교조가 정권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왜 전공노가 좌파 단체 소리 들으며 탄압을 받는가. 전공노가 민주노총에 가입했는데 민주노총은 정권과 같은 편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만약 전공노가 한국노총에 가입했어도 지금 같았을까.

한 정부관계자에게 듣기로 2008년에 국민권익위원회가 시민단체인 경실련과 정책협의를 위한 간담회를 했다는 이유로 청와대 관계자한테 엄청 혼났다고 한다. “왜 좌파 단체와 만나느냐”는 게 이유였다. 이 말에서 얻을 수 있는 결론은? 그 청와대 관계자 눈에는 경실련이 자기 편이 아니었던 거다. 만약 권익위원회가 뉴라이트를 표방하는 단체와 정책협의를 했다면 혼날 일이 없었을 것이다.

김우룡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왜 "MBC에 있는 좌파 척결“이라는 말을 했을까. 그가 보기에 MBC 내부에 있는 특정 인사들이 김우룡 편이 아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인촌 장관은 ‘문화계 좌파 척결’의 선봉에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유 장관이 왜 김정헌 위원장을 무리하게 해임했을까. 왜 수준이 너무 떨어져 할 말을 잃게 만드는 한예종 감사를 강행했고 황지우 총장을 사퇴로 몰고 갔을까. 그들의 기준에서 김정헌 위원장이나 한예종이 자기 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4대강 사업 국민소송에 참여하는 ‘보수인사’ 이상돈 중앙대 교수를 일부에서 좌파라고 부르는 이유가 이해가 될 것이다. 대표적인 시장주의 경제학자인 이준구 서울대 교수가 좌파 소리 듣는 것도 다 그런 까닭인거다. ‘어떤 사람’이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을 좌파라고 간주한다면 그건 그 ‘어떤 사람’이 노 전 대통령이나 김 전 대통령을 적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결론. 그들이 만약 당신을 ‘좌파’라고 부른다면 그건 당신이 그들과 한 편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해놓고 보니, 나도 좌파인건가... 앞으로는 좌파를 제외하고는 인간관계 정리해야 하나...

그래도 말이다. 이제는 진짜 좌파를 좌파라 하고 우파를 우파로 불러야 하는거 아닌가. 우리는 언제까지 적군을 적군이라 부르지 못하고 좌파라 부르는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건가.

존경하는 좌파들. 왼쪽은 여운형 선생, 오른쪽은 조봉암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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