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박종철 죽이고 김근태 고문하던... 남영동 보안분실 방문기

인권을 생각한다/경찰 개혁론

by betulo 2018. 1. 14. 14:08

본문

728x90


초고: 2005년 8월5일

경찰청이 ‘남영동 보안분실을 국민에게’ 추진위원회의 주장을 받아들인 이후 인권기념관 건립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미 경찰청 보안3과는 홍제동 분실로 이전했고 굳게 닫혀 있던 육중한 철문은 열렸다.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입주했으며 곧 인권기념관 건립을 준비할 태스크포스팀도 활동을 시작한다. 

지난 3일과 4일 연달아 남영동 보안분실을 방문해 남영동 보안분실을 둘러봤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비밀계단과 비밀 엘리베이터의 존재를 최초로 확인했으며 아울러 보안3과 이전 과정에서 박종철군이 고문으로 숨졌다는 509호 조사실 일부가 훼손됐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편집자주 


<2011.11.06 추가>

남영동보안분실을 설계한 건 꽤 유명한 건축가인 김수근씨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11106151302§ion=04

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2012년 1월1일 추가>

김근태 사망을 맞아 다시 한번 옛 남영동 보안분실을 떠올렸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남영동 보안분실 방문기를 처음으로 단독 보도했던게 2005년 8월이었다. 박종철 열사 아버지인 박정기 옹도 모셔와 함께 남영동 보안분실을 둘러본것도 보람이라면 보람이었다. 

그저 취재를 목적으로 한 방문인데도 남영동 보안분실은 뭔가 을씨년스럽고 뭔가 으스스한 느낌이었다. 그곳에서 고문을 받는 사람들에겐 어땠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남영동 보안분실에서 1980년대 고문을 당한 경험이 있는 분한테 당시 얘길 들은 적이 있다. 그 분은 물고문을 받으며 '고문 10번만 받으면 저들이 원하는걸 말해야지'하는 마음으로 고문을 견뎠다고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다른 방에서 고문을 받던 동지가 먼저 자백을 하는 바람에 이분도 더이상 고문은 받지 않게 됐다고 한다. 자백을 먼저 한 사람은 먼저 한 사람대로 아닌 사람은 아닌대로. 고문은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긴다. 

김근태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2018년 1월14일 추가>

최근 개봉한 '1987' 영화를 계기로 남영동 보안분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위에서 언급한 그 분은 처음 '1987'을 보는게 두려운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영화를 보며 치유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가진 가치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바로 1987년 1월 14일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 학생이 남영동 보안분실에서 고민으로 세상을 떠난지 31주기가 되는 날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꺼내놓는다. 



방과 방, 방과 복도는 모두 문으로 격리돼 있다. 1층 뒷문을 통해 피의자를 데리고 들어와 비밀계단을 통해 5층 조사실로 데리고 들어갈 수 있다. 아무도 모르게. 문이 하나 있다. 또다른 조사실이려닌 생각하고 문을 열었더니 1층에서 옥상까지 연결되는 비밀계단이 나온다.

“무슨 비밀계단이 이렇게 많어?”

남영동 보안분실 5층 한쪽에 겉으로 봐서는 조사실처럼 보이는 문을 열면 갑자기 엘리베이터와 비밀계단이 나타난다. 1층 뒷문을 통해 피의자를 데리고 들어와 비밀계단을 통해 5층 조사실로 데리고 들어갈 수 있다.


이제 더 이상 ‘남영동 보안분실’은 없다. 지난달 27일 남영동 보안분실을 사용하던 경찰청 보안국 보안3과는 홍제동 보안분실로 이전했다. 이제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와 경찰청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가 입주한 ‘옛’ 남영동 보안분실은 이제 인권기념관으로 환골탈태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남영역에서 내려 2분쯤 걸어가면 바로 남영동 보안분실이 나온다. 높다란 담벼락 앞에는 ××러브호텔, ××모텔이 화려함을 뽑낸다. 남영동 보안분실 바로 옆에는 20층도 넘을 것 같은 러브호텔 신축공사가 한창이다. 남쪽 너머에는 국내 유명 건설사가 지은 아파트단지가 수십층 높이로 솟아 있다. 서슬 퍼렇던 ‘보안’ ‘대공’도 자본의 힘 앞에는 무기력하기만 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정문에 들어서니 활짝 열린 철문이 눈에 띈다. 불과 한달 전만해도 굳게 닫힌 철문 앞으로 무전기를 든 의경들이 경비를 서고 있던 모습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그렇지만 보안3과 직원들이 홍제동 보안분실로 이전한 이후에도 남영동 보안분실의 그림자는 짙게 남아 있다.

인권보호센터 한 관계자는 “생각을 안하려 해도 과거 이곳에서 사람들이 고문받았다는 생각에 원혼이 서린 듯한 느낌이 든다”며 “밤에는 계단을 이용하기가 겁날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지 모르지만 이곳으로 오기 직전 사흘 동안 흉몽을 꿨다”고 귀띔하기도 했다.

원혼 서린 듯한 느낌

인권보호센터 직원의 안내로 남영동 보안분실을 둘러봤다. 이전 보안3과장 사무실은 이제 경찰청 인권수호위원회 회의실로 바뀌었다. 6층은 인권보호센터가 입주했고 부속건물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사용한다.

5층으로 가서야 이곳이 남영동 보안분실이었던 곳이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좁다란 조사실이 한 층 가득 이어져 있다. 모두 16개 조사실로 이뤄진 5층은 조사실 문이 대각으로 위치해 있어 조사실에 있는 피의자는 건너편 조사실에 누가 있는지 전혀 알수 없도록 돼 있다. 기존에는 5층에 조사실이 18개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두 곳은 비밀계단으로 이어지는 문이었다.


박종철군이 물고문을 받다가 사망했다는 509호실을 빼고는 원형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509호실에 들어서면 바로 앞에 있는 침대와 고정식 책상과 의자, 세면대와 좌변기, 그리고 욕조가 한눈에 들어온다.


509호 조사실은 그동안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날 조사실을 둘러보니 조사용 책상을 바닥에 고정하던 나사못이 빠지고 바닥에 버려져 있었다. 박종철군 아버지인 박정기 옹은 나사못을 집어들더니 “만약 보안3과에서 책상을 치우려고 했던 것이라면 경찰청장의 방침을 무시하는 것 아니냐”며 “괘씸하다”고 분개했다. 그는 “이곳은 인권탄압의 상징”이라며 “원형을 그대로 보존해 후세에 산 교육장으로 남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보안3과 관계자는 “홍제동 분실로 이전하면서 5층 조사실에 있는 책상과 의자를 옮기라고 했더니 직원들이 509호실 책상과 의자도 옮기는 줄 알고 나사못을 뺏던 것”이라며 “509호실은 그대로 두라고 다시 지시해서 놔뒀다”고 해명했다. 그는 “빼버린 나사못은 원래 자리에 끼워 놓아야 했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 “나사못은 두고 왔으니 그쪽에서 다시 끼우면 되지 않겠느냐”고 답변했다.

509호 조사실 일부 훼손돼

건물을 나오면 널찍한 정원이 있다. 담장 주변에도 아름드리 나무들이 시원하게 무리를 이루고 있다. 정원 너머에는 테니스장 2면이 있는데 과거 체력단련장으로 쓰던 곳이라고 한다. 산책로로 잘 꾸며놓은 테니스장 옆길을 따라 돌아가면 길쭉한 모양을 한 주차장이 나온다. 오른쪽은 지하철 1호선 철로가 있고 오른쪽 담장 너머에는 용산 주한미군기지 유류저장탱크가 있다.

주차장 한켠에는 드럼통을 잘라서 만든 그릴과 간이 의자와 탁자가 놓여 있다. 테니스장으로 돌아 나오면서 테니스장에선 인권콘서트를 하고 본관 건물에선 시민단체들이 토론회를 열고 인권체험을 나온 학생들로 붐비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시민의신문 제 609호 22면에 게재



인권기념관 건립준비 박차
시민단체에 문호 개방

경찰청은 인권기념관 건립을 위해 경무기획국 혁신기획과 산하에 태스크포스팀을 구성한다. 늦어도 광복절 이전까지 구성되는 태스크포스팀은 경정을 팀장으로 해서 남영동 보안분실에 입주해 인권기념관 건립을 준비할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 관계자는 “태스크포스팀을 통해 인권기념관을 내실있게 준비하고 유족들과 고문피해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찰청은 인권기념관이 정식으로 개장하면 인권보호센터에 운영을 맡길 계획이다. 안재경 인권보호센터장은 “앞으로 인권기념관 활용방안이 확정되면 명실공히 인권을 상징하는 공간에 걸맞게 운영할 것”이라며 “시민단체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문호를 개방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 센터장은 “앞으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처럼 시민단체들이 토론회 등에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둘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인권보호센터는 고문피해자와 유족들, 인권단체 관계자들을 대거 초청해 10월 4일 개관식을 열 예정이다. 이날 인권보호센터가 준비하고 있는 ‘인권보호 경찰직무준칙’도 발표한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