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횡사해/한반도-동아시아

하와이 오키나와 평택 연대감

by betulo 2007. 3. 25.
728x90
하와이 오키나와 평택 연대감
미군기지 확장반대 공감 국제 평화운동가 간담회
2005/9/9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쿠에! 감바로! 투쟁!”

미군기지확장을 반대하는 하와이·오키나와·평택 운동가들의 목소리가 함께 울려퍼졌다. 발음은 달랐지만 ‘저항’(하와이)과 ‘힘내자’(오키나와)를 뜻하는 외침은 하와이·오키나와·평택이 오랜 굴곡을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상징했다.

지난 8일 경기도 평택시 비전2동사무소에는 하와이·오키나와·평택 운동가들이 모였다. 미군기지 환경과 인권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심포지엄 첫날 행사로 기획된 이날 간담회는 ‘미군기지 확장에 맞선 사람들’을 주제로 스트라이커여단 주둔반대운동, 해노코해상기지 반대투쟁, 평택미군기지확장반대투쟁 경험을 서로 들려주며 연대감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하와이, 오키나와, 평택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미군기지확장 반대투쟁을 벌이는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연대감을 확인했다. 간담회를 끝낸 주민 대표들이 공동결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강국진기자 
하와이, 오키나와, 평택 주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미군기지확장 반대투쟁을 벌이는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연대감을 확인했다. 간담회를 끝낸 주민 대표들이 공동결의문을 발표하고 있다.

세 곳은 기묘하게 닮았다. 모두 50년 넘게 미군기지 문제로 고통받고 있으며 최근 대규모 기지확장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하와이와 오키나와는 미국과 일본에 점령당한 이후 내부식민지로 전락한 역사까지 닮았다. 언어와 역사도 빼앗겼고 삶터 대부분이 미군기지로 둘러싸여 버렸다. 미군기지로 인해 전통문화는 훼손되고 심각한 환경오염에 노출돼 있다.

강제합병 뒤 아시아 침략 위한 내부 식민지 전락

1893년 미군은 리릴우오카라니 하와이 여왕을 몰아내는 쿠테타를 일으켰다. 그리고 1898년 7월 6일은 독립국 하와이는 세상에서 사라졌다. 미국은 하와이 왕국의 왕실 소유지 가운데 22억3백만평에 이르는 토지를 몰수했다. 현재 미군주둔지 가운데 54%인 1억3천7백만평은 하와이 왕국 당시 정부와 왕실 소유지였다가 몰수당한 땅이다.

태평양지구사령부(PACOM)가 1947년 1월 1일 하와이에 설치됐으며 2004년 당시 하와이에는 총 161개 군사기지가 있다. 하와이에서 가장 큰 섬인 오아후에서는 22.4%가 군사기지이다. 2003년 현재 4만4천48명의 현역군인과 5만6천572명의 부양가족, 11만6천명의 퇴역군인 등 군대와 관련한 인구는 모두 21만7천여명으로 하와이 전체 인구의 17%에 이른다.

미군기지는 카나카 마오리(하와이 원주민)의 전통문화와 자연환경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카나카 마오리들은 하와이에서 가장 열악한 교육환경과 가장 높은 노숙자 비율 속에 고통받고 있다. 이들은 하와이에서 중범죄로 투옥된 범죄자의 1/3을 차지한다. 2004년 국방환경재구축프로그램이 미국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는 108개의 군사시설에서 오염지역 798곳을 공시했다. 해군은 진주만 해군단지에 오염지역 749곳이 있다고 말한다. 미군은 1964년부터 1978년 사이에 낮은 방사성 폐기물 1천8백만 리터를 진주만에 유출했고 하와이에서 55마일 떨어진 해상처리장소에 방사성 폐기물을 담은 드럼통 2천1백89개를 버렸다.

미군기지에 멍든 하와이

최근 미군기지와 관련해 하와이에서 가장 큰 논란은 △스트라이커 여단 주둔 △해군대학 산하 연구센터 건립 △미사일 방어체계 △항공모함전투단 설치 등이다. 하와이가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하와이나 괌에 항공모함의 모항을 두겠다는 제안이다. 항공모함전투단은 원자력 항공모함, 크루저, 구축함 2척, 공격잠수함, 쾌속 전투지원함과 전투기74대 등을 포함한다. 여기에 속한 군인과 부양가족은 2만명에 이른다. 진주만에 모항을 세울 경우 거대한 증설공사를 해야 하고 이는 환경에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미군은 스트라이커 장갑차 291대와 군인 8백여명, 부양가족을 위한 건물과 주거지역을 향상시키기 위해 건설프로젝트 28개를 시행하려 한다. 이를 위해 육군은 3천만평이나 되는 땅을 추가로 몰수하려고 한다. 여기에는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 수십종이 모여있는 곳도 포함된다.

미군기지의 위협에 맞서 싸우던 하와이 운동가들은 2002년부터 DMZ-하와이/아로아 아이나(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네트워크로 결집했다. DMZ-하와이/아로아 아이나의 핵심 활동은 스트라이커 여단을 막고 마쿠아 계곡을 정화하고 반환하도록 힘쓰는 것이다. 미군은 마쿠아(어버이라는 뜻) 계곡을 1929년부터 군사훈련장으로 썼으며 결국 계곡은 불발탄으로 가득 찬 곳이 돼 버렸다. 지금도 미군은 훈련을 늘리려고 시도한다.

자신을 “미국의 군사력에 점령당한 하와이의 선주민”이라고 소개한 테리 켈쿨라니 DMZ-하와이/아로하 아이나 대표는 자신들의 4가지 핵심 요구사항으로 △군사팽창 금지 △군사점령된 땅 정화와 반환 △군수경제 경제를 대신할 대안 마련 △주둔군 피해자에게 정당한 보상 제공 등을 제시했다.

오키나와 주민들, 해상기지 건설 반대 1년 넘게 농성

1945년 4월 1일 미군이 오키나와에 상륙하면서 시작된 ‘오키나와 전쟁’은 6월 23일 마무리될 때까지 일본 본토출신 군인 6만5천여명과 오키나와 출신 군인 3만여명, 민간인 9만4천여명에 이르는 희생자를 남겼다. 한반도에서 강제연행된 1만여명도 희생됐다고 하지만 정확한 수는 아직 밝혀지지 못했다. 오키나와를 점령한 미군은 1972년까지 군정을 실시했으며 수많은 오키나와 주민들의 땅을 빼앗아 미군기지를 건설했다. 오키나와는 전체 일본 면적의 1%에 불과하지만 주일미군 주둔지의 75%가 오키나와에 몰려있다.

1995년 9월 4일 오키나와 북부에서 미군이 여학생을 강간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주민들의 반발이 극심해졌다. 일본과 미국 당국은 이를 무마하기 위해 ‘오키나와 시설 구역에 관한 특별행동위원회(SACO)’를 설치했다. 1996년 12월 이 위원회는 후텐마기지를 대신하는 헬기 해상시설을 짓기로 하고 헤노코 앞바다를 후보지로 선정했다. 오키나와 주민들은 새로운 기지 건설 반대와 후텐마기지 전면반환을 요구하며 1997년 1월 ‘생명을 지키는 모임’을 결성하며 투쟁에 나섰다.

헤노코는 멸종위기에 처해있는 천연기념물 듀공을 비롯해 풍부한 해양생물이 서식하는 산호초 지역이다. 주민들은 이 곳에 해상기지를 세울 경우 생태계가 완전히 파괴되고 어민들은 생존권 위기에 직면할 것으로 우려한다.

헤노코 해상기지 건설반대 투쟁은 2004년 4월 19일 천막농성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불붙었다. 현재까지 천막농성을 계속하고 있는 오키나와 주민들은 1년이 넘도록 해상기지 건설을 철저하게 막아내고 있다. 지난 5월 15일에 열린 후텐마 기지 인간띠잇기 행사에는 주민 2만4천명이 참가하기도 했다.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다음 세대에 책임을 다하고 싶다”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운동 유영자씨

강국진기자 
“헤노코 해상기지를 반대하는 투쟁은 다음 세대에게 책임을 지기 위한 것입니다. 전쟁은 미래를 파괴합니다. 아름다운 오키나와 바다를 지키는 것은 결국 미래를 지키는 것입니다. 바다는 세계를 이어주는 다리니까요.”

지난 8일 평택을 찾은 오키나와 운동가들 가운데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 한 명 눈에 띈다. 작은 키에 조그마한 체구. 자연스런 일본어와 곧잘 쓰는 한국어. 자이니치(일본에 거주하는 한인) 2세 유영자씨였다.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였을 당시 일본 본토에서는 ‘조센징, 오키나와인, 개 출입금지’라는 간판을 많이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자이니치, 오키나와 거주, 여성. 그는 정말이지 소수자 그 자체다. “소수자만 느낄 수 있는 아픔과 슬픔이란 게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세상에 전하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수자라는 감정이 오히려 평화와 인권을 바라는 민감한 감수성을 만들어 주지요.”

경남 함안군이 고향인 그의 아버지는 규슈탄광에서 일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여기저기를 떠돈 끝에 히로시마에서 유영자씨를 낳았다. 결혼해서 효고현 고베에서 살던 유씨는 지난해 1월 오키나와로 이사 왔다.

작은 인연이 그의 일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바다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치겠다.” 헤노코 해상기지 반대농성에 참여하는 한 할머니가 했다는 이 말을 기사에서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이제 유씨도 ‘바다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헤노코 해상기지 반대농성은 지난해 4월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오키나와 기지는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이라크 전쟁 때 많은 미군들이 오키나와를 거쳐 출병했습니다. 오키나와 미군기지는 아시아를 침략하는 교두보입니다. 헤노코 해상기지도 결국 그걸 위한 기지입니다. 그 중에는 제 아버지의 고향인 한국도 있지요. 무서운 기지입니다.”

유씨는 한국방문이 세 번째다. 처음엔 부산으로 다음엔 서울로, 두 번 다 관광여행이었다. “이번 방문은 특별하네요. 열심히 싸우는 평택 분들을 보니 저도 힘이 솟아요.”

강국진 기자 globalngo@ngotimes.net
2005년 9월 8일 오후 23시 32분에 작성한 기사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