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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비정규직 울리는 민주화사업회

by betulo 2007.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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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울리는 민주화사업회
비정규직 노동자 민주화기념사업회 앞에서 농성중
2006/3/21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는 그 자체로 ‘선’이었고 민주주의를 외치는 이들은 곧 ‘의로운’ 사람이었다. 절차적 민주화를 어느 정도 완수했다는 지금은 어떨까. 과거 민주화운동을 기념하고 계승하기 위해 설립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비정규직 문제라는 21세기 민주화 과제 앞에 비판대상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20일부터 한 비정규직 노동자가 기념사업회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는 “2006년부터 1년 계약 실시한다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합의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각성하라!”고 외친다. 그는 “기념사업회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우롱한다”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9개월짜리 비정규직 채용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지난 20일부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연정씨.
강국진기자

지난 20일부터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연정씨.

지난해 말, 기념사업회는 비정규직 문제가 불거지자 사료관에서 근무하는 비정규직에게 1년계약을 약속했으나 ‘약속한 바 없다. 들은 바 없다’ 등의 말을 하며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9개월 계약을 하고자 하여 농성을 한다는 게 그가 주장하는 내용이다.

2004년 7~12월, 2005년 3~12월 동안 기념사업회 사료관에서 계약직으로 일했던 연정씨는 지난해 12월 15일 비정규직대표 자격으로 노사협의회에 처음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기념사업회에서 일하는 20명 가까운 계약직의 총의를 바탕으로 비정규직의 경우 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에서도 차기연도 근무 여부를 알 수 없고 9~10개월 계약이 끝나면 불안정한 상태로 2달을 보낸 후 다시 공채에 응시하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고용승계’와 ‘1년계약’을 ‘사측’에 요구했다. ‘안정된 일자리’가 이들의 핵심 요구였다. 이 제안은 1주일 전에 안건으로 제출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식 안건으로 채택되지 못했지만 12월 22일 간담회를 통해 의논하기로 합의가 됐다.

연정씨는 “고용승계는 ‘사측’이 국회 예산처리 등을 이유로 소극적인 자세를 취해 진전이 없었지만 1년계약 요구는 ‘희망자에 한해’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사측’이 약속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문국주 상임이사, 이난현 본부장 등이 ‘예산문제 때문에 약속 못 지키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0일 비정규직 채용공고는 3월 22일부터 12월 31일까지 9개월 근무라고 돼 있는데 이는 명백한 약속위반”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측’이 진심어린 사과와 진상규명을 하고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우발적인 일이 아니라 기념사업회가 비정규직을 인식하는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정씨는 “사측은 자꾸 퇴직금 문제로 물타기하지만 우리는 한번도 퇴직금 얘기를 한적도 없다”며 ‘안정된 일자리’를 재차 강조했다.

지난 10일 기념사업회가 공지한 내용에 따르면 계약직의 담당 업무는 민주화운동 사료 등록, 검수, 분류ㆍ기술, 전거 등이며 응시 자격은 △인문ㆍ사회계열 및 정보관련계열 석사 수료 이상에 해당한 자 △공공기관의 기록물관리 전문요원 과정을 이수한 자 등이며 위 1, 2항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기록관리, 자료 정리, 역사연구분야 1년 이상 경험자와 그에 준하는 자 △영어, 일어 등 외국어 관련학과 학사학위소지자 또는 외국어 관련 자격증소지자 및 그 능력이 증명되는 자 △기타 시민ㆍ사회단체 및 관련 단체 2년 이상 근무 경력이 인정되는 자 등이다.

기념사업회 “최선 다하겠다고 했지 약속한 건 아니다”

기념사업회는 지난해 간담회에서 약속한 적이 없으며 1년계약은 법제도상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박종수 총무팀장은 “지난해 12월 22일 간담회에서 임원들은 예산확보가 돼야 하기 때문에, ‘여건이 되면’ 1년 계약과 단기계약을 희망자에 한해 하는 걸로 가급적 노력하겠다고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정부산하기관이기 때문에 법이나 관련 규정, 지침을 준수해야 한다”며 “인건비 부분은 이월이 안되기 때문에 올해 3월에 모집을 해서 내년2월까지 계약하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고 밝혔다. 그는 “국회에서 사업계획이 지난해 12월 27일 승인됐고 그것에 맞춰 행자부에서 사업계획 승인을 받은 게 1월 하순, 최종적으로 사업계획을 완료한 게 2월 하순으로 본격적인 사업추진은 3월부터”라고 설명했다. 3월부터 12월까지 기간으로 계약직을 채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해 간담회에서 문 상임이사 등은 안 될 것을 뻔히 알면서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계약직 직원들에게 말했다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박 팀장은 “상임이사는 실무자가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것까지는 모르는 것 아니냐”며 “상임이사가 잘 모르고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는 “간담회 전에 실무자들이 그 부분을 상임이사에게 알려주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그 문제를 논의한 적은 없다”고 답했다. 그는 “노사협의회는 연말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당시 제대로 가동되는 상황이 아니었고 연말에는 기념사업회 전체적으로 바쁜 시기여서 그렇게 됐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그런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올해 근무한 직원이 내년에 새로 들어와서 일해 합산기간이 1년이 초과되면 퇴직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개선하기로 방침을 정해 이사장 승인까지 받았다”며 비정규직 보호와 배려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가 밝힌 비정규직 배려는 “노사협의회에 비정규직대표 참석시키고 기념사업회 행사가 있을 때도 참여시켜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 등이다. 그는 “지난해 계약 만료돼서 떠나는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함세웅 이사장이 사비 1백만을 내놓고 직원들도 각자 자의로 성의껏 내서 8백만원을 모아서 전별금을 줬다”고 말했다. 그는 이밖에 “기념사업회 계약직은 월급을 130만원 받는데 이는 비슷한 일을 하는 다른 국가기관 계약직에 비해 많은 편”이라고 덧붙였다.

박 팀장은 “연정씨를 만나서 대화를 할 것”이라며 “원만한 해결을 바란다”고 밝혔다.

“기념사업회가 비정규직 문제 고민 안한다”

이 논란에 대해 노사관계 전문가인 은수미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기념사업회가 취한 행동에 법적인 하자는 없다”며 “문제는 다른 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념사업회는 민주화운동 사료를 정리하고 분류하고 데이터베이스화 하는게 기본적인 상시업무라고 봐야 한다”며 “기념사업회의 설립목적에 비춰볼 때 단순업무라도 상시적으로 필요한 업무라면 정규직으로 하는 게 기념사업회의 정체성에도 맞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념사업회에서 일하는 계약직은 결코 급여가 많지 않다”며 “평균수준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기념사업회는 연정씨가 했던 업무를 설립초기부터 지금까지 계약직을 통해 계속하고 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3월 21일 오후 18시 24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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