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재뒷얘기/시민의신문 기사

매니페스토, 정치 선진화 시금석될까

by betulo 2007. 3. 30.
728x90
매니페스토, 정치 선진화 시금석될까
지방선거 한-일 비교 학술대회
2006/2/6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후보자와 유권자간 정책공약 실행 약속을 추진하는 '매니페스토 운동'의 한국적 적용이 시작되고 있다. 지난 1일 '5ㆍ31 스마트 매니페스토 추진본부' 발족에 맞춰 지난 3일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는 '내나라연구소' 주최 '지방선거와 정치발전에 관한 한ㆍ일 비교'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최근 일본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매니페스토에 대한 논의가 주제로 잡힌 이날 학술대회를 지상중계한다. /편집자주

“지역정치 개혁 가능”
[매니페스토운동] 일본의 경험

2003년 3월 일본 지방선거에서 마츠자와 시게후미 당시 카나가와현 지사 후보 등이 ‘지역매니페스토(Local Manifesto)’를 내걸면서 일본 지방자치에서 ‘지역 매니페스토’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는 지역 시민단체의 참여와 결합하면서 ‘지역을 바꿔 일본을 바꾼다’는 운동으로 성장하고 있다. 일본의 경험은 5월 31일 지방선거를 앞둔 한국 시민운동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단법인 내나라연구소가 주최한 '지방선거와 정치발전에 관한 한-일 비교' 국제학술회의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양계탁기자

사단법인 내나라연구소가 주최한 '지방선거와 정치발전에 관한 한-일 비교' 국제학술회의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지난 3일 (사)내나라연구소가 주최한 ‘지방선거와 정치발전에 관한 한·일 비교’에서 기조발제를 한 마츠자와 일본 가나가와현 지사는 매니페스토를 통한 지역정치 개혁의 가능성을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가나가와에서 시작해 일본을 바꾼다’는 의지를 천명한 마츠자와 지사는 지역 매니페스토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까지 ‘선거공약’은 무엇을 실현하는지 모르는 추상적인 슬로건이거나 백화점식 ‘소망 모음집’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매니페스토는 당선 후 실현할 정책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검증 가능한 공약입니다. 개별적인 정책에는 구체적인 목표, 실현 방법, 실현 기한, 재원 등 수치목표를 포함한 구체적인 정책집입니다. 지키는 것을 전제로 한 공약이지요.”

일본 시민운동도 매니페스토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2월 미에현 지사를 역임한 키타카와 마사야스 와세다대학 교수 등이 중심이 된 ‘지역 매니페스토 추진 지자체장 연맹’ 설립과 함께, ‘지역 매니페스토 추진 네트워크’가 전국적 규모로 설립됐다. 이들 단체들은 지자체 차원에서 매니페스토를 평가하고 새로운 매니페스토를 지방정부와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지역 매니페스토’ 운동은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일본의 매니페스토 추진현황과 시민운동의 과제’를 발제한 이노우에 료이치 가나가와현 지역 매니페스토 추진 네트워크 사무국 차장은 특히 “알기 쉬운 매니페스토 작성”을 과제로 꼽았다. 그는 “시민들 사이에선 아직까지 매니페스토에 대한 침투도가 약한 게 현실”이라며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시민들에게 매니페스토의 의의를 이해시키기 위한 활동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마츠자와 지사는 “매니페스토 작성은 우선 지역민들의 의견을 들어 지역과제를 제대로 파악함과 동시에 선진적인 정책을 연구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매니페스토 운동은 일본에서만 머물러선 안된다”며 “한국에서도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매니페스토 운동이 퍼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자치,분권 기회”
[매니페스토운동] 엘리트 독점구조 깨야

지난 2002년 6·13 지방선거는 한국 지방자치의 문제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월드컵 열기에 묻혀버린 6·13 지방선거는 1961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생긴 이래 가장 낮은 투표율(48.9%)를 기록했다. 그만큼 주민들에게 매력이 없다는 뜻이다. 특히 자질이 떨어지는 지역정치인들의 부정과 비리는 주민들을 실망시켰다. 오는 5월 31일 열릴 예정인 지방선거도 낮은 투표율이 예상된다. 거기다 2007년 대통령 선거 전초전으로 인식한 정치권이 총력전을 벌이면서 혼탁선거 논란이 재연될 것이란 우려가 벌써부터 나온다.

지역자치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것은 ‘지역자치를 위한 지역자치’는 없고 ‘중앙정치를 위한 지역자치’만 있었던 데 상당한 원인이 있다. 손혁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은 발제에서 “한국의 지역자치는 민주주의 전개 과정에서 주민들이 요구해 자연스럽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위에서 내려온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여야 사이에 치열하게 전개됐던 지역자치 실시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도 중앙정치의 이해관계에 따른 것이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다 보니 정치권에서 벌어진 갈등도 지방선거 실시를 둘러싼 것이었지 지역자치 활성화 같은 지역자치의 본질을 둘러싼 대립은 별로 없었다. 이것은 선거운동 과정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지방선거에서 지역정치 차원의 정책대결이 아니라 중앙정치 차원의 정책대결이 벌어졌던 것이 좋은 예이다.”

특히 손 위원장은 “지역분권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서울의 지리적 집중을 보장하는 엘리트 독점구조를 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방자치가 부활한 이래 수도권 집중이 더 심해졌다”며 “지난 10년간 지방자치제는 자치단체장과 지방의회의 권한은 강화했지만 정작 주민을 중심으로 한 지방자치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지역자치를 장미꽃에 비유하기도 한다. 손 위원장은 “아름다운 장미꽃도 물을 주지 않으면 말라 죽어 버리듯 우리 지방자치는 물을 주지 않아 시들어 가는 장미꽃처럼 무관심 속에 뒷걸음치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지방자치 활성화 방안으로 △지방정부 권한강화 △주민참여제도 확대 △중앙통제 축소 △지방의회 활성화 △지역 시민단체 참여 확대 등을 제시했다.

중앙정치 예속 ‘현재진행형’
[매니페스토운동] 한국 지방자치 역사

1948년 제헌헌법이 지방자치를 규정하면서 한국에서 지방자치제는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1949년 지방자치법을 도입했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선거를 하지 못하다가 1952년에야 지방선거를 실시해 시·도·읍·면 의원을 선출했다. 전쟁을 이유로 연기했던 지방선거를 전쟁 와중에 실시한 것은 이승만 대통령이 ‘직선제 개헌’에 이용하기 위해서였다. 지방의원 1천300여명은 1952년 6월 23일 직선제 개헌안을 요구하며 부산에서 단식농성을 실시했고 이승만 대통령이 파행 끝에 직선제 개헌안을 통과시키자 귀향했다. 지방자치가 중앙권력의 수단으로 이용된 첫 사례였다.

1956년 2차 지방선거는 시·읍·면장도 직선제로 했지만 잔여임기를 인정하는 바람에 전국 시·읍·면의 60%가 선거에서 제외됐다. 이 선거에선 여촌야도 현상이 강하게 나타났으며 지역문제는 소외되고 중앙정치의 영향이 뚜렷했다.

제대로 된 지역자치제는 제2공화국이 들어선 짧은 기간이었다. 그러나 그나마도 5개월만에 5·16쿠데타로 중단되고 말았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은 계속해서 지역자치를 유보했다. 지방자치제는 1980년대 민주화의 상징 가운데 하나였고 야당은 물론 여당조차 선거공약에선 지방자치제를 공언했다.

노태우 정권은 헌법을 개정하면서 지방자치 유보조항을 삭제했다. 1988년 지방자치법을 개정했으며 우여곡절 끝에 1991년 3월 26일 기초자치단체 의원 4천277명, 6월 20일 광역의회 의원 866명을 직접선거로 선출했다. 당시 집권여당인 민주자유당(한나라당의 전신)은 서울과 호남에서도 승리할 정도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이 선거는 중앙정치의 지역구도를 깨지도 못했고 지방권력구조를 개편하지도 못했다. 풀뿌리 보수주의자들의 잔치가 되버린 것이다.

김영삼 정부 들어 본격적인 지방자치 시대가 열렸다. 1995년 6월 27일 지방선거가 열렸다. 이 선거에서도 중앙정치 예속현상은 계속됐다. 눈여겨 봐야 할 것은 노동·시민 후보가 부분적으로 진출한 점이다. 환경운동연합은 후보 46명 가운데 31명을 당선시킨 것을 비롯해 민주노총·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이 후보를 당선시켰다.

52.6% 투표율을 기록한 1998년 6월 4일 2대 지방선거는 지역분할 현상과 높은 재선율, 무소속의 부진이 주요 특징이었다. 이 선거에서도 민주노총-국민승리21, 한국노총, 전농, 여성연합 등이 독자후보를 진출시켰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6년 2월 6일 오전 8시 36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시민의신문 제 635호 3면에 게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