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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역사이야기

오바마 '인종차별 벽' 쉽지 않다

by 비회원 2008. 9.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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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역사는 백인과 흑인의 역사라고들 말한다. 이것은 미국의 건설과정에서 흑인의 역할을 강조한 말이다. 우선 초기미국에 건너온 시기부터 그러하다. 현재 미국의 동해인 버지니아에 영국인이 상륙해서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한 시기는 1603년이다. 그리고 곧이어 흑인이 이곳에 도착한다. 물론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의 노예상태였다.

그런데 미국은 공식적인 역사의 기원을 퓨리턴이라 불리우는 청교도에서 찾고 있다. 하지만 흑인들은 미국에 청교도들보다 먼저 도착한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역사에 지우고 싶어도 지울 수 없는 것이 흑인들이다. 사실 그들이 초기 미국건설에 있어서 한축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처음부터 노예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당시 영국에는 노예라는 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계약노동자였다. 그때에는 비슷한 처지의 백인 계약노동자가 있었다.

대부분 가난 때문이거나 강제로 끌려서 이른바 계약(?)을 하고 대서양을 건너왔다. 그리고 운임의 대가로 약 7년간의 일을 해주고 자유를 얻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 비록 많은 수는 아니지만 자유흑인이 존재하였다.

정작 흑인이 노예가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흑인이 많아지면서부터이다. 수요가 증가하자 대규모의 흑인들을 유입되었고, 인구의 20%를 넘어가자 통제를 위해서 노예제도를 본격화한다. 이미 백인 계약노동자들과 연대해서 폭동을 일으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1680년대에는 노예제도가 확고하게 자리잡았다. 

많은 사람들은 남북전쟁이 이후에 노예가 사라지고 흑인은 최소한 법률상으로는 동등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후에는 단순한 편견이나 차별정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인식한다. 하지만 남북전쟁 이후에도 ‘짐크로우법’으로 통칭되는 흑백분리정책을 통해서 일상 속에서 차별이 존재했다.

미국의 대법원은 1857년 ‘드레드 스콧 사건’과 1896년의 ‘퍼거슨 사건’의 재판을 통해 흑인은 미국시민이 아니고, 흑백분리는 당연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남북전쟁의 원인을 노예해방이 아니라 남북의 경제문제 등으로 해석한다.

아무튼 이런 제도적 차별은 1960년대 마틴 루터 킹 목사로 대표되는 민권운동의 결과 실제적인 참정권이 주어질 정도로 진보하기는 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때까지 유색인종들에게 사실상 없었던 부동산의 소유나 백인과의 결혼이 허락되었는데, 어부지리로 한인들도 이 혜택을 보았다는 것이다. 한인들은 고마워 하기는 커녕 백인보다 더 흑인을 차별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미국은 인종차별로 계급갈등을 대치한 제국이다. 이런 상황은 맑스도 이해할 수 없었다. 가난한 백인들과 흑인들을 분리시킨 것이다. 지금 백인 노동자들이 흑인 후보인 오바마를 지지하지 않는 것도 이런 역사적 맥락 때문이다.

어떻든 미국은 이제 선택을 해야만 한다. 어떻게 선거가 진행되는가에 따라 미국이라는 제국의 운명이 판가름 날 것이다. 감정 같아서야 독선과 오만의 제국이 쇠락했으면 하지만,  우리와 세계에 너무나도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마냥 좋아라 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정창수 역사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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