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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

기자와 술

by betulo 2007.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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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은 술을 잘 마십니다. 자주 마십니다. 끝까지 마십니다. 그것도 폭탄주를 아주 애용하지요.

폭탄주는 적어도 제게는 취재용이 아니라 회식용입니다. 물론 출입처에 따라 폭탄주가 취재원 대화용이라는 곳도 있지만 아직 그런 경지에 이르진 못했습니다. 다행스런 일입니다.

지난주 토요일 편집국 산행이 있었습니다. 북한산을 두세시간 오르내리고 점심 겸해서 회식이 있었습니다. 처음엔 꽤 얌전했지요. 아니 그렇게 보였습니다. 막걸리로 땀에 절은 몸을 축이고 점심도 맛나게 먹고요.

어느 순간부터 저쪽에서 박수소리가 들립니다. 이쪽 저쪽에서 들리기 시작합니다. 다행히 제가 있는 자리에선 폭탄은 없었습니다만 제 옆자리 계신 분 비어있는 제 막걸리잔에 맥주를 따라 주시더이다. 술은 다 똑같다면서. 그 분 얘긴 이따 다시 하지요.

화장실 갔다 오다 낀 옆자리. 양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어느 자리나 그렇듯 술자리가 대체로 세곳 정도로 정리되면서 계속 마십니다. 3시가 넘어서 얼핏 보니 식당 냉장고에 있는 맥주가 거의 바닥났습니다.

4시쯤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제가 마신 폭탄이 6-7잔은 되니까 저만 해도 적지 않게 마셨습니다. 일어날 때 보니 제 막걸리잔에 맥주를 따라 주셨던 분께서 일어나질 못하시더군요. 그분을 부축해서 나오려고 보니 제 등산화가 없어졌습니다. 누군가 제 등산화를 신고 가버렸습니다. 다행히 그분이 놓고 간 등산화가 제꺼보다 훨씬 비싸고 치수도 똑같고 해서 특별히 잊어버리고 그냥 그 신발 신기로 했습니다. (혹시 등산화 잃어버리신 분 제게 연락주세요.)

막걸리잔에 맥주 따라준 그분 옆에서 부축해서 구기동매표소 부근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내려오는데 정말이지 미쳐버리는줄 알았습니다. 몸을 전혀 못가누면서도 말은 전혀 안들으시더군요. 그날 그런 사태를 맞이하신 분이 몇 분 더 있는걸로 알고 있습니다.

거기까지만 해도 그래도 나을 뻔 했습니다. 2차까지...일주일에 토요일 하루 쉬는 기자들 체력도 좋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폭탄주...저는 아직 요렇게 먹어본 적은 없습니다.



기자들은 왜 그렇게 폭탄주를 좋아할까요. 왜 폭탄주를 비우면 박수를 치는 걸까요.

원래 폭탄주는 미국 노동자들이 힘든 일을 끝내고 퇴근해서 집에 가기 전에 얼른 취하려고 독주를 섞어마신대서 유래합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을 유심히 보셨다면 극중 브래드 피트가 선술집에서 폭탄주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는 걸 기억하실 겁니다.

그런데 왜 기자들은 얼른 먹고 취해서 집에 가라고 있는 폭탄주를 얼른 얼른 오래도록 마시는 걸까요?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대단히 획일적인 걸로 봐서 군대식 잔재인건 분명해 보이구요.

한가지 드는 생각은 폭탄 말고 다같이 놀 수 있는게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겁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폭탄 말고 다른 걸로 놀아본 적이 없고 그래서 놀 줄 아는게 없는게 아닌가 하는 겁니다. 노래방이 있지 않냐고 하지 마십시오. 제가 보기엔 노래방에서 노는 것도 폭탄주 돌리고 노는 거와 기본 전제는 똑같습니다. 거기다 노래방에서도 술 돌립니다. 그러니 계속 폭탄을 돌리고 마시고 박수쳐주고 다시 마시고...

언론의 술문화. 이제는 한번 되돌아봐야하지 않을까요?

보통 회식자리 2차 가고 3차 가고... 주도하는 것은 좌장입니다. 아랫사람들은 어쨋든 따라가야 하지요. 좌장이 아닌한 눈치껏 분위기 맞춰야 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하지만 선배가 왕선배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남고 후배는 선배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남고 수습은 선배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남는다... 결국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부담스런 존재밖에 되지 않는 결과가 되는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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