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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 가도 성찰하며 천천히 가자”

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by betulo 2007. 3. 30.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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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디 가도 성찰하며 천천히 가자”
미리보는 한국사회포럼 좌담(4)
2006/3/22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오는 3월 23일부터 25일까지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열리는 한국사회포럼2006을 맞아 <시민의신문>과 한국사회포럼 조직위원회는 공동기획 ‘미리 보는 한국사회포럼’ 좌담을 4회에 걸쳐 마련한다. 한국사회포럼에서 토론할 주제 가운데 선정한 이 주제들은 한국시민사회운동의 지평을 넓히고 고민을 나누는 자리를 통해 ‘운동의 소통’을 꾀하자는 의도로 기획했다. 그 네번째 순서로 지난 16일 열린 ‘사회운동 내부 민주주의를 말한다’는 단체 내부 민주주의, 단체간 민주주의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자리였다. /편집자주

1회. 한국 사회운동은 위기인가
2회. 사회운동과 진보정당의 관계설정, 어떻게 볼 것인가
3회. 반(反)운동을 말한다: 뉴라이트와 신보수주의 비판
☞ 4회. 사회운동 내부 민주주의를 말한다

일시: 3월 16일 2시
장소: 시민의신문 회의실

사회:
하승창 함께하는시민행동 상근운영위원

참석자:

미니 경계를넘어 활동가
김완 문화연대 간사
아침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하승창: 오늘은 운동 내부 민주주의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먼저 각자 일하는 단체와 고민들을 나눠보자. 내가 일하는 함께하는시민행동은 2000년에 창립했다. 조직 체계로 볼 때 90년대 만든 단체들과 기본적인 차이는 없다.

△미니: ‘경계를 넘어’는 2004년 가을에 국제연대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자연스럽게 생긴 단체다.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자는 뜻에서 이름을 ‘경계를 넘어’로 정했다. 사무실은 있지만 상근자가 따로 있지는 않다.

오는 3월 23일부터 25일까지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열리는 한국사회포럼2006을 앞두고 <시민의신문>과 한국사회포럼 조직위원회는 공동기획 '미리 보는 한국사회포럼' 좌담을 지난 16일 시민의신문사 회의실에서 가졌다.
이정민기자

오는 3월 23일부터 25일까지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열리는 한국사회포럼2006을 앞두고 <시민의신문>과 한국사회포럼 조직위원회는 공동기획 '미리 보는 한국사회포럼' 좌담을 지난 16일 시민의신문사 회의실에서 가졌다.

△김완: 문화연대에서 활동한지 2년 됐다. 주로 문화권과 문화산업감시와 관련한 일을 한다. 문화연대는 대부분 직업운동을 하는 상근자가 15명 가량 된다. 보통 시민사회단체와 비슷한 형식적 체계를 갖고 있다. 그 속에서 상근자들의 자율성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아침: 평화인권연대는 1998년에 생겼다. ‘젊은’ 활동가들이 모여 인권의 기준에서 평화운동을 고민한다. 처음에는 형식적인 체계가 있었지만 다 없애고 활동가 중심으로만 운영한다. 대표도 없고 활동가들은 각자 자신의 일을 하면서 형편껏 활동한다. 상근자는 6명이다. 병역거부운동, 평화인권교육을 주로 하고 인권단체들과 연대사업을 많이 한다.

△하: 단체가 처해 있는 상황이 조금씩 차이가 있다. 먼저 각자가 고민하는 운동 내부 민주주의를 진단해 보자.

△김: 문화연대는 이 자리에 있는 단체 중에는 가장 정형적인 조직체계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조직 스스로 그에 따른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다. 재작년부터 활동가중심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과 실무를 맡는 활동가들 사이에 간극이 있었다고 한다. 그 속에서 권력관계가 작동하기 때문에 실제 일을 하는 활동가들이 의사결정구조에서 소외되는 면이 있었다. 대안으로 활동가중심주의가 나왔고 조직 체질이 많이 바뀌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학자들은 자신들이 의사결정에서 소외된다고 인식하는 것도 사실이다. 조직이 물리적으로 커갈수록 소통을 전담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도 계속 나온다.

네트워크조직도 조직민주주의 고민중

미니 경계를 넘어 활동가.
이정민기자
미니 경계를 넘어 활동가.

△미니: ‘경계를 넘어’를 처음 만들면서 조직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관료화된 조직’과 ‘네트워크조직’ 중간으로 설정하기로 했다. 운동과정에서 조직 관료화나 중앙집중화에 대한 대안으로 네트워크조직이 많이 나왔지만 책임소재에 문제가 생기고 목소리 큰 사람이 의사결정을 주도하는 문제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봤다. 우리 단체는 어차피 규모가 작기 때문에 특별한 조직체계는 없다. 하지만 사업을 진행할 때 시간이 되거나 눈에 띄는 사람이 담당이 될 가능성이 있다. 짜임새 없이 즉흥적으로 운영하는 문제도 있는 것 같다.

△아침: 네트워크 조직에서도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생계와 활동을 병행하면서 생기는 갈등도 있고, 목소리가 크거나 발이 넓거나 나이가 많거나 정보가 많은 사람이 활동을 주도하다 보니 학벌 문제나 성별 문제가 생겼다고 들었다. 우리 단체 초창기부터 일했던 한 명도 그런 문제로 고민이 많다. 아무래도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일이 자신한테 몰리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단체는 각자 역할을 나누고 각자 운동영역은 보장해 주는 식으로 운영한다.

△하: 네트워크조직을 만들 때는 관료화를 막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있었지만 그조차도 기존 조직에서 나타난다고 말하는 문제가 똑같이 나타나는 것 같다.

△미니: 네트워크조직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 회원들이 온오프라인에서 사안에 대해 토론해서 세가지 안이 나왔다면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투표로 할 것인지, 그럼 투표권을 누구까지 인정할 것인지, 이름뿐인 회원까지 투표권을 주는 게 맞는지, 열성적인 회원으로 할 것인지.

△하: 민주주의를 이루려다 결정과 집행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인 것 같다.

△아침: 우리 단체는 사무국이 있는 가운데 네트워크 체계로 갔기 때문에 운영결정방식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 새로 생기는 네트워크 단체는 방금 얘기한 문제들이 발생하는 것 같다.

△김: 활동가주의로 단체를 운영하면서 조직이 피로감을 느낀다는 고민이 있었다. 일이 벌어지는 속도가 우리를 기다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속도가 너무 빠르다. 문화연대는 그래도 기존조직에 비해 열린 조직일 텐데도 당위적으로 네트워크구조로 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그게 당장 현실적일 것 같지는 않다. 거시적이고 형식적인 면에서는 특별히 더 좋은 모델이 없는 것 같다. 조직 운영의 방법이나 구성의 방법만 갖고 민주주의를 말하기는 힘든 게 아닌가 하는 고민도 든다.

돈 있어야 민주주의?

아침,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이정민기자
아침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아침: 많은 단체들이 공동대표, 운영위원, 집행위원, 자문위원 등 온갖 자리를 많이 둔다. 운영이나 집행, 자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재정확대나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그런 자리들을 총회에서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갈등 없이 1년을 보내는 문제가 갈리는 단체도 있다. 자리 배치를 잘못해서 재정확충에 문제가 생기는 걸 본 적도 있다.

△미니: 단체마다 자리가 필요하니까 별의별 자리가 다 생긴다. 예전에는 집행책임자가 사무국장이었다. 이제는 사무총장, 사무처장, 사무국장 등 이름도 다양해진다. 한국사회포럼만 해도 조직체계가 옥상옥이다.

△김: 민주주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돈 문제이기도 하다. 단체 활동가들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런 자리들이 재정이나 사람을 불러 모으는데 상당히 이바지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관료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어느 단체에서 전화가 왔는데 통화할 사람을 찾은 다음에 정작 전화를 하려는 자기 단체 사무총장을 바꿔준다. 그 단체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에 갈 때 가방을 대신 들어주는 활동가도 있다. 솔직히 충격이었다.

사람도 봐야 한다

△미니: 조직의 관료화는 조직 상층부를 주목한 것이다. 그것 때문에 상층부를 없애는 단체가 나왔다. 하지만 조직체계는 눈에 금방 드러나기 때문에 말하기가 상대적으로 쉽다. 사람도 핵심 문제다. 어떤 단체는 대표가 있긴 한데 대표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자연스럽게 같이 일하는 곳도 있다.

또 어떤 단체는 상근자도 얼마 없는데 대표라는 사람은 명함만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인정받고 싶고 남들이 자신의 의견을 따라줬으면 하는 욕구가 굉장히 큰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은 악순환을 겪는다. 인정받고 싶어서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고 목소리가 높아진다, 다른 활동가들은 그 사람을 불신하게 된다. 그러면 더 강하게 얘기한다. 결국 대화가 단절돼 버린다. 심한 경우는 대표 자리 차지하고 골치 아프게만 하지 말라는 식이 돼버린다. 그런 사람은 또 활동가들에게는 권위만 내세우다가도 회원들에게는 부드럽게 대한다.

김완 문화연대 간사.
이정민기자
김완 문화연대 간사.

△김: 많은 이들이 조직내 민주주의를 고민하고 바꾸려는 노력을 많이 한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얘기하긴 부담스럽지만 상투적인 습관들이 조직원리에 작용한다. 다른 단체를 봐도 어느 단체나 그런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하: 지적하는 내용들은 공통적으로 정보집중과 정보배타성이라는 문제로 모을 수 있는 것 같다. 사실 나도 그런 문제를 경험한 적이 있고 여전히 고민도 많다. 정보접근에서 차단당하는 것은 당사자를 힘들게 할 뿐 아니라 조직내 민주주의를 해친다. 네트워크단체도 역시 그런 문제를 고민하는 것 같다. 그 문제는 의사결정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도 연관된다. 사실 그건 조직성격에 따라 다를 것이다.

△아침: 네트워크단체에서는 내부에서는 안 그러지만 외부에서 그렇게 만드는 면도 있다. 다른 단체나 언론에서는 아는 사람을 찾게 되고 자연스럽게 정보를 더 많이 얻는 사람이 생긴다.

△김: 문화연대는 활동방향과 의사결정을 활동가들이 담당한다. 하지만 의사결정은 내가 하는데 일을 벌이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시키는 경우가 생긴다. 가령 실제 준비는 활동가가 하지만 막상 기자회견은 교수나 유명인사를 부르게 된다. 명망가 중심이라고 비판받을 여지가 있다. 문제의식을 갖는 활동가들도 명망가들에 의존한다. 의사결정 주체와 대표성에 차이가 생긴다.

△아침: 예를 들어 어제 대추리에서 일어난 일을 다루는 언론보도를 보면 ‘누구 누구 활동가들이 연행됐다. 그리고 정태춘씨도 연행됐다’는 식이다. 언론에서도 대다수 단체는 ‘등 단체’가 된다. 우리 같은 성격을 가진 작은 단체들을 보면 연대사업을 할 때 유명인사들의 이름만이라도 빌려 달라는 ‘이름후원’을 필요로 한다. 단체들이 모인 연대체가 또 다른 연대체에 이름을 올린다. 몇백개 단체가 하루만에 연대체에 모이는 나오는 구조적인 이유도 거기에 있다. 며칠 전 대추리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도 민주노동당 의원이나 연예인에게 의존하게 된다.

△하: 홍보전술로 이해해도 되지 않을까.

△아침: 단순히 그렇지도 않다. 여러 단체들이 참여하는 행사에서도 대표급 인사가 연단에 오르는 걸 배려해주지 않으면 그 단체가 움직이지 않는다.

단체간 민주주의도 시급하다

△김: 파병반대나 국가보안법 투쟁을 위한 연석회의에서 다른 단체 사람이 많이 와도 민주노총이 없으면 회의를 못 연다. 참여연대가 없으면 결정을 못한다. 홍보전술의 일환인 경우도 있지만 단체끼리도 위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작은 단체들은 더 큰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이다.

△아침: 사실 그래서 우리는 연대활동에 소극적이다.

△미니: 원고를 청탁해야 하는 경우 기왕이면 유명세 있는 사람의 글을 바라게 된다. 사회적 인식과 구조가 이름을 강요한다. 언론에 목매는 분위기도 존재한다. 되짚어 보면 시민단체가 언론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우리가 왜 그래야 하나. 시민운동이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왜 보도자료 내면서 단체 이름 가나다순으로 정리하느라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첫마음을 잃고 이름에 집착하니까 언론에 예민해진다. 큰 단체를 업으려 하니 작은 단체는 계속 작아지고 소외되고 서럽게 되는 것 아닐까. 세상을 바꾸려고 시작한 시민단체가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한다고 하면 문을 닫는게 모두에게 좋을 것이다.

하승창 함께하는시민행동 상근운영위원.
이정민기자
하승창 함께하는시민행동 상근운영위원.

△하: 중요한 것은 왜 운동을 하느냐 하는 구성원의 태도와 자세일 것 같다. 결국 성찰이다.

△미니: 어떨 때는 숨이 가쁘다. 너무 숨이 가쁘니까 성찰할 여유가 없어진다. 민주주의나 정보를 두고 논의할 시간이 없다. 시계를 천천히 돌려야 한다. 어떤 이들은 나에게 대표가 돼서 운영위원들도 모시고 조직도 키워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늦게 가자, 제대로 가자’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을 반대한다며 수백개 단체가 나섰지만 지금 다 어디 갔는가. 빨리 나서고 안된다 싶으면 빨리 돌아서는 거다. 그러려니 의사결정도 빨라야 하고 권위든 언론이든 큰 단체든 힘을 업어야 하는 구조다.

△김: 조직내 민주주의는 조직마다 상이하다.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건 위험하다고 본다. 어떤 모델이 모델자체로 안되는 건 없다고 본다. 사람의 문제이기도 하고. 일상적인 관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침: 덜 민주적이고 억압적인 단체이고 그런 단체들과 많이 만나는데 사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사회를 민주적으로 바꾸고자 한다면 좋지 않은 모습을 따라하지 않아야 한다. 늦게 가고 천천히 가고 다양한 실험을 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니: 운동에서 단계론적 사고가 있다. 일단 이 문제 해결하자, 그때까진 우리 내부 문제를 유보하자. 하지만 우리는 문제 너머에 있는 새로운 관계와 사회를 위해 단계를 밟는 것인데 문제 중심으로 하다 보면 안된다. 유보하면 안된다.

△하: 쉽진 않겠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해결과정에서 우리가 보여주는 새로운 과정, 그러면서 관계맺기를 생각해야 할 것 같다. 동시에 해야 할 것이라 본다. 해결하는 과정도 오늘 문제 느꼈으니까 내일 해결 하는 식으로는 안될 거다. 시간과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정리=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3월 17일 오후 19시 25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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