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雜說/자작나무책꽂이

걷는다, 고로 존재한다

by betulo 2023.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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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에 읽은 책 99권 가운데 (내 맘대로) 10권을 엄선했습니다. 10권을 위한 짤막한 독후감을 써 봤습니다.

 

<나는 걷는다>(베르나르 올리비에, 임수현.고정아 옮김, 2003, 효형출판)

“나는 여행하고, 나는 걷는다. 왜냐하면 한쪽 손이, 아니 그보다 알 수 없는 만큼 신비한 한 번의 호흡이 등 뒤에서 나를 떼밀고 있기 때문에(3권 464쪽).”

퇴직한 기자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터키에서 출발해 중국 서안까지 세 차례에 걸쳐 네 차례에 걸쳐 쉬지 않고 걷는 여행을 했습니다. 이 책의 매력은 너무나도 많지만 첫손에 꼽고 싶은 건 별다른 사진이 없다는 겁니다. 사진이 없기에 우리는 저자가 들려주는 사람들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되고, 저자가 보여주는 풍경을 끊임없이 상상하게 됩니다. 언젠가, 나도 이 고집센 프랑스 할아버지처럼 세상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쉬지 않고 걷는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아쉬운대로 지하철 한 정거장 정도는 미리 내려서 10분이라도 더 걷게 된 건 순전히 이 책 덕분입니다.

“나는 키르기스스탄에 매료되었다(3권 103쪽).” 이 책을 읽은 건 순전히 7월에 키르기스스탄을 다녀왔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걷기 여행 중간에 키르기스스탄을 횡단했습니다. 저자가 다녀간 곳 중에 제가 방문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외딴 산 속에 있는 타슈라바트 유적지를 방문해보고 저는 저자가 그 곳에 가기 위해 끝없이 이어지는 황량한 초원을 몇시간이고 며칠이고 걸으며 얼마나 깊은 고독감을 느꼈을까 상상했습니다.

<나는 걷는다>는 모두 세 권으로 돼 있습니다. 1권은 터키 횡단이고, 2권은 이란에서 투르크메니스탄을 거쳐 우즈베키스탄까지, 3권은 우즈베키스탄에서 키르기스스탄을 지나 중국으로 향하는 여정입니다. 여행의 끝무렵에 저자는 철학자가 다 되었던건지 깨달음을 얻은 건지 멋진 말을 쏟아냅니다. 오래 두고 곱씹기에 딱 좋습니다.

“신의 섭리인 양 트리스타[여행자 설사]에 걸려 시안에서의 마지막 날을 방이나 지키며 보내지 않았던들, 나는 기꺼이 스스로를 초인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마지막 날은 하찮은 공명심으로 우쭐대던 내게 잠시 스쳐간 생각을 그대로 보여주었던 것이다. 헛되고 헛되니, 모른 것이 헛되도다(3권 4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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