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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

꾀병 눈총에 더 아픈 21세 의경 안타까운 사연

by betulo 2007.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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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의료사고 확신.

10월9일 고 아무개를 그의 집 근처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인사를 하고 집으로 가는데 다리를 살짝 저는 걸 봤습니다. 2층으로 올라가고 나서 한참있다가 집으로 들어오더군요. 슬쩍 뒤를 돌아보니 계단을 오르는게 상당히 힘들어보였습니다. 무려 3시간을 쉬지 않고 인터뷰했습니다. 인터뷰를 마칠 때 앞뒤가 딱 떨어지는 내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단계. 결국 문제는 '군대' 시스템

다음날 이인재 변호사를 인터뷰했습니다.  의료소송에 경험이 많은 분입니다. 그분 얘기를 듣다 보니 미궁에 빠졌습니다. '신체형 장애'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하더군요. '명절 증후군'이라는 게 있지요. 명절 때만 되면 며느리들은 괜히 머리도 아프고 복통도 생기고.

그걸 '꾀병'이라고 하면 그건 너무 편의적인 규정이지요. 그 속에는 명절에서 자신들이 겪어야 하는 여러가지 어려움에 대한 부담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본질적으로는 가부장적이고 며느리들에게 불리한 문화가 원인이지요. 인터뷰라기보다는 '의논'을 하면서 그런 방향으로 기사를 쓰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설령 신체형장애라 하더라도 그건 전체적인 군대시스템 속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3단계. 답답하긴 군의관도 마찬가지

고씨를 담당했던 군의관과 통화한 건 17일이었습니다. 두번째 미궁에 빠졌습니다. 그 군의관은 고씨도 인정했듯이 상당히 정성을 다해서 고씨를 도와주려 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전체적인 맥락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그를 통해 제가 취재하는 이번 사안의 또다른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사실 그게 저에게는 미궁이었습니다. 고민 참 많이 했습니다. 캡과 의논하고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최대한 중립적으로' 쓰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대안으로 '의료사고피해구제법 제정'을 강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기사를 여러번 고쳤습니다. 처음엔 고씨 사례와 다른 사례를 모아서 의료사고피해구제법 제정이 중요한데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가 안되고 있어서 문제라는 요지로 썼습니다.

아래 올린 기사는 그 기사를 다시 손봤습니다. 고씨 사례만 쓰고 객관적으로 쓰고 의료사고피해구제법 제정 문제는 짧게 뒤에 붙였습니다. 분량이 너무 많아졌습니다. 지면에 실린 기사와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 포스터. 군대의 실상을 꽤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 노력한 작품이다. "그날 이후... 더 이상 친구일 수 없었다."는 말이 많이 와 닿았다. 물론 이 기사와 특별한 관련은 없다. <출처=구글 검색>


“멋지게 병역의무를 다하고 싶었습니다. 내게 왜 이런 일이 닥쳤는지 모르겠습니다. 고통 속에서 보낸 시간을 도대체 누가 보상해 줄 수 있겠습니까.”

고모(21)씨는 일반인들이 10초면 오를 계단도 1분이 넘게 걸린다. 천천히 10분만 걸어도 온몸이 쑤신다고 말한다. 수시로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는 것도 곤욕이다.

지난해 10월 의경으로 입대해 논산훈련소에서 4주간 훈련을 받다가 생긴 치질 때문에 수술을 받은 후 1년간 계속 이런 상태다. 다리에 힘이 풀려 제대로 걷기조차 힘들게 되면서 각급 군병원에서 6개월 가까이 보내는 등 제대로 훈련도 받지 못해 그의 계급은 입대 1년이 되도록 ‘이경’이다.

●1년간 받은 ‘원인 모를’ 고통

고씨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아무도 원인을 모른다는 점이다. 고씨와 그의 부모는 수술 당시 마취 과정에서 생긴 잘못이 원인이 아닌가 의심하지만 근전도․신경전도 등 검사 결과는 ‘정상’으로 나온다. 당연히 의가사제대도 할 수가 없다. 사립대학 병원 두 곳에서 정밀 진단을 받았지만 거기서도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고씨를 담당했던 송모 군의관은 “솔직히 나도 원인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다리에 힘이 떨어지는 것은 근육이나 신경에 이상이 있어야 하지만 여러 차례 검사결과 아무런 이상을 찾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검사 결과 이상이 없으니 전역이 안되는 것”이라며 “전역을 시켜주고 싶어도 방법이 없다.”고 답답해 했다.

지난 2월 고씨를 진찰했던 Y대학 병원의 김모 교수는 진단서에서 “정신적 원인에 의해 신체 증상이 나타나는 ‘신체형 장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신체형 장애란 내적인 불만이나 갈등이 일상적인 정신 방어작용으로 해소 되지 않을 때, 누적된 정신적 갈등이 신체적인 증상으로 표현되는 것을 말한다.

●“군대에서 환자는 죄인”

김 교수는 진단서에서 “환자의 보행장애는 지속적인 격려와 심리적 상담을 통해 호전 가능하다고 추정…”이라고 썼다. 하지만 고씨는 군병원에서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심지어 “상급 군병원에서는 제대로 된 원인 설명도 해주지 않고 치료도 안 해주면서 ‘꾀병만 부린다. 아프지도 않는데 왜 똥 싼 사람처럼 걷느냐.’는 인신모독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한 전직 육군 영관급 장교는 “병원에선 환자가 중심이 돼야 하는데도 군대에선 관료적이고 권위적인 조직문화 때문에 실상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면서 “누구나 아플 수 있다는 상식을 인정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환자가 죄인이 돼 버리는 현실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의료소비자시민연대 소비자상담센터 이인재 소장(변호사)은 “신체형 장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더라도 국가에서 실시하는 징집 신체검사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어 입대한 청년이 수술 이후 질환을 호소하는데도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결국 국가가 장병관리를 소홀히 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그는 “다만 의료진의 과실이라고 하기엔 인과관계가 약해 보인다.”고 덧붙였다.

●의병제대도 쉽지 않아

문제를 더 어렵게 하는 것은 고씨가 의경 신분으로 국군 소속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데서 나온다. 송 군의관은 고씨가 지난 5월 경찰학교로 배치받을 당시 “경찰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을 것”을 권했지만 고씨는 경찰병원에서 아무런 치료를 받지 못했다.

고씨는 “이제는 의병제대라도 해서 집에서 치료를 받고 싶다.”고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다. 기동대에선 의병제대를 권하지만 그러려면 육군 병원에서 받은 신체검사 결과가 있어야 한다. 그는 현재 서울시경찰청 기동대 소속이지만 수술은 국방부 소속일 당시 받았기 때문이다.

수도통합병원에서는 “특별한 이상을 발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전역에 필요한 5급을 받지 못했다. 정상적인 복무도 못하면서 의가사제대도 못하는 이도 저도 못하는 신세가 돼 버린 셈이다. 그는 “‘강제전역’도 경찰이 아니라 군 소속일 당시 생긴 질환이라 쉽지 않다.”고 하소연한다.

고씨는 현재 병가를 받아 집에 머물며 재활치료를 하고 있다. 그는 “지금까지 정밀진단과 재활치료 비용만 500만원이 넘게 들었다.”면서 “한번에 10만원이 드는 재활치료비가 부담스러워 헬스클럽에서 혼자서 재활치료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의 책임감 시험하는 리트머스지

현재로서는 고씨와 그의 가족이 이유도 모른 채 고통을 감내해야 할 가능성이 높다. 김 교수의 지적처럼 “시험을 앞둔 부담 때문에 시험 직전에 배가 아픈 것처럼, 정신과적으로 긴장이 고조되면서 본인의 정신적 긴장이 육체적인 증상으로 나타났을 가능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분명한 건 고씨의 질환이 병역의무를 수행하다 발생했다는 것이고 그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씨의 사례는 한 청년을 징집한 국가의 책임감을 시험하는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진퇴양난에 빠진 고씨에게 해결책은 없을까. 김태현 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의료사고피해구제법 제정이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피해당사자들이 의료진 과실을 입증해야 했던 현행 제도에서 의료진이 자신의 무과실을 증명해야 하도록 하는 ‘입증책임전환’이 핵심”이라면서 “의료진이 자신의 무과실을 입증하면 배상책임도 없기 때문에 피해를 주장하는 쪽과 의료진의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길이 열린다.”고 지적했다.

2007.10.19일자 8면

후기. 그리고 4단계. '신체형 장애'가 아닐 가능성은?

기사가 나가고 조금 전 전화한통을 받았습니다. 그는 어느 지방경찰청에 근무하는 현직 경찰관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뒤 기사에 난 사례와 유사한 경우를 안다고 했습니다. 아는 의사에게 물어봤는데 '척수염'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는군요. 그는 고씨도 척수염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고 애기했습니다.

사실 척수염 얘기는 고씨와 인터뷰하는 중간에도 들었습니다. 어느 민간병원 의사가 척수염 가능성을 언급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기사에선 확증이 없어 그 부분을 쓰지 않았습니다. 어쨋든 그 경찰분은 나름대로 이러저러한 설명을 들려주면서 척수염 가능성을 얘기했고 그 부분에 전문성이 있다는 병원 이름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이제 저는 세번째 미궁에 빠졌습니다. 과연 고씨는 '신체형 장애'일까요 아니면 척수염일까요. 이도 저도 아니면 뭔가 다른 질환일까요. 의학에 문외한인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고민은 계속될 거 같습니다.

가능성 중 하나는 검증 가능할 듯 합니다. 만약 제대를 한 후 몸이 낫는다면 신체형 장애는 아니게 되는 거지요. 솔직히 신체형장애라고 진단한 김 교수도 전화인터뷰해본 결과 뚜렷한 확신을 갖고 그렇게 진단한 건 아니라고 하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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